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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30년] 감리교 종교재판, 한국적 ‘보편종교’ 를 향한 진통과 선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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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11월 02일 (수) 02:56:05
최종편집 : 2022년 11월 02일 (수) 04:08:32 [조회수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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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선

[종교재판 30년, 교회권력에게 묻다] 2부 종교재판 30년, 그 ‘ 以後 ’


발표3 감리교 종교재판, 한국적 ‘보편종교’를 향한 진통과 선취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소장, 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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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2년 5월 7일, 변선환 선생님은 동료 후배 교수 홍정수 교수와 함께 그가 평생 사랑하며 온몸과 마음을 바쳐 섬겨왔던 한국 감리교회부터 ‘출교’를 선고받았다. 그 출교는 1991년 12월 2일 김홍도 목사(금란교회)와 유상렬 장로가 대표하는 ‘교리수호대책위원 회’가 두 교수의 신학을 서울연회에 고소하면서 이루어졌다. 당시 판결문 말미에는, “이 이후에 계속 피고와 같은 주장에 동조, 지지, 옹호 및 선전하는 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내에서 동일한 ‘범법자’로 간주되어야 한다”라는 부언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오늘, 선생님을 한 명의 ‘범법자’로 만든 이 사건을 다시 불러내서 그때 진정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를 묻고, 선생님이 출교 후 3년 여의 시간을 큰 고통 속에서 사신 것을 생각하며, 그런 가운데 1995년 8월 7일 이 땅에서 마지막 일로 원불교 소태산 탄신 100주년 기념 강연을 위한 “한일 양국의 근대화와 종교”를 쓰시다 책상 위에서 돌아가신 것을 다시 떠올리자 가장 먼 저 든 생각이 히브리성서 욥에 관한 것이었다. 상투적으로 그들 고통의 양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욥이라는 시대의 저항가가 당시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있던 하나님 상(像)과 (정)의, 징벌이나 구원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복시키고, 그것을 다른 새로운 ‘보편 이야기’(a common story)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논리(logics)와 사유(理)로써 저항해나갔나 하는 것이 선생님의 오랜 학문과 치열한 설교가의 삶과 투쟁과 많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성서에 당시 욥이 그 새로운 보편 이야기의 탄생을 위해서 겪었던 고통과 고뇌가 여러 가지로 그려져 있지만, 이번 본인에게는 다음의 강변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너희는 내 항변도 좀 들어 보아라. 내가 내 사정을 호소한 동안, 귀를 좀 기울여 주어라. 너희는 왜 허튼소리를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을 빌미 삼아 알맹이도 없는 말을 하느냐? … 하나님이 너희를 자세히 조사하셔도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이듯 그렇게 그분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 나라고 해서 어찌 이를 악물고서라도 내 생명을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날 죽이려고 하셔도 나로서는 잃을 것이 없다. 그러나 내 사정만은 그분께 아뢰겠다. 적어도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는 구원을 얻는 길이 될 것이다. … 나를 좀 보아라, 나는 이제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는, 내가 죄가 없다는 확신이 있다(욥 13:6-18).


2

우리가 잘 알듯이 당시 선생이 일어나 항거한 보편논리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원래 중세 가톨릭교회의 논리였지만 1965년 제2 바티칸회의를 통해 가톨릭교회도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와 그중에서도 한국 토착화신학의 전통을 1백 년 이상 이어온 감리교회는 그를 넘어서려는 선생을 출교시켰다. 당시 출교를 감행한 사람들 중 재판관 15명은 대부분이 위에서 언급한 김홍도 목사 주관의 교리수호대책위원회의 위원들이었고, 함께 신학을 변론할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선생은 그에 대해서 어떤 변호인도 없이 홀로 자신의 변론에 쓸 묵직한 책 보따리를 들고 와서 그의 항거를 이어갔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듯이 당시 선생이 그 시대의 지배 논리에 대항해서 새롭게 내세운 명제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이 명제에서 그 중심축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었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고자 한다. 즉, 일반의, 특히 교리수호대책위원회의 관심과 집중은 ‘교회 밖’이라는 언어에 있었지만, 본인이 보기에 선생 언술의 진정한 이유(所以)와 출발점(所從來)은 그와는 달리 ‘구원’에 있었고,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선생의 ‘하나님 사랑’이 이유였다는 것이다. 곧 선생이 ‘교회 밖’을 그렇게 강조한 이유는, 하나님 사랑과 구원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서 그 귀한 것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 곧 교회 밖 세상 모두에게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욥은 세 친구가 찾아와서 소위 당시 널리 퍼져있던 하나님의 칭의론을 들어서 욥이 얼마나 불신의 사람이며, 하나님의 정의를 거슬러 왔고, 그래서 지금 당하는 고통이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교만과 거짓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정죄했지만, 욥은 결코 거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의 다른 말과 항변으로 그 친구들의 논리가 거짓이며,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이나 신앙은 순전한 것이 아니고, 다만 앵무새처럼 자기기만과 가식속에서 기득권의 수호를 위해 이미 고사한 이론을 상투적으로 내뱉는 것임을 죽기까지 항거하며 밝히고자 했고, 그러다가 다시 큰 하나님을 깊게 경험하면서 그들의 배타와 허위의 일반 이야기를 깰 수 있었다. 그러한 욥이나 이제 참 하나님 신앙과 사랑을 위해서 교회 밖으로 우리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외친 선생님의 절규를 본인은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이 잘 밝혀준다고 생각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요한 5장 42-44).


3

선생이 그렇게 한국교회의 주류 논리와 칭의를 뛰어넘어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믿음으로 그 구원을 전하고자 ‘교회 밖’으로 나가며 돌파한 경계와 영역은 놀랍도록 다면적이다. 그것은 선생 신앙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선생의 하나님은 결코 어떤 과거의 교리나 논리, 인간이 만들어놓은 낡은 경계와 고착에 매이지 않는 역동하는 창조의 영(靈, spirit)이었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의 논리(理)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처럼 그렇게 시대의 온갖 경계를 분리를 뛰어넘어서 낯설 고, 다르고, 타자의 영역과 시간일 뿐이라고 배척당하고 혐오 받아오던 곳과 때로 넘어가셨다. 그런 믿음과 신앙의 선생은 먼저 한국교회가 그동안 자신의 더 오랜 뿌리였음에도 배척하고 낯설어하던 한국 종교와 문화속으로 들어가셨다. 이와 더불어 우리 실존의 깊은 내면으로도 들어가셔서 참된 하나님 신앙과 예수를 따르는 일이란 각자 우리 내면의 실존 속에서 예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근거(生理)를 발견하고, 그처럼 사는 길임을 보여주셨다. 위의 성서 구절이 밝혀주는 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은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일의 표현이며, 그 가운데서 우리도 예수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셨다. 이 믿음을 전통적인 동아시아 신유교 언어로 하면 ‘리일분수’(理一分殊, principle is one, but its manifestations are many)의 믿음이라고 생각 한다.

급기야 선생의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확산을 위한 행보는 더욱 심화, 확대되어서 여전히 일정 부분 ‘타자’로 남아있던 아시아 종교와 문화를 오히려 주체와 시작점, 텍스트라고 고백하시는 지경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선생님의 “타종교의 신학”, “한국적 종교해방신학”(Korean lib- eration theology of religions)은 자연스럽게 아시아 민중의 고통과 고난, 비참이 우리 신학의 참된 출발점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고백하도록 했다. 마지막 유고가 된 “한 · 일 양국의 근대화와 종교”에서 선생은 한국인들에게 한국 종교 속에 담지된 적극적인 요소들을 더욱 만나면서 지금까지 서구를 배워서 이루고자 한 ‘근대화’를 더욱 내실화해서 “토착화된 근대화”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하셨다. 하지만 본인은 선생의 이와 같은 요청은 거기서 더 나아가서, 오히려 서구가 지금까지 붙잡혀 있던, 자아와 주체 중심의 서구 근대주의를 넘어서 그 근대를 ‘참된 근대’(authentic modern), 또는 아시아적 ‘포스트 근대’(post-modern)가 되도록 하라는 요청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와 한국의 오랜 내재신(理一分殊)적 전통은 유일하신 하나님 사랑을 믿을 수 있는 근거(理一)를 단지 기독인들이 말하는 ‘교회 안’이나 인간, 또는 자신들이 실체론적으로 구분해 놓은 어떤 시간과 공간에 한정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매우 급진적이고 불이적(不二的)으로 이 세상 만물(萬物)과 각자에 내재한다는 것(分殊, 各具一太極/理)으로 끊임없이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서구가 이제 이러한 아시아적 인식과 신앙으로부터 배워서 자신들의 좁은 자아와 인간 중심주의, 성직이나 남성중심주의 등의 근대를 넘어서는 근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17세기 서구 유대교 사상가 스피노자(1632-1677)가 언급한 서구적 ‘보편종교’(religio catholica)도 넘어서 ‘한국적 보편종교’(Korean religio catholica, 韓國 眞敎)로 더욱 나가는 길이라고 보는 바이다. 유럽 17세기의 스피노자는 당시 신·구교 사이의 갈등과 전쟁이 극심한 가운데 종교(기독교)가 여전히 중세의 왕처럼 군림하고자 하며, 인간 누구나의 보편적 생명 정조를 짓밟으려 하자 그 토대가 되었던 과거 인습의 하나님 상(像)과 인간상을 전복하며, 다시 새로운 기초(코나투스)의 제시로써 참된 인간 공동체를 위한 ‘보편종교’(a common religion)를 주창했다. 그의 이러한 창조적 항거와 순교자적 희생 덕분에 이후 유럽은 자신들의 근대를 활짝 열 수 있었고, 그러한 스피노자의 이상은 오늘 21세기도 여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본다.


4

일찍이 ‘인간’ 또는 ‘인간성’을 지칭하는 ‘인’(人)이나 ‘인’(仁)이라는 한자어가 고대 한국인을 지시하는 고유명사였지만, 나중에 그것이 인간 일반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로부터 한국인의 종교 전통으로부터 듣고자 하는 ‘한국적 보편종교’는 서구의 보편종교 이상보다 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국은 하나님의 영역을 ‘공’(空)이나 ‘절대 무(無)’라고 부를 정도로 광대하고, 깊이와 그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궁(無窮)하다고 밝히는 불교적 하나님 이름을 가져왔고, 조선 5백 년 유교 역사는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라는 뛰어난 논리 항거를 통해서 바른 하나님 상(理)과 인간상(氣), 거기서 더 나아가서 오늘 21세기 지구 위기의 시간에 더욱 긴요하게 요청되는 바른 사물 상(人物性同異)의 정립을 위해서 오랫동안 항거해온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해서 한국인들은 서양 기독교 신앙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하나님과 거룩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일에 주력하더니 점점 더 그 반대로 교회 밖과 안을 나누고, 세상과 하나님, 신앙과 지성, 성직자와 평신도,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 강남과 강북, 담임목사와 부목사 등을 나누며 힘 있고 권력 있는 그룹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인클로저(enclosed) 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하나님 사랑의 참모습이 아니며, 그래서 거기에 더는 ‘구원’이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다. 한국적 보편종교는 그래서 더욱 나가서 더 넓고 크며, 다양하게 만물의 생명 됨과 그 하나님(天)의 자녀 됨(天地生物之心)을 선포하고자 한다. 온 세상과 모든 시공을 하나님 나라라고 선포하는 한국적 보편종교는 그리하여 더는 과거 2천 년 유대인 청년만을 유일하고 배타적인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한국교회의 ‘그리스도 우상주의’를 믿지 않는다. 대신에 ‘복수(複數, plural)의 그리스도’를 말하고, ‘여성 그리스도’의 도래를 이야기하며, 또한 한국교회의 권력이 자신들 권력과 특권의 최종 토대로 삼는 예수 부활의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모든 것보다 인간과 만물 모두에게 차별 없이, 하나님의 선행 은총으로 선물 주어진 보편적 ‘공동 인간성(仁)’에 근거해서 오늘의 교회적 차별과 억압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한국 사회와 정치, 교육과 세계 유물주의와 무신론의 자본주의가 몰고 오는 극심한 비인간화와 반(反)자연의 폭압과 폭력에 항거하고 싸우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다른 하나님 신앙이고 예배가 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만일 한국교회가 이러한 일을 함께하지 못하고, 계속 왜곡되고 고사한 하나님 상을 강요하면서 거짓 정보와 편협한 신앙, 성차별과 폭행, 차별과 권력 숭배 등으로 그 일을 막는다면 이제 한국 기독인들은 모두 그러한 교회를 떠남으로써 한국적 보편종교의 저항을 이어간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더는 그러한 교회 안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5

그런 가운데서 올해 5월 서구 교회의 선교로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 (보수)교단 새문안교회는 미국 역사신학자 존 코클리 교수를 초청해서 “기독교는 번역의 종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기독교 신앙과 하나님 상이 각 지역의 문화에 의해서 재해석되어온 역사라는 것을 밝히며 “하나님 도 자신을 특정한 인간으로 번역하셨다”고 하고, 기독교의 역사는 그렇게 사실상 “성육신의 확장”이라는 것도 지적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바로 오래전 우리의 또 다른 토착화 신학자 해천 윤성범 선생이 유교 전통의 언어로 말씀하신 “성(誠)의 신학” 이야기와 다르지 않음을 본다. 그 ‘誠’을 한국 정신의 핵으로 밝힌 윤성범 신학이 사후 전집으로 출간되도록 후세대 변선환 선생님은 큰 수고를 하셨는데,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언어 중의 하나인 ‘誠’(성실성)이란 바로 그 글자의 형상이 지시하는 대로 ‘하나님 · 말씀’(言)이 ‘육신’이 되신 일(成), 곧 ‘성육신’(誠)의 일이 되고, 다시 더 보편의 언어로 하면 바로 ‘번역’의 일이 되는 것이며, ‘토착화’를 말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성서 『중용』(中庸)은 이미 ‘성’(誠者)을 ‘하늘의 도’(天之道)라고 칭했고, ‘그를 따르는 일’(誠之者)이 ‘인간의 도’(人之道)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 사후 한 회고자에 의해서 그는 참으로 ‘성실성’(誠)의 사람이었고, “진정 성지자(誠之者)입니다”라는 평을 받았다면, 선생님은 어떻게든 자신의 하나님 사랑을 온 세계와 세상, 다음 세대로 이어주려는 하나님 사랑 번역의 달인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사람,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고 여긴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그리스도의 일을 자신을 넘어서 더 이어줄 제자들을 많이 길렀고, 그 제자들은 그리하여 ‘노다지’이니 ‘노터치’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밟고 넘어서 더 나아가기를 요청했는데, 그렇게 그는 우리의 참된 스승으로서 참으로 선한 하늘의 효자(孝子)이고,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귀한 문명의 계승자가 되신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의 사후 20주년을 기해서 나온 책인 『선생님 그리운 변선환 선생님』을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네트워크’의 달인이었고, 세상이 이렇게 자꾸 변하는데 어떻게 내 책을 엮어낼 수 있느냐고 하면서 진정 이미 이룬 것에 대한 집착이나 자아에서 벗어난 참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자유를 사신 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우리 신앙과 하나님 사랑은 결코 한 번에 모든 것을 확보하는 ‘보장’(guarantee)이 아니라 다만 ‘기회’(chance)일 뿐이며, 그래서 그 기회 앞에 겸허히 끊임없이 물으며 이미 얻은 것을 비우며 내려놓고 다시 사는 것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을 보여주셨다.

오늘날은 우리 세계가 다시 더 ‘가상세계’(virtual world)로 확장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가상세계조차도 여기 이곳의 하나님 사랑(敬)에 근거한 진실(誠)과 성실(信)이 기초 되지 않는다면 그 가상세계는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파괴하며, 하나님의 창조물인 이 세계와 만물을 큰 위기로 몰고 갈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과거의 교회 안에 갇혀서 그 구원에 집착하며 폐쇄와 다름에 대한 혐오와 갈라치기로 일관한다면, 그 폐해는 단지 교회나 종교 안의 문제만이 아니라 온 사회, 온 나라, 온 세대로 퍼져나갈 것이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광화문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그룹의 많은 거짓 정보가 한국교회를 진원지로 한다는 말을 매우 염려스럽게 보는 이유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참 회개로 그러한 상황을 예견하시고 어떻게든 그를 넘고자 하신 선생님의 선취의 고통을 돌아보아야 한다. 선생님은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먼저 순교자의 길을 가셨다. 그런 선생님을 한국교회는 하루속히 신원(伸冤)하여 오늘 온 세계가 간절히 요청하는 참된 통합과 통섭의 하나님 번역이 더욱 드러나는 길을 터주실 것을 강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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