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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너 영어 좀 할 줄 아니?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꿈꾸며
이강무  |  lkmlh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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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03일 (수) 15:19:52
최종편집 : 2022년 08월 03일 (수) 15:21:00 [조회수 :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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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훌륭한 신학자들의 여러 신학적 연구과정을 높이 사고 존경한다. 하여 신학교 다니는 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신학자들의 신학사상을 공부하고 저서들을 탐독하였다. 그리고 현장목회에 나와서는 그동안 학습한 신학훈련으로 나의 신앙을 정리한 후, 예수의 생애와 삶에 초점을 맞춰 실제로 예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흉내라도 내려고 노력하였다. 신약성서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을 표본으로 삼아 나의 삶 속에서 예수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내가 목회하는 동기다. 물론 불트만의 ‘공관복음전승사’와 같은 성서연구 서적들을 통하여 복음서의 사실적인 면과 삽입되고 전승된 부분들도 충분히 학습하고 인지하였다.

     대학원시절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에 당시 한국감리교단 종교철학분야의 석학 세 분, 변선환박사, 김흥호 할아버지, 이정배박사에게 논문심사를 의뢰하고 석사논문을 쓰기로 작정하다. 주심 변선환 박사를 찾아갔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너 영어 좀 할 줄 아냐?” 하시는데, 네가 감히 나에게 논문을 쓰려하느냐는 듯 가소롭다는 말 같기도 하고 겁주는 말 같기도 하였다. 강의실에서 열정적으로 재미나게 강의하시던 모습만 보아왔던 나는 그분이 그렇게 냉정하고 엄하신 줄은 미처 몰랐다. 비록 당시에 나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난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도전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사전만 있으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너 종교철학을 전공했으니, 내가 주는 존 캅의 저서와 아티클로 존 캅의 불교를 정리해 봐!" 하며 원서를 몇 권 던져 주셨다. 그리고 "석사학위는 한 사람의 신학자만 잘 연구해도 대단한 수확이야. 제목은 ‘존 캅의 불교신학에 대한 한 고찰’로 하고 소제목은 네가 알아서 정하여 써 와!”하시며 직접 변박사님이 자필로 위와 같이 제목을 써 주셨다.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교 대학원에는 ‘종교철학’전공이 없어서 조식신학으로 학위를 받았지만 내가 논문 쓴 것은 실제로는 ‘종교철학 석사학위’ 논문이었다. 위 제목을 만족시키는 논문을 쓰려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를 이해해야 하며 선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어져야 하다. 변박사가 주신 영문원서와 그간 내가 준비한 책들을 차에 싣고 충주 남산 밑 과수원의 농막을 빌려 약 한달 동안 논문을 열심히 썼다. 다 쓴 원고지를 싸들고 변박사님을 찾아 갔더니 변박사님이 한 참 논문을 훑어보시더니 왈,

     “이 논문 누가 써 준거니?”

     “누가 써 줄 사람이 있어요. 내가 썼지요.”

     “그래?, 그럼 심사 날 오라”며 논문심사일을 정해 주시다. 심사 날, 학장이신 변박사님 방으로 들어가니 철학자 김흥호 할아버지와 이정배 박사가 내 논문 복사한 것을 여러 군데 접어서 질문할 준비를 해 가지고 오셨다. 심사가 시작되자 이정배 박사가 처음으로 질문하다. “불교에 신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있느냐?”고 질문하시다. 하여 내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변박사님이 나의 답변을 끊으며, “자, 지금부터 모두 노코멘트 하십시오. 그리고 이 논문을 일점일획도 고치지 말고 그대로 출판하도록 하시오.” 하며 심사위원들에게 마치 경고하듯이 말씀하셨다. 그러자 김흥호 할아버지도 이정배박사도 아무 질문도 못하시고 그냥 심사를 정지하고 싱겁게 논문심사가 끝나다. 나로서는 시원하게 잘 끝나서 당시엔 좋았지만, 가끔 생각나는 것은 그 때 두 분이 내 논문에 관하여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그렇게 많이 접어 오셨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다. 여하튼 그렇게 하여 한국교회의 현장목회자로서는 내가 제일처음으로 ‘불교(Buddhism)로 석사논문을 쓰게 되었으며 그 후 불교국가 스리랑카에 선교하러 가서 불교의 승들과 관계를 갖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이도 역시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다.

     그 후 약 1년이 지난 후, 충주 남부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강습회 하는데서 우연히 감신대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내 이름을 알아보고 하는 말이 변교수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너희 선배중 이강무라는 사람이 충주에서 목회를 하는데, 요 근래에 들어서 가장 잘 된 논문을 썼다“고 내 자랑을 하시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단다. 그리고 내 논문이 잘되어 전국신학교에 모두 보내도록 했다며 너희들도 읽어 보라고 했단다.

     그리고 한 1년 지났을까? 강원도 고성에서 목회하는 종철과 후배 목사가 협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쓰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가 내 논문을 봤다고 전화를 하였다. 그제야 내 논문이 전국신학대학에 배부된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학 공부하던 8년 동안 늘 투병생활하며 신음 신음하던 내가 이만한 논문이라도 쓴 것을 스스로 대견하여 말해보는 거다.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늘 아파서 고생하던 나에겐 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 글은 필자의 저서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꿈꾸며"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에서 당당뉴스 독자들을 위하여 한 챕터씩 올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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