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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통치 -시편97편 묵상햇볕같은이야기
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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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19일 (일) 11:32:43
최종편집 : 2022년 06월 19일 (일) 11:36:49 [조회수 :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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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사진:최용우)

1.여호와의 통치 -시편97편 묵상

 여호와의 통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공의와 정의가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시97:1-2) 이 세상은 긴 시각으로 보면 공의와 정의가 작동되는 세상입니다. 그 거대한 힘을 자랑하던 과거의 패권국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습니까? 권력자들은 또 어디로 갔습니까? 아무리 이 세상이 금방 멸망할 것처럼 악(惡)인이 득세하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께서 설계해 놓은 이 세상의 작동 원리입니다. 
 ‘여호와의 통치’라고 하면 뭔가 무서울 것 같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통치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입니다. ‘여호와의 통치’가 주제인 시편 97편은 기뻐하라는 말로 시작해서 기뻐하라는 말로 끝납니다. 즐거움, 기쁨이라는 단어가 여섯번이나 나옵니다.
 우리가 ‘기쁘다’고 느끼는 감정은 사실은 ‘기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 것인지 내가 명품 가방을 들고 있어 기분이 좋다가도 누군가 나와 똑같은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것만 봐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여호와의 통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주어지는 삶의 존재론적 능력으로서의 ‘기쁨’을 줍니다. 기쁨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면 기분을 따라다니지 않고 기뻐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쁨을 우리는 ‘성령 충만’ 또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사진:최용우)

 2.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면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불이 사방을 불태워 버린다. 번개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밀납같이 녹여버린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을 자랑하는 자들은 다 수치를 당한다.’(시97:3-9) 여호와의 통치가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고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2.아무도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의와 공평을, 즉 그의 심판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공연히 겁주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화산폭발처럼, 그리고 번개처럼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없다’는 무시무시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하나님은 없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자가 자기가 만든 인간을 지옥에 보내 고통을 받게 하는가?” 하고 따졌습니다.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에 지쳐서 그냥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논쟁’이 아니라 진짜 그것이 궁금하다면 이미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수많은 논문과 책으로 대답을 해놓았으니 그냥 알아서 찾아 읽어보시오.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 안에도 널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따르겠다고 하고 안 따르는 아들과, 안 따르겠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따른 아들 중에 누가 더 나쁜 놈이오?”(마21:28-32)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호와의 통치에서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들이 더 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사진:최용우)

3.여호와께 순종하는 삶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은 순종하는 삶입니다.(시97:10-12) 여호와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의 나라 백성이 되었으며, 이제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여호와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순종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10:9)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 한다”(요5:3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신 것과 수난당하신 모든 것에 대해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10:18) 예수님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순종’이고 이 순종이 구원의 본질입니다.
 여호와께 순종하려면 먼저 여호와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지 않으면서 어떻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습관이 되도록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어가지고 다니며 읽은 것처럼 다른 이유 달지 말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으라고 하면 읽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 다음에 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날마다 많은 말씀을 다 적용하려면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선 날마다 말씀 한 절씩만 내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에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중에는 정말 말씀이 꿀송이보다도 더 단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진:최용우)

  4.여호와를 기뻐하는 삶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입니다. 여호와는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시97:11) 기쁨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뿌려 주시는 선물입니다. ‘기분’을 따라다니지 않고 마음을 정직하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십니다. ‘기분’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기분과 기쁨이 글자는 비슷하지만 그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교회에서 세례받을 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요약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중에 ‘소료리문답’을 배웁니다. 가장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은 “인간의 근본 목적은 무엇이뇨?”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니이다.”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로 물을 넘치도록 공급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듯,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함을 통해 삶의 의미와 생명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 인간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느8:10) 고 합니다. 돈을 의지하면 한순간에 다 날아가버립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한순간에 배신을 당합니다. 세상의 쾌락을 의지하면 그 끝은 허무와 절망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가 우리의 방파제가 되시고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기에 우리는 저절로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히브리서11장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진:최용우)

 5.여호와를 경배하는 삶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은 ‘여호와를 경배하는 삶’입니다.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97:7) 경배란 ‘①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으로 가득찬 성도가 ②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③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④하나님을 합당하게 높여드리고 동시에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 사건에 처음으로 ‘경배’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경배(敬拜)는 2e+16입니다. ‘경’은 1뒤에 동그라미가 16개 있고 이것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이 ‘배’이니, 인간의 상상 밖에 있는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경배’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리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불변적인 영이시며 경배보다 경배 더 크신 분이십니다. 그런 경배의 하나님을 우리는 우리의 생각만으로 너무 작고 옹졸하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 중에 한가지인 ‘예배’는 일정한 형식이 갖추어진 경배의 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4:23).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일은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통해 하늘의 힘과 지혜를 얻고 변화된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이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삶입니다. 

   
(사진:최용우)

 6.여호와를 사랑하는 삶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시97:10) 그러니까 ‘악’을 미워하는 것이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여호와와 악은 절대로 같이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악’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자신의 독생자 아들까지 죽게 하심으로 악(죄)을 차단하셨습니다. 악을 미워하는 의인을 위해 여호와께서 빛과 기쁨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연구하여 지켜야 될 율법을 찾아보았더니 ‘하라’는 긍정적인 율법이 248개,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율법이 365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뼈마디가 모두 248개인데 ‘하라’는 율법 248개를 다 지키면 뼈마디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 일년이 365일인데 ‘하지 말라’는 율법 365개를 잘 지키면 1년이 잘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서 큰 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신약에서는 ‘그의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들이 사랑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내가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훨씬 좋기는 하지만. 
 여호와를 사랑하는 삶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진:최용우)

7.여호와께 감사하는 삶
 
 여호와의 통치를 받는 삶은 ‘여호와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시97:12) 스펄전은 “반딧불을 감사하면 촛불을 주시고 촛불을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감사하면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감사하면 예수님을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맛보게 하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감사는 명령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바울은 ‘감사 좀 해 주시오’ 하고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라!’ 하고 군인처럼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명령 불복종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만약 전쟁 중이라면 상관이 총으로 사살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 만큼 엄격한 것입니다. 
 감사는 I(아이)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고로 항상 ‘나는’ ‘내가’ ‘제가’ 하고 아이형 언어로 해야 합니다. 내가 빠진 감사는 대형 쇼핑센타 문을 통과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녹음된 목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감사는 동사형입니다 ‘동사’는 움직씨 즉 움직이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서 살아있는 느낌이 들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뛰어가다, 도약하다, 노래하다 등등 우리가 듣기만 해도 활력이 넘치고 생동감을 갖게 해주는 그런 동사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나 동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감사했었다가 아니라 지금 현재 감사하고 있는 중이라는 표현입니다. (감사노트 무료 다운받기 https://vo.la/1xdlxx) 
 
 ♥2022.6.18 흙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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