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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과의 만남 그리고 이별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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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23일 (목) 02:13:52 [조회수 :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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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비가 내렸다. 긴긴 가뭄 끝에 내린 비라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동남아의 스콜 마냥 갑작스럽게 쏟아지다 순간 그치는 비여서 매우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였고 그에 따라 하늘이 내려준 날씨 또한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잘 맞춰지곤 했다. 기상청의 예보도 별다르지 않게 순탄하게 예측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사계절은 하나씩 변화를 맞기 시작하여 지금은 짧은 봄과 가을, 긴 여름, 그리고 엄청 춥다가 따뜻해지는 이상한 겨울을 맞기 시작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농사다. 뚜렷한 사계절과 절기에 따라 농사를 지으며 하늘의 섭리를 따르는 농부들의 삶이 갈수록 더 순탄치 않다. 올해의 봄가뭄은 그 어느 해보다 심해 보인다. 지역의 큰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어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고 있다. 그 옆을 오가며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비가 내린 저녁, 마당 한 귀퉁이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힘차게 났다. 울음소리는 성묘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빽빽거리는 소리는 분명 이제 갓 태어난 자묘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돌과 돌 사이에 비에 흠뻑 젖은 채 울고 있는 어리고 어린 고양이가 보였다. 보아하니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보였다. 그 한 마리만이 아니었다. 충견 한라가 수돗가에 있는 돌 밑에 자꾸 입을 대고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다가가니 거기에도 널브러져 있는 아기 고양이가 빽빽거리며 어미를 찾고 있었다. 두 마리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한 마리는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체온이 차가웠고, 다른 한 마리는 한라에게 몇 번의 공격을 받았는지 침이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고양이 어미와 한라를 한번씩 째려보고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수건으로 두 냥이를 감쌌다. 저체온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따듯한 공간에서 편하게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 몸을 닦아주고 도포를 해 준 것이다. 

어지간히 울었다. 아기 울음소리와 비슷한 응애응애 하는 소리가 방안 전체에 퍼졌다. 한참을 그렇게 울더니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더니 그중에 한 마리는 쌔근쌔근 잠에 빠졌고, 다른 한 마리는 여전히 울어댔다. 그 울어대는 녀석을 안아 어르고 달래었다. 젖은 털을 보송보송할 때까지 닦아주고, 머리와 목덜미를 쓰다듬고, 체온을 높여주려고 여행용 이불로 감싸주기도 했다. 물도 먹였다. 그랬더니 쩝쩝거리고 입맛을 다시는 시늉을 했다. 살고자 하는 힘이 대단했다. 집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 내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코를 벌름거렸다. 그리곤 아무짓도 하지 않은 작은 냥이들을 향해 하악질을 하였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온 낯선 고양이에게 경계와 위협을 보인 것이다. 두 마리 모두 쿠션에 머리를 박고 깊은 잠에 취했다. 젖었던 털이 마르니 보송보송한 털로 제법 고양이 태를 보여주었다. 수 년 동안 고양이들을 지켜왔지만 내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를 직접 만져보고 쥐어보긴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니 걱정이 올라왔다. 어린 두 냥이가 잘 살아나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녀석들을 어떻게 키우느냐이다. 이튿날 냥이들의 어미 옆에 갖다 놓았더니 어미는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자식들을 키울 생각은 하나도 없는 듯 보였다. 몇 번의 회유를 하고 난 뒤 다시 집안으로 들여와 같이 지내기로 했다. 젖병도 구하고 우유도 구했다. 그러나 냥이들은 먹질 못했다. 결국 한 마리는 이튿날 구름다리를 넘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살아난 다른 한 마리에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돌담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돌담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스스로 살려고 애썼다. 조금씩 먹기도 하고 잠도 충분히 잤다. 그러나 녀석의 살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나흘 정도만 살다 구름다리를 건넜다. 있는 동안 꽤 애교를 부려 마음에 깊은 정을 새겨주었는데 말이다. 단 나흘을 살다간 돌담이도 먼저 간 냥이 옆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일년에 한두 번씩 겪는 일이다. 어지간히 겪은 일임에도 생명들이 구름다리를 건널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 생명체에겐 마음이 더 쓰인다. 이렇게 한번씩 오고 가면 이름을 괜히 지어주었나 싶기도 하지만, 고양이들도 다 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는 뒤를 돌아보지만, 그냥 “야”라고 부르면 정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같은 고양이라도 이름이 있으면 가슴에 새겨지고, 이름이 없으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 이유로 가슴에 새긴 녀석들은 오래 남고, 머릿속에 그린 냥이들은 금새 잊혀진다. 누군가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이름이란 것이 참 묘하다. 겨우 나흘 같이 있었을 뿐이었는데 집안에 들어와 소파를 볼 때마다 늘 그곳에서 잠을 청했던 돌담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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