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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드란트만 내야 할까, 생활비 전부를 다 내야 할까?
최창균  |  onnure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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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7월 16일 (토) 08:33:04
최종편집 : 2022년 07월 17일 (일) 19:29:41 [조회수 :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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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아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마가복음서 12:41, 새번역)

이 본문은 헌금 많이 내라는 주장으로 남용되기 쉬운 구절입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희들도 이 여인처럼 생활비를 다 내라고 하시거나, 혹은 이 여인처럼 한 고드란트만 내도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부자들의 헌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푼돈을 낸 사람이 조롱당하거나 비난받기 쉬운 환경에서, 그 가난한 사람을 두둔해 주신 것이죠. 약자의 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고아와 과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선대하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구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의 빈부격차를 비판하신 구절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 어려운 사람에게 생활비를 다 내게 해서 되겠느냐, 이런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도 담겨 있다는 해석이죠.

그 여인처럼 한 고드란트만 내야 한다고 하면 이상하듯이, 그 여인처럼 생활비 전부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극단에 치우친 주장입니다. 교회에 많은 액수의 헌금을 낸 사람만 칭찬받고 적은 액수를 드린 가난한 사람은 무시받으면 안 된다는 것, 사회적 약자들이 더욱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좀 더 올바른 해석과 적용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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