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좌파의 상상력>, 조지 카치아피카스, 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난장, 2009

필자가 신학교육을 받던 시대는 박정희 암살로 시작해 '서울의 봄'을 거쳐 전두환 쿠데타와 '광주학살',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동기와 겹친다. 20대 청춘을 최루 연기 가득한 거리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복기해보면 당시는 운동권과 비운동권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물론 시위를 주도하고 경찰에 끌려가 징역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 가장 헌신적이었지만, 학내에 일종의 정서적 일체감이 묘한 동질감을 자아내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눈앞의 정치적 불의가 크고 강력했다. 따라서 온 힘을 그곳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겨를이 없었다.

여학우 가운데 일부가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고, 그 영향인지 남자 선배 호칭을 '형'으로 부르던 게 기억나는 정도였다. 지금은 오히려 사회운동의 주류가 된 여성, 환경, 인권운동 등은 막 시작하거나 아직은 시기상조로 여겨지던 무렵이었다. 90년대 이후 봇물처럼 터져나온 새로운 담론에 우리 세대가 조심스런 까닭이 여기 있다. 달라진 상황에 대한 '포스트 스터디'를 누릴 수 있었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교문을 나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설이 길었다. 최근 젊은 세대와 만나다 보면 '다름'을 쉽게 접한다. 세대차이란 인류역사와 함께였다지만 요즘은 차이를 넘어 적대적 갈등관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꼰대 아니야!'라는 PC(Political Correctness)는 이전 세대를 효과적으로 무장해제하는 젊은 세대의 무기가 되었다. 예전에 읽었던 <신좌파의 상상력>을 다시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본서의 부제 '전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은 이 책을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저자는 1968년을 전후해 서유럽과 동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에 걸쳐 일어났던 거대한 저항운동을 일별하고 있다. 특별히 자신이 깊이 관여했던 미국과 68혁명의 진원지였던 프랑스의 사례를 세심히 살펴보고 있다. 카치아피카스는 스승 마르쿠제의 에로스 이론을 받아들여 이 전세계적 저항운동 현상을 '에로스 효과'라고 부른다.

"'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에로스)에 자각, 혹은 이 자각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다발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현상이 바로 에로스 효과인데, 카치아피카스는 '자유를 향한 본능적 욕구의 집합적 승화'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언젠가 카치아피카스는 자신의 연구주제가 단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떻게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움직여서 사회를 기초 짓고 있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은 이 연구주제에 대한 카치아피카스 본인의 잠정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28쪽)

저자는 본서를 통해 68혁명의 명암을 때로는 참여자의 입장에서 혹은 연구자의 자리에서 10여 년 동안의 자료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009년 국내 번역본은 수정 증보판으로  많은 관련 사진이 추가됐고, 부록으로 첨부한 당시 성명서와 문건은 지금 읽으니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신좌파의 주장을 잘 담아내고 있다. <신좌파의 상상력>은 68혁명과 신좌파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는 필독서라고 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절판되었다.  

신좌파의 1968년은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당대 교조적 좌파와 타락한 자본주의를 모두 문제시하며, 국제주의와 일상의 파시즘 타파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앞서 PC를 언급했지만 본디 PC는 신좌파들이 변화하는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모스크바만 쳐다보는 교조적 좌파를 조롱하던 용어였다. 요즘 젊은이들의 용례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기존 세대 혹은 질서에 대한 비판이라는 문제의식은 공유되고 있다. 1968년 전세계가 변화에 대한 강력한 에로스 효과에 빨려들어갔지만 이 땅은 무풍지대였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와 10월유신은 온 나라를 꽁꽁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으로 내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시절 우리도 전세계적 에로스 열풍에 탑승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세대 단절의 벽은 줄어들 수 있었을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역사란 결코 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진광수 목사(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