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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 신앙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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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11일 (토) 23:37:11 [조회수 : 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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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주일이다. 성령강림을 맞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등 세 가지 모습의 하나님이 온전히 우리 가운데 드러났다.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은 본디 한 분이나, 세 위격(位格)으로 표현된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God for us),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God with us) 그리고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God in us)이다.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란 고백과 함께 그리스도교 신학의 핵심체계이다. 유대교의 숫자가 유일무이 오직 ‘하나’라면, 그리스도교의 숫자는 삼위일체 ‘셋’이다. 아일랜드의 사도 성 패트릭 주교는 ‘땅 끝에서 양치는 목자’라고 불렸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흔한 토끼풀의 세 개 잎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였다. 가장 어려운 교리를 가장 가까운 삶의 자리에서 풀어낸 것이다. 그 보잘 것없는 토끼풀은 현재 아일랜드의 국화 ‘샴록’(Shamrock)이다. 아일랜드 기념품 가게에는 샴록이 넘쳐난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더블린의 트리니티(삼위일체)대학교이다. 

  신앙은 이렇게 내 삶의 가장 가까이에서 표현할 수 있다. 삼위일체의 세 가지는 신앙원리와 생활원리를 제공하는 틀거리가 되었다. 흔히 삼위일체란 말은 ‘영어의 왕도’처럼 관용구처럼 사용된다. 세 꼭지점이 연결되어 완벽하고, 완결하게 된 트라이앵글 원리다. 그런 세 가지 원리, 원칙, 가치를 찾아보는 일은 흥미롭다.

  젊은이들의 신앙공동체 떼제는 ‘기쁨, 소망, 자비’ 세 가지 덕목을 지향한다. 수도자들이 선택한 남다른 삶은 부에 대한 탐욕을 떨어 버리는 ‘청빈’, 그리스도를 위해 순결한 삶을 살기를 다짐하는 ‘독신’, 교회의 질서에 절대 복종하는 ‘순명’이다. 존 웨슬리는 감리교 목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준비’할 것을 주문하였다. ‘설교할 준비, 이사할 준비, 죽을 준비’이다. 여기에서 ‘준비’란 인간적인 집착이나 업적주의를 버리고, 자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려는 삶의 태도이다. 

  숫자 삼(3)은 똑 부러지게 요약하고, 정리하여, 분명한 좌표를 제시하는 힘이 있다. ‘황금 삼각형’ 꼴의 논리는 자기주장을 사람들에게 설득 하는데 대단히 유용하다. 옛말에 솥의 발이 셋이어서 안정되었다는 의미로 ‘정립’(鼎立)이란 말도 있다. 

  삼을 두 번 겹친 ‘삼 세 번’이란 말은 더욱 폭넓은 의미가 있다. 사실 누구든 단 한판으로 결정되는 승부에 기꺼이 승복하기란 쉽지 않다. 종종 한번 승패에 대한 아쉬움과 시시비비를 불식시키려면 ‘삼 세 번’이 긴요하다. 이 때 ‘삼 세 번’은 처음 이긴 승자의 여유와 관대함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양보는 지든, 이기든 진정한 승복을 훈련시킨다. 

  ‘삼위일체 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가리키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신앙의 중심과 전부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정립형 신앙’을 갖추게 한다. 사도 바울은 신앙의 3총사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고전 13:13)를 강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3)으로 축복하였다.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눅 13:33)라며 ‘제3일’의 길, 곧 십자가와 부활신앙을 일깨워 주신다. 성령시대를 가리켜 제3시대라고도 부른다.

  삼이란 숫자의 미덕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발전과 변화의 의미로 ‘제3의 물결’이란 개념이 쓰이는가 하면, 대안적 의미로 ‘제3세대’니, ‘제3의 길’이니 라는 말도 사용한다. 성경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로 정립한 ‘삼 세대 신앙’, 늘 대안적 모습을 찾는 ‘제3의 신앙’, ‘회개, 용서, 구원’의 ‘삼 세 번의 신앙’을 배운다.

  내게 소중한 세 가지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면 신앙생활이든, 삶의 원칙이든, 미래의 비전이든 남달라 보일 것이다. 그렇듯 내가 선택한 남다른 삶은 내 인생에서 핵심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모처럼 맞은 ‘거룩한 셋’을 상기하는 새 절기에 내 소중한 삶의 목표와 원칙과 의미를 담아, 헤아려 본다면 복 있는 삶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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