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 신학자노트
목회자의 신학노트5-역사적 예수 연구의 과제: 새로운 Kerygma의 창출
장경현  |  claremontkr@yahoo.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12월 15일 (금) 00:00:00 [조회수 : 389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목회자의 신학노트5-역사적 예수 연구의 과제: 새로운 Kerygma의 창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글을 접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성서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서를 보는 눈은 대체로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성서의 표현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 (fact)이냐, 아니냐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서 여러 증거물을 찾는데 온 힘을 쏟는 방법 (고고학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의 표현들이 역사적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점 보다는 그에 대한 해석된 혹은 고백된 ‘의미’(meaning)는 무엇인가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여기에 온 힘을 쏟는 방법이 (신학적 접근)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구약 성서도 이와 비슷하게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작업과 독자 혹은 저자의 의도 혹은 해석으로서의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구약 성서는 현재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교리와는 직접적으로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도… 관심을 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서에 들어서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특별히 ‘기독론’처럼 이미 하나의 케리그마로서… 즉, 교리로 이미 다듬어진 사안이 이슈가 된다면 … 거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론’에 대한 내용들도 대체로 ‘역사적 예수’에 대한 패러다임과 그리스도로 해석된 혹은 고백된 ‘케리그마’로서의 예수에 대한 패러다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케리그마로서… 동정녀 탄생, 부활 등과 같이 … 이미 교리화 된 사항은… 이미… 고백된, 해석된 부분이고… 한 종교의 교리로서 (한 신앙 공동체의 보편적 담론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바울이나 초대 교부들은 예수의 행적을 보고 읽으면서 그들의 해석 혹은 그들의 고백으로서 지금의 ‘케리그마’를 만들어 냈습니다. ‘신이면서 인간,’ ‘동정녀 탄생,’ ‘부활,’ ‘물 위를 걸으심,’ ‘오병이어의 기적’… 등등등! 우와!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일입니까? 하나의 종교가 이런 정도의 신화마저 없다면… 그 종교가 종교일 수 있겠습니까? 이 케리그마의 토대 위에서 기독교는 … 세계적인 종교로 올라섰습니다. 사실… 신화는 신화로 읽어야 합니다… 만은… 설사 ‘신화는 신화로 읽어야 한다’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로 읽는다고 한들… 그것이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眞이 아닌 善의 세계에서-) 무에 그리 잘못이 있겠습니까? 종교가 과학이 아닌 다음에야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화를 신화로 읽습니다… 만은… 그것은 곧, ‘역사적 사실’로 제게 다가 오기도 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저는 전혀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신학 강의실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기독교의 멋진 신화와 케리그마를 가지고서… 2천년을 버텨온 (긍정적인 면만 있기야 하겠습니까 만은)… 기독교가 … 오늘날 … (예수를 쫓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다른 부분들을 상실하고…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의 경우)… 그저 ‘예수믿고 구원 땡!’으로 끝나버렸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치열했던 예수의 삶… 그 모습은 신화와 저들만의 케리그마 속에 접어두고 말입니다.

저는 …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서 무엇인가 다른… 어떤 다른 ‘케리그마’를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라 해도 저는 그 연구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 곧 ‘fact’로서의 신뢰를 줄 수는 없습니다. 독자의 ‘편견’이 없는 경우는 -심지어 과학에서조차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또 하나의 ‘해석’ 혹은 ‘고백’으로 볼 밖에.)

어쨌든…

오히려 저는… 마치 그 옛날, 바울이나 초대 교부들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케리그마’가 만들어 진 것과 같이… 그래서 기독교가 2천년의 세월을 인류 문명과 함께 했던 것 처럼…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하여 또 하나의 (우리 신앙 공동체에서 거의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케리그마들… “예수믿고 구원!”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간 조금 더 성숙한… 어떤 그에 준하는 ‘케리그마’를 창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Jon Sobrino 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에서 … ‘가난한 자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모습’을 찾아 내어 ‘가난한 자들과 연대’라는… 해방신학이라 불리우는 하나의 신학 안에서의 (제가 보기에는 일종의) ‘케리그마’를 만들어 냅니다. ‘가난한 자들과의 연대’ 혹은 그러한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 이것은 오늘날 해방신학에 있어서 (혹은 동의하신다면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에서… 그리고 ‘역사적 예수 연구’ 속에서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울이나 초대 교부들이 만들어 놓은 케리그마… 그에 대한 시시비비일까? 아니면… 그 케리그마가 가지고 있는 약점 혹은 그 케리그마로 인한 … 오늘날의… (특별히 도덕적 가치가 땅에 떨어질때로 떨어진 한국 기독교의) 타락된 모습… 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어떤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역사적 예수연구는 ‘예수 믿고 구원 땡!’ 이라는 이 단순 도식의 굴레를 바로 잡아 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깊이 있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무엇인가 현재의 케리그마로 인해서 한국의 기독교가 잃어버린 혹은 잊고 있는 어떤 중요한 점을 제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의 (제가 보기에는 아주 멋지고 신명나는) ‘부활’이나 ‘동정녀 탄생’ 등등의 교리를 가지고서 “是非” … 하는 것은 … 오히려 우리 기독교의 ‘신명’을 잡는 것이고… 전혀 복음의 본질에도 맞지 않는 것이 될 것이며… (신학교 강의실이 아니라면…) 불필요한 담론이 될 것입니다. 교리의 의미를 되살린다는 취지의 뜻을 이야기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학문의 세계, 곧 眞의 세계가 아닌, 사람 사는 세계 (정치 혹은 신앙의 세계), 곧 善의 세계임을 주지 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화를 신화로 읽는다는 것은 ‘사실’이나 ‘거짓’으로 읽으면 모두 틀린 것이 됩니다. 굳이 이야기 한다면 ‘善’으로 읽는 것이 됩니다.

저는 ‘역사적 예수 연구’가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계에 큰 공헌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 공헌은 기존해 있는 교리들, 곧 ‘예수를 믿음’에 근거한 교리들… ‘부활’ 혹은 ‘동정녀 탄생’ 등등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케리그마로 인해서 놓치고 있거나 간과되고 있는 부분들을… “예수를 쫓음”에 근거해서 … 그런 케리그마와 거의 맞먹을 수 있는 정도의 권위를 가진 새로운 케리그마를 창출하고 … 토착화시키는데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연대’하는 케리그마… 혹은 피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닌 구체적인 개념으로서의 (예수가 선포했던) ‘하나님의 나라’의 케리그마… 혹은 ‘예수의 무소유’ 등등의 원자료를 토대로 해서 예수를 쫓는 사람들 (목회자 혹은 신앙인)의 ‘무소유’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시스템 (목회자의 재산공개?) 으로서의 케리그마… 창출! 그리고 이러한 케리그마가 … 지금의 ‘부활’이나 ‘동정녀 탄생’ 등과 같은 정도의 등급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 연구! 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존 캅은 ‘해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해체주의’를 양파 까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양파를 까고 또 까고 하다 보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결국 양파의 속도 양파 껍질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종교… 교리… 일종의 양파가 아니겠습니까? 예수에 관한 이러 저러한 교리들에 대하여…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양파까기(시시비비)에 앞서… 지금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이 캄캄한 나락 가운데 있는 기독교에 정말… 필요한... ‘케리그마’… 그 창출을…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기대해 봅니다.

[관련기사]

장경현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0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