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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김영봉  |  와싱톤 사귐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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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29일 (월) 20:53:10
최종편집 : 2022년 09월 03일 (토) 23:30:46 [조회수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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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아홉 번째 연재를 이어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김영봉 목사(와싱톤 사귐의교회, 미국 버지니아)

<질문>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때로 이분들은 다른 이의 삶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손쉽게 규정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 자칫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을 합리화하는데 쓰일 수 있는 위험이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음성과 이기적인 인간의 음성)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1.하나님과의 사귐 안에서 자라가기를 힘쓴다

 

   
▲ 김영봉 목사(와싱톤 사귐의교회, 미국 버지니아)

이야기 하나 : 성경 공부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참석한 이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가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곰곰이 듣고 있던 한 자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문제이신가요? 저는요, 하나님의 뜻은 너무 잘 알겠는데, 그 뜻을 행할 수가 없어서 문제거든요?”이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잠시 숙연 해졌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나오면 많은 이들이 ‘알기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마음에 차오를 때 그리고 그 부정적인 감정이 돌처럼 굳어져 갈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풀고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지만 증오 하는 것을 통해 즐기는 은밀한 쾌감을 놓기가 싫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거부할 핑계를 지어냅니다. 부정한 욕망이 마음을 점령해 가는 것을 느낄 때, 그 욕망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벗어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변명하면서 그 욕망을 즐깁니다. 그러는 사이에 마음은 점점 욕망에 사로잡히고 손과 발을 끌어들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니, 행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버렸고, 하나님은 우리를 “마음의 정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 두셨기”(롬 1:24) 때문이다. 인간의 죄성은 행할 의지를 병들게 했을 뿐 아니라 거룩한 삶을 향한 지향까지도 꺾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마음의 지향이 되살아 나도록, 그 지향이 강해지도록 가꾸는 일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마음은 죄의 맛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맛에 물든 마음이 먼저 치유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기쁨을 “맛보아 알아야”(시 34:8) 합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더 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아는 만큼 하나님의 뜻을 향한 지향이 강해지게 됩니다.

달라스 윌라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한다”(<하나님의 음성>, 49쪽)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사귐을 통해 우리의 내면이 그분에게 온전히 조율되게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라는 뜻이죠. 지속적이고도 깊은 영적 사귐만이 우리 내면에 퍼진 죄의 독소들을 치유할 수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향한 지향과 의지가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에 조율시킵니다. 그렇게 되면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빌 2:13)

 

2.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의 길에 있다

 

이야기 둘 : 딸 아이가 수시 모집 기간에 안정권에 있는 대학에 원서를 냈다. 정시 모집에서 더 좋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 일단 보험을 들어 놓기 위함이었다. 얼마 후 지원한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가 왔다. 일단 안심하고 정시 모집을 준비했다. 정시 모집에서는 실력에 약간 부치는 대학에 지원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합격한 대학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정시 지원을 포기하자니 아깝고, 포기하고 가자니 불안하다.

그 딸의 엄마는 새벽 기도회에 나가 기도한다. 매일의 기도 제목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오지 않았다. 결심해야 할 날이 며칠밖에 남지 않아서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 불안해지는 만큼 기도도 간절해졌다. 간절히 기도함에도 응답이 없자 엄마는 내 마음을 이렇게도 몰라 주시느냐면서 하나님께 투정한다.

그 때 마음을 때려 치는 깨달음이 왔다. “이건 순전히 내 욕심이고, 하나님은 아무 데든 가라고 하시지 않을까?” 그 깨달음 앞에서 엄마는 하나님께 너무도 송구스러워 눈물을 쏟았다. 엄마는 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엄마도, 딸도 이미 입학 허가 받은 대학에 가기로 마음 정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뜻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지향의 문제이고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려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결정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수록 고민은 깊어지게 되죠. 학업이나 사업 상의 진로를 결정할 때도 그렇고, 배우자를 결정할 때도 그렇고, 중요한 수술을 결정할 때도 그렇습니다.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찾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안전한 길, 성공하는 길, 번영하는 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 자체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선택과 과정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더 관심을 두시죠. 또한 선택과 결정 후에 어떻게 행하시느냐에 더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는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관심하지만, 하나님은 무엇을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입학하는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관심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해야 성공하느냐를 알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사업을 하든 그 사업을 예배처럼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어느 길로 갈까요?”라고 기도할 때, “네가 좋을 대로 해라”고 답하십니다. “좋을 대로 하라”는 말씀은 타락한 욕망을 따라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분별한 후에 마음의 방향을 따라 가라는 말입니다. 한 순간의 선택과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안전하고 평탄하고 성공하는 길만을 가기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아무 장애 없이 이루어 가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역경과 환난을 각오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을 기대하십니다. 절대 다수가 하나님을 잊고 그분께 등 지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만사형통, 승승장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할 때, 유대에서 내려 온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바울의 허리띠를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예루살렘으로 가면 바울이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을 듣고 신도들이 올라가지 말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바울이 자신을 말리지 말라고, 모든 것을 각오하고 가는 길이라고 답을 합니다. 신도들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행 21:14)라고 말하고 말리기를 그칩니다. 신도들은 안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지만, 바울 사도는 위험을 각오하고라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조율되면 우리 자신의 안전과 평안과 번영과 성공을 목적 삼지 않습니다. 현세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선택과 결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를 생각합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 근로 조건과 연봉을 우선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 땅에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따지게 됩니다. 더 높아지고 강해지고 부해지는 쪽에 등돌리고 더 낮아지고 약해지고 가난해지는 길을 택하게 되죠. 그렇게 하여 자신의 욕망은 점점 작아지고 하나님의 뜻이 점점 커집니다.

 

3.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점된다

 

이야기 셋 : 한 교회에서 목회자 청빙 과정 중에 한 목사를 초청하여 설교를 하게 했다. 예배가 끝난 후, 초청된 목사와 교인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교인들은 그 목사의 신앙과 철학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 목사는 주어지는 질문들에 대해 변변히 답하지 못했다.

시간이 되어 임원회장은 목사에게 잠시 바깥에 나가 회의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교인들은 그를 청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임원회장이 그 목사를 불러 회의 결과를 알렸다. 그랬더니 그 목사가 일어나서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기도 응답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 교회에 보내겠다고 제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 됩니다.”

그 말에 적지 않은 교인들이 당황하고 동요했다. 그때 한 원로가 일어나서 말했다.

“목사님의 말씀을 잘 알았으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셔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저희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을 이곳에 가라고 하신 하나님이 저희가 믿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면, 저희에게도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그 목사는 얼굴이 붉어져서 자리를 떴다.

한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지체들의 ‘집단 영성’을 통해 분별 되어야 합니다. 권위주의가 강할수록 한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목사 혹은 중직 몇 사람을 통해 전달되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혹은 환상이나 음성을 자주 듣는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사는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에 대해 자신에게 특별한 권세가 주어졌다고 믿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때로 교인 모두가 반대하는 일을 목사의 기도 응답에 근거하여 추진하여 나중에 곤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에 지도자를 세운 까닭은 그를 유일한 계시 수단으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체들을 한 마음 되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모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행하도록 세워 주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빈 자리를 백이십 명의 신도들이 기도한 후에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세운 것(행 1:15-26)처럼, 혹은 안디옥 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이방 선교의 부름을 분별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기로 정한 것(행 13:1-3)처럼, 한 공동체의 지도자는 계시의 독점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지체들과 함께 분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욕, 독점욕 그리고 지배욕에 있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마음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을 얼마든지 왜곡하고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것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는 계명을 어기는 행동이죠. 자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성모독이요 하나님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망령된 행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를 삼가해야 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4. 눈 딱 감고 하나님께 맡긴다

 

이야기 넷 :한 교회가 오랫동안의 공백기를 거쳐 목사를 초빙했다. 그 목사는 침체된 교회를 되살려 내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좋은 목사님을 보내 주셨다”고 반겼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서 숨겨진 문제가 드러났다. 목사는 버티려 했고, 임원들은 그 목사를 보내는 것이 모두에게 좋겠다고 결정했다. 임원회장은 교인들에게 “목사님이 떠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물었다.

“하나님께서 이 목사님을 보내 주셨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낸다는 겁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뜻은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한계 안에 있는 인간은 현재만을 보고, 영원의 차원에 계신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보십니다. 현재의 재앙은 미래의 눈으로 보면 축복일 수 있고, 오늘의 축복은 내일의 눈으로 보면 재앙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당면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찬양 중에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마음 뜨거워지게 하는 가사이기는 하지만, 이런 태도로 살려 하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사사건건 계시로 응답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뒤를 돌아볼 때 비로소 제대로 보입니다. 길을 가기 전에 그분의 뜻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예언자라 불리우죠. 보통 사람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지는 바를 따라 조심스럽게 나아갈 뿐입니다.

폴 투르니에가 <모험으로 사는 인생>에서 한 말은 믿음의 여정을 어느 정도 걸은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단계마다 길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눈 딱 감고 자신을 내어 드려야만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88쪽)

몇 년 전 새로운 임지에 부임할 때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 그렇기를 바라지만 확신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 교회를 떠날 때, 저도, 여러분도 저의 부임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100%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확신이 있다면 오히려 긴장하고 의심할 일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잠잠히 기도하고 정직하게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안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죄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인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내 모든 길을 지키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의 뜻을 아는 것에 목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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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10-23 21:07:53
16.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3번 배반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두번 부인한 베드로가 철저히 반성하고 3번 째 상황에서는 예수를 안다고 할 수도 있어야 자유의지가 있다는 확실한 근거가 된다. 예수가 예언하고 그대로 된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길을 베드로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숙명론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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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16 23:52:31
15. 주로 대형교회 목사중에는 선택의 문제로 고민 할 때에 '하나님이 이리 하라는 음성을 주셨습니다.'라는 말을 가끔 한다. 이 말을 들으면 ' 아, 저 목사님은 구약의 모세처럼,선지자처럼 여호와와 직접 대화, 영적 교류를 하면서 그 뜻을 지시받고 결정하는 구나.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 뜻대로 하면 들림이 없겠구나. 그런데 평신도인 내게는 그러한 음성이 전혀 안 들리니 나는 답답할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리 저리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음성을 주셨습니다'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목사들이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뜻에 관한 애매모호한 글을 써놓아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에 관한 교리도 확립이 안되어서 저마다 자기 주장을 하는 구나.내가 복음, 네가 복음, 네 성령, 내 성령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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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16 01:00:24
14.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한 글을 써놓고 기독교의 궁금한 점중에 하나인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에 대햔 답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수많은 목사 설교를 들어보면 강조하는 주요내용이 " 하나님의 뜻을 따랴야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한다. 성경말씀대로 살아야한다'임을 알고 있는가? 이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나요?'라는 간절한 질문에 답해야하는데 이 글로로써 답이 되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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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12 09:10:45
4-1-1.눈 딱 감고 하나님께 맡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뜻은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님의 뜻은 만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한계 안에 있는 인간은 현재만을 보고, 영원의 차원에 계신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보십니다. 현재의 재앙은 미래의 눈으로 보면 축복일 수 있고, 오늘의 축복은 내일의 눈으로 보면 재앙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당면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신을 안 믿는 사람은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위대한 지혜를 알고 있다. 굳이 신을 개입시키지 않아도 된다. 같은 사안에 대해 신을 개입시키면 기독교신자고 이성, 양심, 경험, 인류가 축적한 지혜를 바탕으로 살아가면 안 믿는 사람이다.안 믿어도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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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11 23:29:05
4-1. 눈 딱 감고 하나님께 맡긴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단계마다 길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눈 딱 감고 자신을 내어 드려야만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88쪽)
----눈 딱 감고 자신을 내어드린 다는 말은 스스로 결정하라는 말인데 돌려서 말하지 말라.

우리가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100%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확신이 있다면 오히려 긴장하고 의심할 일입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잠잠히 기도하고 정직하게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것이죠”라는 말은 하나님이 이끄는 방향 즉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답답한 것인데 ‘ 그 방향 알잖아요? 예? 무슨 방향요? 아, 그 왜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 있잖아요? 뭐라고요? 그 방향을 도무지 몰라서 고민 중인데 무슨 애매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는 것처럼 내용이 없는 공허한 말이다.하나님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 결국 내 마음이 이끄는 방향이라고 솔직히 말하자.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안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죄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인 것을 믿는다면 그리고 내 모든 길을 지키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분의 뜻을 아는 것에 목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안”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데 과연 알 수 있을까하는 불안’으로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 뜻을 알고자하는 마음의 출발점은 하나님에의 신뢰이다. 신뢰감이 없으면 그 뜻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도덕적, 사업적, 인간적 결정등 수많은 결정이 다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툭하면 욕망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Ceo가 사업적 결정을 할 때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려는 욕망도 어느 정도 있지만 사원의 이익과 행복, 나아가서는 국가발전도 고려하는 공익적, 이타적 측면도 고려하게 된다. 김우중 회장도 자신이 열심히 일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회사원의 가족들이 행복해지므로 최선 다해 일한다고 했다. 결정들이 전적으로 욕망에만 기초한 듯이 삐딱하게 보지 말라.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5:16-18)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개별적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뜻이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는 뜻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이 성경 구절은 “ 하나님,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라는 보편적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적확한 곳에 사용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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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9 07:53:44
13.여기서 자유의지가 등장한다. 아담이 선악과 먹기로 신의 뜻을 어기고 자유의지로 선택했듯이 신이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하는데 구약을 보면 정말 자유의지를 준 것인지 의심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전쟁준비해서 이길 노력은 안하고 그저 기도하고 애원하여 적을 여호와의 손에 부쳐주어서 이기기만을 바란다. 자유의지가진 유대인이 맞나?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안 보내도록 신이 바로의 장유의지를 조정한다. 이래도 자유의지 줬다고 말 할 수 있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준것은 아니고 때로는 신이 억제한다고 해야하나? 도대체 신의 뜻과 자유의지에 대한 교리가 정립이 된 것인가? 아직도 신의 뜻에 대해서 목사마다 신학자마다 자기주장을 다르게 할 정도로 이현령 비현령상태인가? 내가 복음, 네가 복음, 내 성령, 네 성령이 맞지 않나? 결국은 나, 나,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이 현실적으로도 맞고 옳은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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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8 16:16:35
12."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4~5)
이 구절에 근거하여 사고도 신의 의도가 있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은 회개안해서 돌아가셨다고 봐야할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10:29
이 구절을 보면 모든 일에 신이 관여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세월호도 임진왜란도 힌남도 태풍도 매미 태풍도 76년도의 8. 18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도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도 신이 관여한 것인가?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비유로 봐야하나? 문자 그대로 해석과 비유로 해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구절을 문자대로 해석 적용하면 타아티닉호 침몰도, 6.25도, 힌남노도, 내게 일어난 일들도, 세계사 흐름도 모두 신의 뜻, 신의 허락이라고 봐야한다. 안 좋은 일, 좋은 일 모두 신의 허락으로 된 것이 된다. 좋은 일은 물론이고 비극적인 일들도 신의 허락하에 된 것이 된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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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8 01:14:34
11. 세월호 참사에 신의 뜻이 있었는가? 그냥 사고인가?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신의 의도(뜻)이 있었다고 했었는데 신의 뜻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라고 했는데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이 절박한 순간에 합심하여 기도했는데도 신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뭐라고 이 상황을 설명할 것인가? 이번 힌남노 태풍때도 기독교 신자건 불교신자건 무슬림신자건 안믿는 분이건 희생된 분들이 있다. 이번 희생자 한 분 한분에 신의 듯이 적용된 것인가? 신의 뜻은 알 수 없고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일 뿐인가?
비와야 잘 팔리는 우산 장사 하는 아들과 비가 안와야 잘 팔리는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이 장사 잘되라고 어머니가 신께 기도하는데 신은 어느 편을 들어줄 것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히 교인 피랍사건이 났을 때 어느 권사님은 '하나님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런지 궁굼하다"고 했었다. 신이 다 그의 뜻대로 이 일을 진행시킨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 결과는 어찌되었나? 해피엔딩을 기대한 그 권사님의 바람이 실현되었나? 신의 뜻에 대해 목사끼리도 견해차이가 있다. 무함마드가 말했다는 것처럼 신의 뜻이 있는지 없는지는 인간은 모르고 신만이 안다고 하면 되는 것일까? 주저리 주저리 변명말고 신의 뜻이 인간만사 개별 사안에 대해 다 적용되는지 일부에만 적용되는지, 자연현상에도 적용되는지,아예 신의 뜻은 없는지,있어도 알 수 없는지 교단에서 정립하는 것이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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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39.7.55.223)
2022-09-07 11:25:51
10ㅡ1.요셉은 꿈꿀 때에 자기 후손이 노예가 되는 꿈도 ㅇ되는 꿈도 예언차원에서 꿨어야하는데 안 꾼 것은 신이 침침묵했기
때문이다.출애굽이 앞으로 있으리라는 것을 아직은 몰라야 했나?물론 장차 즉 출애급후에는 가나안을 주겠다고 미리 ㅇ예언하기는 한다마는...요셉후손이 애굽에서 창성한다 했는데 그들이 노예가 된다는 예언은 없고...도대체
필요한 면만 설교하고 불리한 것은 빼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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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5 09:36:07
10. 여호와는 천지창조자로서 인간도 창조한 것인데 애급사람도 이방인들도 다 자기가 창조한 인간임이 분명하고 아담의 후손들인데 어찌하여 이방인은 사림취급도 안하고 진멸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런 존재가 사랑의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는가? 후회도 하는 여호와가 전지전능한 신이 맞나?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했으니 자신 외에 다른 신의 존재도 인정한 것이니 유일신도 아니고 질투로 똘똘 뭉친 좁쌀영감이 여호와다. 가나안 사람은 또 무슨 죄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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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5 01:06:11
9. 요셉의 경우를 봐도 처음에는 꿈의 해석을 돕는 다든지 신이 개입하다가 나중에는 요셉이 스스로 알아서 애굽백성을 쥐어짜서 파라오에게 바치는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은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요셉이 잊혀지는 과정에서도 신은 침묵하고 있다. 요셉과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노예생활할 때도 침묵...이런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신이 어디있는가?자신의 섭리고 애굽 총리까지 만들었으면 여호와를 전도할 절호의 찬스인데 침묵하고 방조하다가 전도는 커령 노예를 만들어놓고나서야 자기 백성 구한다고 뒤늦게 등장해서 난리를 치니 이 것이 전지전능한 신, 미래를 예비하는 신이 맞나? 출애급의 원인제공자가 여호와이다. 룰론 출애급자체가 허구이지만...목사들은 요셉의 초기 행적 즉 꿈꾸는 얘기, 총리되는 얘기만 신의 축복이라고 들먹이고는 전도의 기회를 놓치고 애급에서 잊혀지는 얘기와 그 후손들이 노예가 되어 고생하는 원인이 여호와의 침묵때문이라는 사실은 설교에서 언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요셉이 애급백성에 대해 가렴주구의 악행을 하는 데에 침묵한 여화와는 그에 찬성한 것이다. 여기서 도대체 무슨 신의 섭리가 있으며 신의 전지전능을 찾을 수 있나? 앞뒤가 끊어진 얘기에서 부분만 취해와서 여호와가 섭리하네, 미리 예정을 했네라는 말을 할 수 가 있나? 묻는다. 요셉의 악행에 왜 여호와는 침북했나? 깊은 뜻이 있었다면 그게 무엇이냐? 전지전능한 신이 요셉의 후손들이 애급의 노예가 되리라는 것은 미리 알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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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3 21:12:12
8. 자연현상에도 신은 개입하는가? 태양을 멈춘 신이 지금 오고 있는 무서운 힌남노 태풍도 주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연현상일 뿐이고 신은 개입하지 않는가? 노자에 천지불인(天地不仁)이 있다. 자연은 자비롭지 않다. 즉 자연은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할 뿐이라는 것이니 쓰나미가 오고 지진이 난 것은 그럴 만한 자연법칙에 따른 현상이지 그것을 있게 한 어떤 의지,신적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자, 기독교는 어느 쪽인가? 아직 입장이 정리되어있지 않아서 답변이 곤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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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3 19:04:25
7.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고서는 그렇게 되면 신이 손놓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니까 '...선택과 과정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더 관심을 두시죠. 또한 선택과 결정 후에 어떻게 행하시느냐에 더 관심을 두십니다...'라고 하여 선택기준에 신이 관심을 갖고 있으며 결정후 행동방식에도 신이 관심 기울인다고 하면서 신이 전적으로 방임하지는 않으며 신이 일부에는 개입한다고 굳이 강조하는 것이 안쓰럽다. 선택에는 개입안하지만 선택기준과 그 후의 행동에는 관심기울인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이러한 생각도 인간의 해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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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3 17:47:18
6. 신의 뜻은 없다가 아니고 있는데 알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없다고 하자니 신의 주재, 섭리가 무시되니까 있기는 있는데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말장난이다. 알 수 없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신의 뜻이 없다는 것은 신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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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3 17:24:11
5.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사업중에 반도체를 쌓는 것이 나을지 파고 들어가는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쌓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다고 안다. 이때 신의 뜻이 개입했나? 대우 김우중 회장이 사업을 확장할지에 대해 고민할 때 신의 뜻이 있었나? 그들이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천지를 주재하는 신이라면 이 경우에 신이 개입했나? 부처의 탄생과 포교, 이슬람의 탄생은 신이 개입했나? 공자의 탄생과 그의 사상형성에 전지전능한 여호와가 개입했나?임진왜란의 발생과 진행, 종결에 여호와는 개입했나?
스스로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라. 신이 개입해서 여호와의 은혜로 온 것인가? 돌아보고서 여호와의 은혜라고 지금에서야 그렇게 믿는 것인가? 신의 개입이 없이 사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단으로 이성으로 양심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중세철학에서는 이성도 자연의 빛이라고 해서 신이 인간에게 준 귀중한 능력이라고 이성을 중시하면서 이성으로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고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이성을 너무 무시한다고 본다. 사실은 우리는 신의 뜻을 모르니까 이성으로 양심으로 결정을 하면서도 말이다. 여호와도 부처도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은 돌아보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막연하게 천지신명께 감사할 수 있고 여호와를 믿는 사람은 신의 뜻이었다고 은혜였다고 하겠지...신의 뜻은 없다.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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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 (182.216.13.90)
2022-09-03 17:08:56
1. 하나님과의 사귐안에서 자라가기를 힘쓴다.
이 내용은 도덕적 판단의 영역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쉽다는 얘기다. 이 내용은 비신자들도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 판단인지 양심과 이성에 따라 구별할 수 있고 평소의 나름의 수양으로 옳은 판단을 할 힘을 길러야 한다고 볼 수 있으니 굳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은 아니다. 신자의 입장에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에 조율시킨다는 말은 하난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말인데 문제는 말씀과 묵상을 통해 파악된 하나님의 뜻이 조율된 하나님의 뜻이 사람마다 일치하지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불일치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씀일고 묵상을 하면 알게 되는 듯이 얘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고 뒤에서는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라, 알려하지말라 하고서는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는 듯이 얘기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학자의 주장을 두번 정도 자기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서 소개하는데 성경과 학자의 주장을 동등한 가치인 듯이 얘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2.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의 길에 있다.
하나님은 네가 선택하라고 할 것이라는 말이 옳다.아브라함도 일부는 신의 명령에 따랐지만 수많은 선택은 아브라함 스스로 했고 다른 성경의 인물들도 스스로 선택한 경우가 많다. 일거수 일투족을 신이 정해준다면 우리는 로보트일 뿐이다. 결혼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지 신의 뜻을 물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찾는 것은 안전, 번영,성공추구경우가 많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고 사실은 우리는 불안정, 가난, 실패우려가 많은 길을 선택하는 경우 즉 철학과를 선택한다든지, 연극배우가 되겠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알면서도 이런 뻔한 말을 하는가?
대학선택시에 중요한 기준은 대다수가 명문대학을 선택한다. 그 이유를 잘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가? 왜 명문대를 선택하느냐하면 입학후에 공부를 더 좋은 여건에서 해서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하기에 유리해서 명문대를 가는 것이다. 명문대 이름만 보고 가면 안된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직업, 사업을 선택할 때도 돈보고 선택할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고 성취감을 얻고 싶어서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 돈+성취감 둘다 얻으려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 명문대 이름위해 대다수가 선택한다고 뻔한 얘기하지 말라. 살다보면 고난,실패도 있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는 성공을 원한다. 궁극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인가? 악한 성공이 아니고 선한 성공은 얼마든지 추구해야한다. 일부러 실패를 선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있는가? 논지를 확실히 해라. 직장이건 어디에서건 고난을 이기고 선한 성공을 우리 모두는 추구해야한다고 상식에 입각한 말을 해야지 선하게 노력하여 얻은 세속적인 성공이 하찮은 듯이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앟다. 복, 복을 주리라, 신이 축복한다는 얘기가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 복 받는 다는 것이 성공한다는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묘사하는 삐딱한 관점을 고쳐라. 때로는 직장에서 부정을 안하고 불이익을 받는 다든지 좁을 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성과 양심에 따라 많이들 알아서 그렇게 하니 걱정말아라. 뻔한 옳은 소리를 도사인듯이 얘기하면 그 위선에 구토가 나오려 한다.
3.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분점된다.
담임목사 초빙은 교회구성원들의 중지를 모아 결정된다고 본다. 민주사회의 원영원리가 적용된다. 여기에 신의 뜻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신의 뜻을 명확하게 모르니까 인간끼리 토론하고 결국은 다수결로 하거나 제비뽑기로 할 수 밖에 없다. 누가 결정하는가? 인간이 결정한다. 이해관계, 토론과 다수결에 참가하는 구성원의 지적, 신앙적,이성적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뽑기에도 신이 개입해서 특정인을 뽑게 된 것일까? 그렇게 보나? 아니다. 신은 개입하지도 못하고 운이 결정한 것이라고 보는게 정확하고 정직하디.그 다음은 그야말로 뽑힌 사람이 하기에 달려있다.어느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식사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새로 옮겨서 신축하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면서 신축해서 옮겼다. 그게 믿어지는 사람은 그렇게 믿어라. 내가 보기에는 자기 확신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표현한 것뿐이다. 신이 그렇게 구체적인 일을 지시하고 알려준다고 믿나? 이 글의 필자인 김영봉목사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으로 보이는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 경우는 욕심의 표현일 뿐이다.신의 뜻이 아니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는 것이 인생이다.
4. 눈 딱 감고 하나님께 맡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의 뜻은 없다. 인간들이 결정하고 신의 뜻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뒤집는다. 다 알다시피 어느 대형교회도 원로목사와 교인들이 새 담임을 신의 결정이라고 초빙하고서는 나중에는 원로가 새 담임에게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따지면서 후회했지 않은가? 네 성령, 내 성경, 내가 복음이고 네가 복음이다. 인간이 결정한다. 단 그 인간의 결정이 양심과 이성에 따라 하면 좋은 것이다. 신의 뜻이 개입하지 않는다. 6.25는,2차 세계대전은,30년종교전쟁은, 십자군전쟁은,4.19혁명은,임진왜란은, 신의 뜻으로 일어났나? 아니다. 인간들이 일으켰다. 내가 태어나고 이렇게 살아오는데에 신의 뜻이 개입되면서 살아왔을까? 아니면 내가 선택하고 노력하고 책임지면서 살아왔는가? 내가 책임지고 살아왔다.
신은 사사건건 계시로 응답하지 않는다고 즉 신의 뜻은 알 수없다고 하고서는 돌아보면 신의 뜻이 보인다는 얘기는 모순이다. 신의 뜻이 없다고 하고서는 신의 뜻이 알고보니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신의 뜻을 모른다는 얘기는 신의 뜻이 없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신의 뜻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가 신의 뜻이 있다는 모순된 얘기를 하고 있다.
부임한 교회에 간 것이 신의 뜻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은 자신의 노력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노력이 신의 뜻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는 얘기이니 하나마나한 얘기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처음에 신의 뜻이 있었느냐여부인지를 알면서도 하나마나한 얘기를 자신없게 하는가?
신의 뜻은 없다. 그런데도 강단에서 수많은 목사들이 신의 뜻대로 말씀대로 살면된다고 순종하면 된다고 설교한다. 신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수 있나요?말씀대로 살면 된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의 해석이 자꾸 바뀌는데 어떤 해석이 진짜인가요? 그냥 알아서 적용하면 되는 가요?라는 질문에도 답을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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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땡2 (27.100.163.45)
2022-08-30 04:12:47
목사 청빙법을 제정하시라
위에 글을 동감하며 부끄러운 일이고 전부이렇다고 하는 것은 아님을 전제로 드리는 글입니다. 교회 인사구역회나 후임목회자 청빙위원들은 후임 목회자 청빙과정에서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볼줄아시는지
건강한 교회되려면 목회자 청빙법을 제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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