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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종진장로 추도예배 및 출판기념회 열린다.1월 9일(화) 오후 5시,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10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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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2월 20일 (수) 00:00:00 [조회수 : 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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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농민운동가 故 최종진장로(형제교회)의 추도예배 및 출판기념회가 2007년 1월9일(화) 오후 5시,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농민운동가 고 최종진 장로 10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열린다.

   
   

김근태는 수 년 전에 폐암으로 작고한 농민운동가 최종진을 말하면서
평생 잊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최종진이 투병생활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나와 단둘이서 만나 여관에서 밤을 세우며 얘기를 나눴다. 그때가 바로 김대중 지금의 대통령이 낙선하고 영국으로 떠났든가. 최종진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김대중 ㅇ새끼!"라며 이를 갈았다. 그래서 나는 눈치를 채고 김대중을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얘기를 접었다. 그랬더니 이어서 최종진은 "근태 형은 잘돼야 할텐데"라고 걱정을 했다. 이 뜻은 김근태 개인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는 소원이기도 하지만, 이 말 속엔 김근태는 `민중과 함깨 하는 지도자`라는 간절함이 깃 들어 있기도 했다. 이 후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병원에서 운명을 했다. 나는 한없이 울고 울었다. 최종진보다 나이 몇 살 더 많다고 늘 `형님``형 대접`을 받았다. 서로 우리는 정이 들었고, 그는 우리시골 집에 와서 자고 갈 때도 있었다. (김근태)

그는 농민운동가답게 늘 겸손했다. 그는 얼마든지 훌륭한 목사가 될 실력도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가난한 농민의 벗이 되어 주었다. 최종진 장례식 날 영결식이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정에서 열릴 때, 김근태 국회의원은 갈아 앉은 목소리로 `조사`를 했다. 그 조사를 들으며 나는 한없이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최종진을 생각하면 한 없이 서러웠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이 땅의 젊고 큰 일꾼을 빼앗아 간단 말입니까.

우리 농민들의 희망이었던 최종진은 지금 경기도 모란공원묘지에서 문익환 목사와 전태일 곁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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