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 환난 중에 부르짖을 때 침묵하셨다면 그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는 하나님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편 120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구하면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는냐”(마 7:11)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라고 썼다.  

그런데 엘리 위젤(1928-2016)은 6백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무참히 살해될 때. 하나님이 그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침묵하셨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선민임을 자처하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증언이 참이라면 이것은 성경의 기록을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뒤엎는 일이다.

위젤은 루마니아 태생의 신심 깊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2차대전 중인 1944년 5월에 짐승을 실어나르는 화물차 칸에 실려 가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위젤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을 잃었다. 용케 살아남은 그는 자신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보고 겪은 것을, 특히 유대인들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을 그의 자전적인 책 『밤』에서 증언했다.

하나님의 침묵

6백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의 손에 참혹하게 죽어갈 때, 유대인들이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았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모여 예배드리고 이 지옥에서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환난 중에 부르짖으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도와주시지 않았다. 그들이 믿고 의지해온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위젤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첫날 밤 그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수천 명에 이르는 희생자들의 뒤를 이어 내던져진 용광로에서 내뿜는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때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위젤이 느낀 절망감을 그는 『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 삶이 일곱 겹으로 봉해진 하나의 긴 밤이 되어버린 그 날 밤, 수용소에서 맞은 첫날 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 연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내 믿음을 영원히 불사라 버린 그 불꽃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하나님과 내 영혼을 죽이고 내 꿈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그 순간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위젤은 하나님의 백성이 환난당하는 현장에서 그들의 외침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는 분인가? 나는 분노에 차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당신은 믿음, 분노, 저항을 증언하기 위해 모여든 이 상처받은 무리와 어떻게 맞서렵니까? 비겁한 사람들, 썩어 없어질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앞에서 우주의 주재이신 당신의 위대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왜 이 사람들의 아픈 몸과 마음을 계속 괴롭히는 겁니까?”

그 환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절망감에 빠진 사람은 어린 위젤만이 아니었다. 나이든 랍비 한 사람은 작업장에서도 정렬해 있을 때도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는 『탈무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하면서 계속 자문자답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다 끝났어. 하나님은 이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 “하나님의 자비는 어디 있지? 나도 그렇거니와 ‘자비로운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는 보통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욥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C. S. 루이스는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라고 말했다. 

루이스가 여기서 “귀먹은 세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는 고통이 개인에게 미치는 욥의 수준의 정신적 각성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6백만 명의 유대인이 죽은 홀로코스트의 고통과 하나님의 침묵은 교회와 신학계를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 되었다. 

홀로코스트가 교회와 신학에 미친 영향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원수로 간주해서 오랫동안 그들을 박해했다.  1179년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기독교인들의 원수로 규정했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은 루터로 이어졌다. 그는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하여』에서 유대인 회당을 허물고, 탈무드를 불태우고,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해야 한다고 반유대 운동을 선동했다. 

이러한 반유대적 감정으로 인해서 히틀러가 반유대 운동을 시작할 때 가톨릭과 개신교가 그에게 동조했다. 그리고 나치가 6백만 명의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살육할 때에도 교회는 침묵했다.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일부 가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이 나치에 부역하는 교회를 비판하고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홀로코스트를 지켜본 사람들이나 엘리 위젤 같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서 2차대전 이후에 홀로코스트의 잔혹상이 알려지면서 교회는 그들의 반유대적 태도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러한 증오와 살해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화해와 용서와 사랑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자성 운동이 일어났다.

홀로코스트는 기독교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바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달라짐에 따라 성경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서 교리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까지도 재고되어 왔다. 하나님의 백성 6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불구덩이 속에서, 총탄에 맞아, 그리고 굶주림과 노역에 시달려 참혹하게 죽어갈 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유대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신 사실을 전통적인 신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홀로코스트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래에 믿던 대로 하늘에 계시다가 인간에게 문제가 있을 때 내려와서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문제해결사로서의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신다고 믿었다. 달리 표현하면, 초월적인 하나님보다는 내재적인 하나님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리고 인간 행위의 폭이 넓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행위를 외면한 개혁자들의 신학이 재고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신학자는 가톨릭에는 믿음과 행위가 있는데, 개신교에는 행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개신교에서도 믿음뿐 아니라 행위도 중시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가 이러한 신학을 주도했다.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히틀러 암살단에 가담했다가 39세의 젊은 나이에 나치의 손에 처형당한 본회퍼는 가히 행동의 신학자였다. 그는 행동했을 뿐 아니라, ‘성인된 세상’, ‘기독교의 비종교화’, ‘마을에 계시는 하나님’ 등을 내세우면서 우리의 신앙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요즘 주목을 받는 상황 신학은 이 천재적인 신학자에게 힘입은 바 크다. 한 마디로, 홀로코스트 이후에 신학의 흐름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