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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책 《나그함마디 문서》를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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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19일 (목) 14:20:39
최종편집 : 2022년 05월 19일 (목) 14:21:06 [조회수 :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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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함마디 문서』

책을 펴내며

이번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는 『나그 함마디 문서』는 1945년 이집트 나그 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어느 농부가 우연히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진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문헌들을 가리킨다. 발견 당시 13권의 가죽으로 장정된 파피루스 문헌들이 밀봉된 항아리에 들어있었다.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영지주의 문헌, 헤르메스주의 문헌, 플라톤의 《국가》의 번역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헌들은 모두 콥트어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그리스어로 된 원본을 콥트어로 번역한 것들로 추정한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초기 기독교 형성시기에 등장했다가 4세기경 박해를 받아 지하로 사라졌던 영지주의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서구 신학계에서는 이미 각 문서에 대한 논쟁과 연구가 활발히 일어났고 문서의 번역도 여러 번 진행되어 결실을 얻었다. 이제서나마 한국어로 『나그 함마디 문서』가 출간된 것은 매우 다행이라고 하겠다. 많은 한국 신학자들이 서구에서 공부하면서 『나그 함마디 문서』를 직간접적으로 접했음에도 아쉽게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단으로 정죄된 영지주의라는 딱지가 붙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한몫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부분 한국 교회의 보수성으로 인해 영지주의라는 낙인을 피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현실이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다양한 사상과 문화와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있는 21세기 세계 현실은 2,000여년전 이교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교라는 신생 종교가 터를 잡아가던 고대 세계와는 다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영지주의는 그 당시 그리스도교가 정통 종교로 자리잡기 위해 나타난 다양한 해석과 노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영지주의는 당시 존재했던 다양한 신앙공동체의 배경과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다르게 체험하고 예수를 다르게 이해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20세기 중반 『나그 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를 파괴하는 나쁜 이단쯤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 문서의 발견으로 영지주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고 매우 폭이 넓은 사상이요 다양한 분파로 존재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영과 육의 이원론으로 물질을 경시하면서 육체를 감옥 쯤으로만 여기고 또 육체에 갇힌 영이 참된 지식을 깨달아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는게 구원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영지주의는 이제 『나그 함마디 문서』를 통해 그 정체를 보다 정확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정통이라고 알고 믿어 왔던 신앙과 신학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외에 다양한 신앙과 신학의 형태들이 이미 초기부터 존재했으며, 영지주의도 그 중 일부였다는 사실이 규명된 것이다.

또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타력적 신앙만이 그리스도교 정통이 아니라, 자기 몸 안에 거룩한 빛이 들어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깨닫게 되는 것을 구원으로 이해하는 이른바 주체적인 깨달음의 신앙도 그리스도교라는 큰 나무의 뿌리를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신학자 일레인 페이젤에 의하면, 영지주의는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 과정에서 권력 다툼에 밀려 박해를 받고 지하로 사라졌지만, 그것은 종말이 아니었다. 영지주의는 오히려 그리스도교 역사와 서양사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쳐 왔다. 대표적으로 그리스도교 전반에 흐르고 있는 신비주의 전통과 유럽 인문주의의 부흥 및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등장을 예로 들 수 있다. 금번에 출간되는 『나그 함마디 문서』는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기에 등장한 소위 이단이라는 개념과 영지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하는 데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역자 고(故) 이규호 선생은 본래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잠시 고교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다. 1980년대 초 대전지역 공안조작 사건으로 알려진 신앙공동체 한울회 사건의 피해자로서 고문과 투옥의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만큼은 식지 않았던 것 같다. 생활고와 건강상의 어려움에도 진리에 대한 탐구가 그의 삶을 지탱해 왔다. 그러다 지인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서 3년의 과정을 잘 마쳤다. 이후 계속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 누구의 도움 없이 꿋꿋이 재야 학자로서 신비주의와 영지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그의 고독한 연구의 첫 결실이 바로 이번에 출간하는 『나그함마디 문서』이다. 이 책은 이미 서구에서 오래 전에 출판된 매우 학술적인 책인데 이번에 국내에는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다. 이 책은 분량도 많은 데다 내용이 까다로워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원문은 콥트어이지만 이미 여러 언어로 번역된 관계로 서구 신학계에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귀한 문헌의 한국어 번역은 창작만큼이나 힘든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어학과 문헌연구에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었던 이규호 선생의 학문적 열정과 구도적 자세가 없었더라면 이 귀한 책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감수자로서 이 책 전체를 읽게 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또 단지 이 책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번역자의 문체를 살리면서도 명백히 틀리거나 부정확한 표현과 오자를 일일이 수정하여 보다 충실한 번역본을 만들고자 했다. 고 이규호 선생은 별세하기 전 필자에게 20여 년 전에 번역한 이 책의 출판을 간곡히 부탁했는데,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만큼 이 책은 이규호 선생의 삶이 그대로 배어 있는 가장 귀한 번역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출판 소식에 선생께서 저 세상에서나마 크게 기뻐하리라고 믿는다. 이 책의 각 문헌 앞에 붙어 있는 간단한 해설 역시 좀 더 이해가 잘 되도록 감수자가 검토하여 수정 보완했다. 또 이 작업에 도움을 주신 목원대 신학과 박찬웅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 책을 출판을 위해 고인의 원고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주신 이건종 목사님과 김종생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특히 출판계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맡아 주신 동연출판사 김영호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 모두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또한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영지주의 전통에 대한 활발한 학문적 논쟁이 한국 신학계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한다.(2021. 9. 1.)

 

《나그함마디 문서》 

 

〈도마복음〉, 〈요한 비밀의 서〉, 〈베드로의 묵시록〉 등이 수록된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사상을 담고 있는 '나그함마디 문서'는 1,600여 년간 정통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고 땅속에 묻혀 있다가 1945년에야 비로소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됐다. 그로부터 다시 80여 년이 지나 드디어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그간 〈도마복음〉을 중심으로 단편적으로 번역된 책이 그나마 몇 있으나 이 책은 나그함마디 문서 52편 모두를 수록한 국내 최초의 완역판이다.

일반적으로 영지주의는 영혼과 물질을 이원론적으로 나누는 것으로 초기 기독교 사상이 정립되던 1세기부터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지속 영향력을 가지고 소수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명 삼위일체 논쟁이라고도 하는 니케아종교회의에서 이단 사상으로 규정하여 파문되고 말았다(321년). 아리우스(Arius, 250 또는 256~336)를 필두로 한 영지주의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를 중심이 된 다수파에 의해 이단 사상으로 정죄당하고, 그로부터 정통주의 기독교로부터 배제당하고, 말살되었다. 그 후 367년경 영지주의 신봉자들에 대한 파문, 화형뿐 아니라 영지주의 경전들도 일체 발본색원하여 폐기했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이집트 지역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 있었던 파코미아수도원(Pachomian monastery)에서 이를 피해 항아리에 밀봉하여 보관하던 것이었는데, 1945년 모함마드 알리라는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실제 그 원본 중 〈도마복음〉, 〈진리의 복음〉, 〈이집트인들의 복음〉 같은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이레니우스, 오리게네스 같은 초기 교회 창시자들에 의해 기재되었으며, 현대 학자들은 그 사본의 일부가 늦어도 기원 1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일어난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과의 전쟁 못지않게 영지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비록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나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수도원이나 여러 종파주의 운동으로 남아 있던 영지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말살 작업이 진행되었다. 만약 《나그함마디 문서》가 초기 기독교 교부 시절 말고도 중세 시절에 발견되었더라면 아마 이 문서는 파기되어 영영 묻혔을 것이다.

《나그함마디 문서》는 영지주의 사상의 진본으로서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고 1970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집트 문화부와 유네스코가 사본의 형태로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성서학자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을 필두로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 번역팀을 결성하여 1977년 처음 영어판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그 후 세계 여러 학자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였고, 현재 세계 여러 나라말로 출판되어 있으며, 미국 영지주의 교단 웹사이트 등 많은 웹사이트에 콥트어 원본과 함께 번역본이 공개되어 있다.

이 문서가 정통주의, 보수적인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는 일부 성서신학자, 특히 신약학자들에게만 연구서로서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을 뿐 일반 교인이나 인문학 독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도마복음〉 서적 번역서가 여러 번 출간되면서 그 원본이자 그와 다른 영지주의 사상이 들어있는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삼위일체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불교 사상과 상통한 비정통적인 기독교 사상이라고 폄하하고 이에 대한 연구나 소개조차 금기시한 한국교회 풍토에서 완역본이 출간되지 않았다. 출판사 측은 "이제 기독교 사상의 한 축으로서, 인류사상사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나그함마디 문서》가 소개되고, 탐구되는 일에 그 초석으로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라고 평가했다.

이 책 전체를 꼼꼼하게 감수한 목원대 신학과 이정순 교수(조직신학.영성신학)는 <책을 펴내면서>에서 “이 문서의 발견으로 영지주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고 매우 폭이 넓은 사상이요 다양한 분파로 존재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영과 육의 이원론으로 물질을 경시하면서 육체를 감옥 쯤으로만 여기고 또 육체에 갇힌 영이 참된 지식을 깨달아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는게 구원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영지주의는 이제 『나그 함마디 문서』를 통해 그 정체를 보다 정확하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정통이라고 알고 믿어 왔던 신앙과 신학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외에 다양한 신앙과 신학의 형태들이 이미 초기부터 존재했으며, 영지주의도 그 중 일부였다는 사실이 규명된 것이다.. .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기에 등장한 소위 이단이라는 개념과 영지주의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하는 데 학문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일장신대에서 가르쳤던 차정식 교수(신약학)는 <추천사>에서 "영지주의는 정통을 독점한 주류 기독교 내에서 한때 이단으로 정죄당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져간 듯했다. 그러나 면면히 서구 지성사를 관통하고 그 사상사 저변에 복류하면서, 특히 서구 근대의 지성에 적잖은 자양분을 공급해 온 게 사실이다"라며 "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서구에서 오래전 번역된 이 나그함마디 문서의 한글 번역이 이제라도 완료되어 퍽 다행이다. 이 중요한 1차 문헌자료의 번역으로 이 땅의 신약성서학계와 고대 기독교사상사 영역의 연구는 물론 고대 영지주의 사상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도전과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역자 소개

 

이규호

재야 신학자, 신비주의 연구가. 충남대학교 사학과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전상업고등학교 강사로 재직하던 중 1981년 전두환 정권의 공안조작사건인 ‘한울회’ 사건의 주동자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루었다. 출소 후 대전기독청년협의회(EYC) 회장과 대전충남기독교사회운동연합의 정책실장 등을 맡아 대전 충남 지역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투옥 중 받은 고문으로 얻은 병고와 가난이라는 생존의 벽 앞에서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신비주의에 매료되어 연구에 전념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종 종교학 원서들을 구입해 연구에 몰두했고, 탁월한 어학 실력으로 10여 권의 책을 ‘이서하’라는 필명으로 번역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여 투병생활을 하다가 2021년 5월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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