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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생활보장의 제도화는 가능할까요?
황창진  |  산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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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8월 01일 (월) 22:08:46
최종편집 : 2022년 08월 08일 (월) 22:38:25 [조회수 :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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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시리즈 “길을 찾다”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기 위해 감리회목회자 모임 <새물결>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이 작업이 목회자와 평신도의 균형 잡히고 건강한 믿음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발걸음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다섯 번째 연재를 이어갑니다.

 

목회자 생활보장의 제도화는 가능할까요?

 

황창진 목사 (산돌교회)

 

<질문> 저는 이중직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입니다. 어려운 목회적 환경에서 이중직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경험하기도 하는 등 고민이 있어서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합니다. 교회는 공적인 교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회 중에는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교단적 차원에서 책임져 주는 교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생활보장에 관한 성서적은 근거는 무엇이며 목회자 생활보장의 제도화의 가능성이 궁금합니다. 또한 사회에서는 육아휴직 등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데 목회자의 복지 문제로써 육아휴가, 육아휴직 등이 교회내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요?

 

   
 황창진 목사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 개신교회의 상황이 개교회화, 사회적 신뢰도 하락 등 여러가지로 어려워진 환경속에서 목회에 임하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신 줄 압니다. 질문해주신 이중직 목회에 관하여는 관점에 따라서 이중직 목회를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목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려는 시도로써 이중직 목회를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으로 제안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은 충분히 가능한 시도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께서 물어오신 내용은 기존의 목회 질서하에서의 목회자로서 성실하게 목회에 임하고 싶으나 여러 가지 어려운 목회적 환경 때문에 이중직을 수행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경험하신다는 취지의 질문을 주셨으니 이에 대한 응답은 질문자의 질문의 취지에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해보겠습니다.

 

1. 공 교회에 관하여

 

질문에서 지적해주신 대로 교회는 공 교회이어야 합니다. 공적교회는 세계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기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의 이슈에 참여하는 공적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리스도교적인 헌신과 소명이 우리 사회에서 균형잡힌 실천적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속한 사회속에서의 공 교회의 균형잡힌 실천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는 교회 안에 침투한 자본주의를 허용하면서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에 기반한 교회성장에 집중하고 있는, 공적교회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개교회화 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공적교회로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야 하는 참된 교회의 모습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서 본래적 교회인 공교회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에 뿌리를 내린 번영신학과 이로 인한 교회성장주의, 그리고 개교회 성장에 몰입하고 있는 현장 목회자들이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수용한 기복신앙은 ‘개교회중심주의’라는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의 신앙의 지대를 점령하여 교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을 넘어서는 우상으로서의 맘몬을 숭배한 한국교회의 욕망이 만들어낸 부작용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고 있으나 이러한 기도는 구호에 그쳤고 욕망에 휩싸인 교회는 잉여물을 창출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던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꾸려진 교회운영을 통해서 나타난 현재의 교회는 지독한 교회 양극화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극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개신교회는 경쟁적 교회운영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크기와 수치를 늘리는 일에 집중하다가 평등공동체로서의 공적 교회의 모습을 상실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에 진학하는 신학생은 학비일체를 본인이 부담하며 학업을 마치게 되고 교회를 새롭게 세울 때에도 목회자와 교회의 자본의 능력에 따라서 교회의 지속가능성이 결정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대부분의 교단들은 신학생의 학업과 교회가 창립될 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목회적 환경에서 많은 목회자들은 신학생때 부터 목회현장이 재정적 자립을 이룰때까지 경쟁적 상황하에서 각자도생의 목회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자신의 활동을 통하여 이러한 경쟁적 구조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로 요한복음5장에 나타나는 베데스다연못가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는 이렇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연못의 물이 움직이게 할 때에 제일 먼저 그 연못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병을 치료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곳에서 38년 동안 누워있는 사람이 예수의 눈에 들어오면서 베데스다 연못가 질서의 실체가 모두에게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와서 물이 동하고 그 물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의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자비로움이 펼쳐지는 장소로 읽혀지는 대목일 수 있지만 그렇게 보여지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기존의 질서는 38년 된 환자의 한마디에 의하여 산산이 깨어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요한5:7)

이렇게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의 질서는 경쟁적 질서였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비로움을 누릴 수 없고, 일등을 못하는 사람이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아무도 이러한 사람을 살펴주지 않는 냉정한 경쟁만이 존재하는 그런 삶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차가운 경쟁적 질서가 작동하는 곳에 개입하셔서 경쟁적 질서를 해체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를 바라보시는 예수께서는 다른 이들이 자비롭게 보아내는 곳, 능력 있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는 세상을 ‘아니라’ 하시면서 사실은 비참하고 냉정한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곳은 온기가 없이, 경쟁만이 존재하여 이기지 못하는 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가득한 비참한 세상이었다는 것이죠. 이에 예수께서는 38년 된 연못가의 비정한 질서를 거부하면서 환자를 향하여 한 마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요한5:8)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베데스다 연못가의 경쟁적 질서를 해체하고 38년 된 환자를 일으키시는 포스트-모더니스트/post-modernist로서의 예수님을 따르는 공적교회임을 고백을 하고 있다면 개교회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고 공교회로서의 구조를 재정립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는 기본적인 삶에서 소외되어 있는 목회자들이 소외를 극복하고 교회공동체의 자존감 높은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존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공교회에 최적화된 교회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2.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의 성서적 근거

 

이렇게 개교회중심주의를 극복하고 공교회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하는데 경쟁적 구조를 극복하고 평등적 구조를 지향하며 교회의 구성원들의 삶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한 이야기가 교회공동체 안에서 시행된 예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초대교회의 실천적 나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나눔을 실천함에 있어서 ‘능력에 따른 나눔’보다는 ‘필요에 따른 나눔’(행4:35)을 시행함으로써 교회가 평등적 가치에 기반한 공동체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나눔 때문에 초대교회의 구성원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행4:34)라고 증언하고 있는 대목은 ‘능력에 따른 생존’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의 교회에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나눔의 실천은 교회가 자본적 구조에 매몰되어 있는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의 근거가 되는 구약성서의 내용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거주지역을 분할함에 있어서 레위 지파에게는 거주할 곳으로서의 분깃을 나누어주지 않고 타 지파가 보내오는 십일조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신명기 14장 27절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사는 레위 사람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또한 신명기 14장은 십일조의 용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접근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매 삼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 . . 떠돌아니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 .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공동체 안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나눔에서 소외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신명기의 특성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는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신앙공동체의 전통을 명문화하고 있음으로써 신앙공동체의 기능 중에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함을 말하고 있는 책이니까요. 이는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정상화/normalization 라는 개념에 대한 성서적인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중세교회 전통에서도 공적교회의 모습을 가늠하게 하는 성직자 생활보장제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세교회는 성직록聖職祿이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성직에 부여된 종교적 의무(officium)를 수행하는 성직자에게 교회가 부여하는 물질적인 직봉(職俸, praebenda)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성직록이 존재하지 않았답니다. 그렇지만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도 하였는데 그 목적은 가난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교회가 상당한 재산을 취득하게 되면서 주교들이 교회재산의 일부를 성직자의 생활비로 사용하도록 하는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성직록 소유자는 자기 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재산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교회의 사업, 특히 빈민구제사업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초대 교회 이후 관례로 정착되어 왔습니다, 또 성직록은 해당 성직자의 생전에만 유효하고 사후(死後)에는 교회로 반환되는 전통이 있었던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에 관해서 감리교회가 감독제도에 기반한 교단이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내용이 있습니다. 감독제도는 감독/bishop이 교구장이 되고 그 교구에서 일하는 목회자들의 안수와 파송을 책임지고 있으며 나아가서 목회자의 생활에 관한 책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감독은 복음전도자들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것을 가능하게 한 기반은 connectionalism(연결주의)이었습니다.

 

   
 

3.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의 실태와 전망

 

이러한 성서적 근거와 교회의 전통위에서 일부 개신교단은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세군은 구세군의 내부 규칙, 즉 군령, 군율에 따라서 호봉제를 실시함으로 구세군 사관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주고 있고, 루터교 또한 교회를 창립할 때에 교단이 적극적인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으며 교회 창립이후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활과 목회자 재교육까지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장로회와 성공회는 미자립교회를 위한 생활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리교회는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에 관하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남연회 실행부회의에서는 2022년 6월, 미자립교회를 위하여 4년간 7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안을 결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의 시도와 시행은 교회가 제도적인 요인으로서의 공적 교회의 요인을 확보해나간다는 것과 제도 도입의 첫 발자국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개교회화 된 교회 분위기 속에서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해온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가 개교회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익숙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공 교회는 무엇이며 공교회를 위하여 어떠한 학습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인식에 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접근이라는 부분에서는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취약성은 공교회의 신학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과 제도적 도입을 위한 과정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목회자 생활보장제도 도입을 위한 과정에서의 논의와 활발한 토의는 공적 교회에 관한 관심을 일으키는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또한 이러한 논의를 통한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교회온정주의에 의하여 재정적 여력이 있는 교회가 개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미자립교회를 위한 선교적 노력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제도 아래에서 수행되도록 하는데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목회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공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소양을 학습하고 수용하면서 법제화하는 일에 뜻을 모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의 내용 가운데 있는 육아휴직과 육아휴가도 일정부분 목회자 생활보장제도와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 생활보장제도는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줌으로써 목회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신교회안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제도로서의 육아휴직과 육아휴가도 목회지속성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라고 보여집니다. 이 육아휴직과 육아휴가에 관하여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워라벨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성목회자의 경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자녀양육은 목회지속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교회내 가족정책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은 교회가 목회자의 가족에 관하여 어떠한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치관은 집단이나 개인의 사회적인 행동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교단이 가지고 있는 목회자 가족에 관한 가치관은 제도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적인 상황에서는 목회자 가정의 가치관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실적이 확인되는 등의 교단적인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노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교단에서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목회의 경력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육아휴직과 육아휴가에 대한 정책도입의 노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목회자가 출산으로 인한 휴가가 필요할 때에 교단이 여성목회자가 일하고 있는 교회에 설교자를 파송하고 그 비용을 지원해주는 식의 노력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개신교회의 목회자 가족에 대한 가치가 교단 내에 확립이 되고 그 가치에 따르는 육아정책이 세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목회자 생활보장제도는 목회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교단이 정책적으로 지원함으로 교회가 평등공동체임을 드러내는 것과 더불어 목회자가 목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교회의 안정된 상황을 꾀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회는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숙고해야 하며 목회자들은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이러한 제도하에서 성실하게 목회에 임하는 공교회 구성원으로서의 의지를 굳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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