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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의 추억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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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17일 (금) 23:04:57
최종편집 : 2022년 06월 17일 (금) 23:06:45 [조회수 :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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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지방선거가 있던 날, 모처럼 아내와 함께 강원도 철원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제 고향과 가까워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거니와 사람들이 많이 없어 즐겨 가던 곳이었는데 서울로 돌아와 약 2년 만에 다시금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자체마다 하나씩, 여기저기에 구름다리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찾아가 조용히 그 곁을 걷노라면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라는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던 파주의 마장호수는 이미 오래전에 구름다리 명소가 되어 인파 속에서 전투적으로 걸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포천의 비둘기낭 폭포 주변에도 구름다리와 널따란 주차장이 생겨서 둥지와 같은 포근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면 지금도 도연명이 배위에서 시를 읊으며 다가올 것만 같은 철원의 한탄강 절벽 위에도 다리가 걸렸습니다. 그런데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은 멀찌감치 조성해 놓고선 다리 바로 앞에는 그럴싸한 까페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도 협곡을 바라보며 여러 건물들이 무분별하게 건축 중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선거 기간 동안에는 우리 교회가 자리한 동대문구 유세 현수막에서 중랑천 구름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지방선거일이라 더욱 심란했던 것 같습니다. 지방 자치의 의미는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고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 지역 주민을 더욱 행복하게 하며 그들이 사는 땅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을진대 지역 축제나 구름다리 등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나 난개발과 지역 토호 세력들과의 결탁으로 인한 부정적인 모습들이 점점 고착화 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2004년 독일을 처음 방문했을 때, 라인강변 로렐라이 언덕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라는 노래로 친숙한 로렐라이 언덕은 그 명성과 달리 너무나도 소박했고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코펜하겐의 인어공주 동상과 더불어 로렐라이를 유럽의 삼대 실망 포인트라고 하지만 저에게는 그 날의 추억이 아직까지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곧 소개해 드릴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와 그 시에 음악을 입힌 프란츠 리스트의 가곡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로렐라이에 실망을 했다지만 그 날 저를 놀라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로렐라이 주변에 다리가 없어서 차를 배에 싣고 라인강을 건넌 일 때문이었습니다. 로렐라이 언덕은 마인츠와 코블렌츠 사이의 라인강 동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인츠와 코블렌츠는 약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 구간에 다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과 돈, 여러 가지로 불편했지만 독일인들에게는 당연한 듯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이었습니다. 돈이 없고 기술이 없고 자동차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연 앞에, 인간과 자연의 공존 앞에,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앞에 인간의 편리와 관광 수익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구름다리를 지을 때에는 분명 다른 지역의 예와 다리 건립을 통한 경제적 수익 창출 효과를 대대적으로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자연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과 후세를 위해 그 정도의 불편함과 경제적 손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부디 이번에 새로 뽑힌 우리나라 지방의 일꾼들은 진정 자기 지역과 사람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로렐라이 노래의 가사가 독일의 위대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멜로디가 민요나 동요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의 독일어 첫 구절만 살펴봐도 범상한 이의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Ich weiss nicht, was soll es bedeuten, Dass ich so traurig bin/내 마음 이토록 슬퍼오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알 수 없어요” 

시인은 로렐라이를 동화나 신화 속에서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느낍니다.  얼핏 로렐라이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 같지만 시인은 사실, 로렐라이가 자신의 마음에 던져 준 파장(Die Lorelei getan)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느 새 시인은 작은 배 속의 뱃사람과 동화됩니다. 그리고 그가 삶을 가로막고 있는 눈앞의 암초가 아니라 높은 곳에서 빛나는 로렐라이를 바라보는 것을 선택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민요풍의 노래는 질허/Philipp Friedrich Silcher(1789~1860)가 작곡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이네의 시를 살리다 못해 더 아름다운 시로 만들어 준 곡이 있으니 바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1811-1886)의 ‘Die Lorelei(S.273/2)입니다. 두 번에 걸쳐 이 곡을 가다듬을 정도로 리스트는  심혈을 기울였고 그 정성에 걸맞는 명곡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리스트는 수도자의 삶을 갈망했고 1857년에는 세상 속에서 수도자의 자세로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The Third Order of Saint Francis (성 프란체스코의 제3회)에 가입할 정도로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이네와 리스트에게 로렐라이는 영적 이상향이었고 두 위대한 예술가가 로렐라이를 더욱 더 금빛으로 빛나게 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 장소는 화려함과 개발 논리에 물든 우리의 눈에는 실망스러워 보일 순 있어도 하이네의 시와 리스트의 가곡을 마음속에 품고 방문한다면  로렐라이 언덕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Lorelei / Heinrich Heine

Ich weiss nicht, was soll es bedeuten,
Dass ich so traurig bin;
Ein Maerchen aus alten Zeiten,
Das kommt mir nicht aus dem Sinn.
Die Luft ist kuehl und es dunkelt,
Und ruhig fliesst der Rhein;
Der Gipfel des Berges funkelt
Im Abendsonnenschein.

Die schoenste Jungfrau sitzet
Dort oben wunderbar,
Ihr goldnes Geschmeide blitzet,
Sie kaemmt ihr goldenes Haar.
Sie kaemmt es mit goldenem Kamme
Und singt ein Lied dabei;
Das hat eine wundersame,
Gewaltige Melodie.

Den Schiffer im kleinen Schieffe
Ergreift es mit wildem Weh;
Er schaut nicht die Felsenriffe,
Er schaut nur hinauf in die Hoeh.
Ich glaube, die Wellen verschlingen
Am Ende Schiffer und Kahn;
Und das hat mit ihrem Singen
Die Lorelei getan

//

로렐라이 / 하인리히 하이네

내 마음 이토록 슬퍼오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알 수 없어요
옛날부터 전해오는 한 이야기가 내게로 다가와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바람은 차고 날은 저물어
라인강은 조용히 흘러가는데
언덕 높은 곳이 
저녁 햇살에 반짝입니다 

​그 높은 곳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가씨가 
신비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요
그녀의 금발 머리를 빗질할 때
금 장신구가 반짝이고
황금 빗으로 빗질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신비로운 마력의 멜로디가
거기 담겨 있네요

작은 배를 탄 뱃사공 
걷잡을 수 없는 비탄에 사로잡혀
암초에는 눈을 두지 않고
고개 들어 높은 곳만 바라보네요
드디어는 뱃사공과 배를
끝내 물결이 삼켜 버리겠지요
뱃사공과 그의 작은 배를요

그래요 그게 바로 로렐라이가
그녀의 노래로 한 일입니다

-조진호 역

https://youtu.be/tmkcgaUcZ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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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6-18 09:00:37
독일어계열로 된 음악에 푹 빠지면...
얼마 전 카렐 고트라는 대중가수가 사망했을 때 체코 國葬으로 엄수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이탈리아어계열의 <돌아오라 소렌토로>에 만족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카렐 고트가 자기 식으로 <오이 마리>라는 이탈리아 노래를 부르른 걸 듣자마자 뭔가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리오 델 모나코보다 더한 황금 트럼펫의 달콤한 목소리에다 독일어계열의 툭 찌르는 까칠한 음정이 더해져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가 되었다.

단번에 카렐 고트의 팬이 되었다. 마리오 란자, 마리오 델 모나코, 플라시도 도밍고 등 모든 성악가를 다 합쳐놔도 카렐 고트의 목소리가 주는 우아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감미로운 노래 맛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으로 치면 ‘기막히게 어우러진 단짠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이때부터 이탈리어계열을 밀어내고 독일어계열의 음악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집시 공주>, <유쾌한 미망인>, <마리짜 백작부인>, <백마 여관>... 원래 독일어가 좀 딱딱하고 찌르고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데 여기에 목소리가 부드러운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정말 환상적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엊그제까지만 해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에 깜빡하여 그를 칭찬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돌변하여 그의 뮤지컬이 하잖게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계열의 음악은 <돌아오라 소렌토로>와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날 조금만이라도 사랑해주세요>만 남고 완전 전멸상태다. 물론 웨버의 뮤지컬도 그렇다.

만일 당신이 죽을 때 무슨 음악을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Ralph Benatzky의 Casanova 중의 Oh Madonna auf uns sieh이다. 앙드레 리우가 이끄는 요한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의 뉴욕 라디오뮤직시티홀 공연에서도 불린 바 있다. 소프라노 Céline Saleh가 부른 Nun's Chorus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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