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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삶햇볕같은이야기
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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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24일 (일) 18:03:53
최종편집 : 2022년 04월 24일 (일) 18:07:40 [조회수 :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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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 (사진:최용우)

7210.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예수님은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3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고 12시가 되자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세상은 어두움이 장악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어둠은 3시간 동안 계속되다가 오후 3시(제구시)에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완성되자 세상이 완전히 광명세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두움은 빛이 비추이면 사라집니다. 절대로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무저갱, 곧 블랙홀처럼 빛을 빨아들이는 지옥의 어두움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잠시라도 빈틈이 보이면 언제든 어두움은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삶의 기쁨과 활력을 빼앗기고 우울과 불신 가운데 빠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늘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항상 성령충만 가운데 살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학식이나 명예나 그 밖의 세상 것들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전심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서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라’는 긍정적인 말씀이 248개가 있는데, 인간의 뼈마디가 248개입니다. 말씀을 지켜 살면 뼈마디가 튼튼해지고 쑤시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는 금지 말씀이 365개 있는데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365일을 ‘샬롬’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라는 것 하고, 말라는 것 안하면 몸이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 튤립(사진:최용우)

7211.말씀의 빛 안에 거니는 삶

 봄날 햇볕이 따사롭게 대지를 비추면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고, 봄비가 내리면 대지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워지고 연두빛 새싹들이 올라옵니다. 빛은 생명이고 생명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늘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두 번째는 말씀의 빛 안에 거니는 삶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05:106)
 비행기 조종사들은 자신이 지금 바로 날아가는지 뒤집혀서 날아가는지를 모를 정도로 착각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바다 위를 날 때는 바다가 하늘 같고 하늘이 바다 같아서 깜빡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데, 그럴 때 자신을 지키고 비행기를 지키는 제1 수칙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고 무조건 계기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조종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삶의 절대적인 계기판은 ‘말씀’입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육체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처럼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영혼의 생명이 유지됩니다. 어제 밥을 먹었다고 오늘은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밥은 날마다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말씀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아 아, 밥을 주지 않아서 기아 상태에 빠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육체는 너무 먹어서 비만인데 그 영혼은 너무나 파리하고 창백해서 전혀 빛이 안 나는 사람은 어두움이 순식간에 그를 장악해버립니다. 
 성경읽기도 좋고, 큐티도 좋고, 새벽기도 좋고 어떤 식으로든 좋으니 말씀을 날마다 정기적으로 충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봄비 맞은 대지처럼 생명을 잉태하고 삶이 말씀의 빛으로 반짝이게 됩니다. 

   
▲ 어린이와 고양이(사진:최용우)

7212.기도로 성령충만을 받는 삶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성령충만함은 곧 사랑의 충만함입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늘 하나님의 사랑이신 성령에 충만하여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세 번째는 기도로 성령충만을 받는 삶입니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그것을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맘대로 할 때 개역성경은 ‘성령이 소멸된다.’(살전5:19) 그 외 다른 번역성경은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고 번역합니다. 성령님이 사라져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아무 일도 안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깨워서 성령충만 하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성령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실 때까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설교자는 한 시간 책을 읽고, 두 시간 성경을 읽고, 세 시간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몸이 힘들다고 기도하지 않고 출근하면 하루가 더 힘듭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여 출근하면 심령이 강해지고 담대해지며 삶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도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의 형상과 향기를 맡으며 나는 진리의 통로, 진리의 전달자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고, 성령충만해야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게 됩니다. 

   
▲ 송엽(사진:최용우)

7213.범사에 감사하는 삶

 지구의 온도가 올라간다고 걱정합니다. 사람들이 지구를 잘 못사용한 탓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맞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이유로 ‘코로나’를 듭니다. 바이러스 코로나(COVID)가 아니라, 태양이 불타면서 만들어내는 불꽃을 ‘코로나’라고 합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다른 곳보다 코로나 불꽃이 더 긴 지역을 지나갈 때, 지구의 온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때여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지 먼지만도 못한 인간들이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영의 세계에서 마치 태양처럼 가장 큰 빛과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큰 빛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사랑을 빨아들여서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네 번째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태양과도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는 방법은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저는 잠자리에 들기 전 매일 ‘오감사’를 합니다. 다섯가지 감사 제목을 기록하고 그것을 하나 하나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잠을 잡니다. 음냐, ㅋ~  

   
▲ 튤립(사진:최용우)

7214.하루 일곱 번씩 찬양하는 삶

 아침 밥을 먹다가 “오늘 국이 좀 짜.”라고 말했더니 아내는 화를 내면서 “국이 맛이 없으면 먹지마셔.”하고 국그릇을 빼려는 것을, “아니, 국은 맛있는데 조금 짜다구. 내가 고혈압이 있잖여. 싱겁게 먹어야 하는데...” 아내는 계속 ‘국이 짜다’는 말을 ‘국이 맛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아침에 예배를 드릴 때까지는 서로 ‘화기애애’했는데, 밥먹다가 갑자기 ‘화기애매’해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종일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삶의 기쁨과 활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늘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잃어버렸어도 금방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다섯 번째 방법은 ‘찬양이 넘치는 삶’입니다. 
 힘들어도 의지를 발휘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기쁨의 빛이 환하게 가득 차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가 원망스러웠던 마음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다시 활력을 찾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런 ‘찬양의 능력’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내가 하루 일곱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119:164)라고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찬양, 아침에 찬양, 점심에 찬양, 저녁에 찬양, 잠자기 전에 찬양, 슬플 때 찬양, 기쁠 때 찬양 이렇게 일곱 번입니다.
 저는 진짜로 ‘음치’입니다. 거기에다가 ‘박치’입니다. 그래도 목소리는 우렁우렁해서 큰소리로 찬송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다 저를 따라오고 있는^^ ‘음악깡패’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하루에 일곱곡 이상 찬양을 하는데.... 저는 정말 찬양을 잘하는 목소리 고운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튤립(사진:최용우)

7215.사명에 충실한 삶

 기독교는 부와 귀와 물질의 축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주님 따라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희생과 섬김의 종교입니다. 부귀영화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실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가 애써 구할 것은 아닙니다. 부귀영화는 하나님께서 주실 수도 있고 안 주실 수도 있습니다. 부귀영화로 인하여 망가질 인생이라면 차라리 받지 않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복입니다. 제가 살면서 보아온 바로는 ‘부귀영화’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사람 별로 없더군요. 부귀영화가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늘 영적인 빛과 기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여섯 번째는 사명에 충실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명에 충실한 삶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이 땅에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예수님처럼 잘 감당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강가 곳곳에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이 넘칠 때 빗물을 가두어 두기 위한 커다란 ‘유수지’가 있습니다. 유수지가 사용되는 경우는 몇십년에 한번 일 수도 있고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수지가 필요 없습니까? 아닙니다. 비상시에 정말 중요한 시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유수지처럼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비상시에 사용하기 위해 ‘예비해 두는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사명입니다. 
 인기있는 화려한 일을 하는 사람들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사명입니다. 그저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처럼 묵묵히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도 복된 삶입니다. ⓒ최용우 https://cyw.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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