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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선사하는 사람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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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05일 (토) 00:39:58 [조회수 : 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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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 있는 SPC 빵공장에서 청년 노동자 한 분이 야간작업 중 소스 배합기에 끼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일주일 전에도 그런 끼임 사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회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노동자의 안전을 외면한 경제적 이익 추구는 비극의 씨를 내포하고 있다. 돈을 벌어 자그마한 가게를 내고 싶었던 한 소중한 청년 노동자의 꿈은 그렇게 무너졌다. 더욱더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 억울한 피가 아직 마르기도 전에 사측은 그 기계를 흰색 천으로 가리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계속하게 했다 한다. 애도의 시간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러나 이 무정한 세상은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으로 그 피의 하소연을 숨기려 한다.

경제적 이익이 인간적 존엄을 압도할 때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변한다. 디스토피아 주민들의 특색은 무정함이다. 타자의 고통은 주목되지 않고, 약자들의 신음은 경청되지 않는다. 욕망에 취한 이들에게 사회적 약자들은 불편하거나 외면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의 역사를 공감의 확대 과정이라 말했다. 그 말이 딱히 그른 것은 아니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런 주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도, 타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고통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함께 아파하는 정서적 공감도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무정한 마음이 공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때 세상은 냉혹하게 변한다. 타자에 대한 적대감이 일상이 될 때 우리는 세상을 고향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불안이 스멀스멀 우리 영혼을 잠식할 때 진정한 안식은 불가능해진다.

적대적 공간을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의 소명이다. ‘자기들의 수치를 거품처럼 뿜어 올리는 거친 바다 물결’이 세상을 뒤덮는 것처럼 보여도 세상 어딘가에는 아름다움의 공간을 열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김기림은 ‘바다와 나비’라는 시에서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고 노래했다. 물결 위를 가볍게 날아오르는 흰나비처럼 사는 이들이 있다. 세상의 어둠과 절망의 깊이를 몰라서가 아니라 희망이 더 근원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마을에 살면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가 있다. 이태후 목사이다. 그는 마약 거래가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총격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그곳,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그곳에 들어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좋은 이웃이 되려고 한다. 그곳이야말로 땅 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웃들은 의혹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곁을 내주려는 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몇 년 동안 오물이 지천으로 널린 마을길을 쓸고, 낯이 익은 주민들에게 화분을 선물했다. 이웃들은 그제야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밟힌 것은 바람직한 삶의 모델을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돌보는 캠프를 시작했다. 매년 여름 한 달씩 열리는 캠프를 통해 어린이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더 넓은 세상과 접속하면서 가슴에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 작은 변화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추수감사절 무렵이면 이태후 목사는 칠면조와 칠면조 요리에 필요한 일체의 재료를 넣은 바구니를 마련하여 캠프에 참여하는 모든 어린이들의 집에 전달한다. 특정한 장소에 와서 받아가도록 하지 않는 것은 구호품이 아니라 사랑의 선물임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받는 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하려는 깊은 배려이다. 배려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배려 받음의 경험은 우리 속에 있는 얼음을 녹이는 봄볕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누군가에게 고향을 선사하는 일이다. 그런 고향을 경험하는 이들이라야 다른 누군가의 고향이 될 수 있다. 무정한 세상을 다정함으로 녹이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2022/10/26일자 국민일보 '김기석의 빛 속으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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