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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은혜
이광섭  |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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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13일 (금) 04:32:22 [조회수 :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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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능력이 아닌데 능력이라고 소리치는 사람을 향한 분노가 있습니다. 이런 분노는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오류에서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농촌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18년 동안 농촌목회를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서울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시골 태생이었기 때문에 내게 농촌목회는 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했습니다. 물론 다른 목회 현장에서 목회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기는 했지만, 그곳이 도회지나 서울이어야 한다는 열망을 가져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를 아주 적절하고 좋은 목사로 생각해 준 선배 목사님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서울 목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6년 전 이야기입니다. 

분노 이야기를 꺼낸 까닭이 있습니다. 나의 목회를 돌아보면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돌아보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여기까지 왔음을 분명히 느낍니다. 뜻밖의 소식처럼 서울 목회를 시작하였을 때, 스스로 낯설어하면서 ‘이게 뭐지?’ 하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낯설던 것들이 금새 익숙해졌습니다. 오래전부터 지금 우리 교회에서 목회를 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된 것입니다. 

먼저 언급할 게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형교회가 아닙니다. 전통교회라고 불리는, 지역 이름을 교회명으로 삼고 있는 아주 친숙한 의미의 동네교회입니다. 한국교회가 지향하고 지켜야 하는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되는 게 꿈인 그런 중형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나은 목회환경에서 목회한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는 것 같은 대우를 종종 받곤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이를 마땅한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현재의 목회 현장이 나의 능력을 드러낸다는 듯이 말이지요.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물었지요. 오늘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 현장이 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할 말이 없더군요. 들여다볼수록 오늘의 목회 현장은 앞서서 신앙의 길을 치열하게 걸었던 좋은 목회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닦아 놓은 신앙의 자양분 위에 세워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목회 현장에 발을 딛고 목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였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명성과 대가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행운이고, 신앙적으로 고백하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분노는 왜 생길까요?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그 은혜조차도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으로 얻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어서 은혜를 받았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은 능력주의입니다.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한다’고 말합니다. 능력주의야말로 공정을 해칩니다. 많은 목회 현장과 목사들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유수한 역사와 규모를 가진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구나! 그 자리는 능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끝으로 야곱의 가정 이야기를 해볼게요. 야곱 가정의 큰 문제는 공정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아버지의 편애로 형제들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그 망가짐이 얼마나 심하였던지, 형들은 동생 요셉을 죽여버리려고 하다가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팔려간 요셉이 13년 동안 지옥과 같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들을 만나 두려움에 떠는 형들에게 말합니다. ‘나를 이곳에 보낸 이는 형님들이 아니라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이십니다’(창45:5,8). 복수가 아닌 이런 회복의 메시지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정은 불공정으로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무너진 가정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요셉이 누렸던 은혜로 회복되었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들 속에서 은혜를 발견할 수 있을 때 분노를 뛰어넘는 공정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광섭목사/전농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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