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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환 축하와 그래도 감사
신현희  |  juventusjesu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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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11일 (금) 00:21:14 [조회수 : 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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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통은 나의 기쁨’, ‘다른 사람의 불행에는 기분 나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 놀부 심보처럼 들리겠지만 나도 별 수 없다. 친한 사이가 아닌데 ‘별일 없지요?’ 묻는 그 말 그림자에는 다 헤아리기 어려운 속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 겉으로는 ‘아이구 저런... 어쩌나...’ 탄식을 내뱉지만, 속으로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보면서 그것을 안도나 위안으로 삼기도 한다. 사람은 결국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경북 봉화의 아연광산 붕괴로 지하 190미터 갱도에 매몰되었던 광부 두 사람의 10일간 사투와 극적 생환 사건은 내 안에 음험한 속사람과는 다른 내가 있다는 것도 자각하게 해주었다. 모니터를 응시하는 나를 거울로 본적은 없지만 인터넷 뉴스에 대해 항상 양쪽 입꼬리가 내려간 채, 의심의 눈초리, 검증의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포털 메인에 떠있는 이 사건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떠졌다. 실종 사흘 째 되었다는 보도, 늦었던 초동신고와 더딘 구조 작업에 관한 기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가게 만들었다. ‘제발 제발! 가슴에서 솟구치는 말이 입술을 열게 만들었다. 이미 죽었다고 단정 짓는 저주 댓글에 분노가 일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고 그런 간절함과 분노마저 사그라질 때쯤인 사고 열흘 만에 들려오는 기적 생환 소식에 토요일 저녁 “그래?!”하고 아내를 쳐다보고는 뉴스를 켰다.

다른 사람이 당했던 큰 불행을 자신의 위안 삼는 감정(Schadensfreude)도 있지만 누군가 당한 고통과 괴로움이 결국 행복한 끝맺음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을 기뻐하는 감정도 분명 있다. 소식이 두절된 채 숨통을 조여 오는 절망을 221시간동안 짊어지고 있었을 두 광부의 가족들을 생각했다. 새삼 감사할 일이 있나 싶다가도 어둠 속에서 안대를 한 채 병원에 입원한 그들을 보면 멀쩡히 눈 뜨고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아침 햇살이 비쳐올 때 벅찬 감격이 있었다. 때 되면 앞에 차려진 밥상은 또 어떤가? 깨끗한 컵에 담긴 물 한잔을 다시 보게 된다. 정수기 위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기적의 생존 양식(인스턴트 커피 믹스)은 또 어떤가? 죽지 않고 살아서 외쳐야할 그 말(시118:17)이 목구멍을 울린다.

눈을 감으니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나무 둥치가 크고 우듬지가 높다. 줄기 가지가 굵게 뻗어있고 잎이 청청하다. 아마 꽃과 열매도 풍성하리라. 시원한 그늘도 좋다. 눈에 보이는 감사가 그렇다. 나무 줄기, 가지, 잎, 꽃과 열매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사다. 그 나무에는 보이지 않는 감사도 있다. 얼마나 오래 뻗어왔는지 모르고, 그 크기도 예측할 수 없는 까닭은 땅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뿌리 감사라고 불렀다. 눈앞에 있다가 사라진 것들도 있겠지만, 주로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해왔고 내게 영향을 주었던 것들이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사랑, 배려, 관심도 있었지만 아픔, 눈물, 질병, 고독, 인내 같은 것들도 있었다. 보이지 않아 있겠나 싶었는데 나열해보니 많다. 생각 속에 그려진 나무 외에 다른 것이 없었지만, 분명 그 나무를 지탱해주던 흙과 돌, 땅이 있으니 나무가 서있을 수 있으리라. 파란하늘 내리쬐는 햇볕과 비가 되어 떨어진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선선한 바람이 변함없는 바탕이었다. 하늘 땅 감사다.

다시 눈을 뜨니 딱딱한 현실이다. 불과 두 달 전에도 두 명의 사상자를 냈을 만큼 위험요소가 다분한 광산에서 기적만 바라고 있어야할까?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의 감사가 일상의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막연히 바라기만한다면 현실 기만이다. 덮어놓고 감사인가? 눈먼 감사인가? 생계를 위해 오늘도 좁은 갱도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에게 사치스러운 감상이다. 솟구치던 감사가 다시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감사를 포기할 수 없다. 어느새 죽음으로 가득한 소식들 사이에 절망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날을 세우고 걸어 넘어뜨리려는 살풍경이 이어진다. ‘더 이상 말이 없는 죽음’과 ‘할 말은 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방적 고함에 피로가 밀려온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참사 앞에서 여전히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살아있음 자체가 감사일터인데, 저마다 ‘사는 기쁨이 없다’ 아우성이니 그래도 감사 캠페인 좀 해야겠다. 땅 위에 보이는 줄기, 가지, 꽃, 열매 감사, 땅 아래 보이지 않는 뿌리 감사, 배경처럼 주어진 하늘 땅 감사가 지천이다. 다시 감사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았던 기쁨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쓴 것 아닌데 하늘로부터 내려 받은 것과 땅에서 공급해준 것이 손에 뿌듯이 들려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 듣고 감사하기가 쉽지 않은 날들 속에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두 사람 얼굴은 사그라든 모닥불 불씨와 절대적인 어둠 끝자락에서 ‘형님!’ 하고 부르는 구조 일성을 들은 것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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