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4. 오후 3시 30분, 고양시 소재 신생교회(담임목사 신기식)에서 이가순기념사업회, 도서출판 이룸과 누림 주관으로 애국지사 이가순-이원자 장로 부자(父子) 평전 〈영웅은 열매를 팔지 않아〉 출판콘서트가 있었다. 

  이날 행사는 저자 신기식 목사의 지인, 교인들, 이가순기념사업회 회원, 고양시 교회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저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출판자리를 빛내 주었다. 문병하 목사(덕정교회)가 진행을 맡아 토크쇼 분위기로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참석자 소개에 이어 중부연회 정연수 감독과 고양지방 박남웅 감리사의 축사에 이어졌다. 

  이 책은 ‘누림과 이룸’ 출판사(대표 정영구 목사)에서 출판하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이철 감독회장이 추천사를 써 주었다. 정영구 편집장은 출판소감을 참석자들에게 전하고 저자는 출판사 대표와 편집장(전정숙)에게 그간의 노고에 답례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역사학자 이상윤 목사는 ‘브나로드 운동(v narod)의 열매’라는 서평을 하면서 이가순 부자가 1930년대 일제가 포기한 수리간척사업을 실시함으로 농촌경제 자립사업을 성공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했다. 한마디로 농촌계몽운동을 넘어서는 수리간척사업으로 한강변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고 소작농민에게 농토를 소유하게 해 줌으로 조선시대 숙원인 토지개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저자 신기식 목사는 1953년 강화도에서 6. 25 전쟁 휴전둥이로 출생하여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35년 동안 고양시 덕은동에 있는 신생교회에서 목회하여 왔다.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고양YMCA 부이사장, 고양시지속가능발전위원회와 고양자치발전시민연합 상임대표로, 그리고 2010년부터는 양곡 이가순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하여 왔다. 

  그는 생생한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65세부터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해 왔다. 2008년부터는 그가 속한 3차례의 기독교대한감리교회의 감독회장 선거부정을 바로잡고자 법정투쟁으로 선거무효와 총회무효 선고를 끌어낸 경험으로 2018년 2월에 종교개혁 500주년 헌정 소설 「황금저울」을 발표시작으로 2018년 4월에는 「감리교회법 ‘장정’ 이해」를, 2020년 11월에는 「감리교회 재판 실무」를 저술했다. 또한, 2021년 12월에는 교회내 목사의 그루밍 성범죄를 다룬 소설 「다말의 짜악」 발표했다. 특히 2022년 4월에 양곡 이가순기념사업회 사무국장으로 봉사하면서 애국지사 이가순과 아들 이원재 의사의 농민자립경제 행적을 연구하여 〈영웅은 열매를 팔지 않아〉를 출간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코로나19 재난 중에도 〈말자(末者) 유재덕 목사〉, 상도교회의 불행한 현실을 보며 교회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소설 〈장승배기〉를 탈고하고 출판준비 중에 있다. 그리고 어린 손주에게 한글을 가르친 경험으로 〈단계별 한글공부〉를 집필하였다. 

  이번에 출간한 〈영웅은 열매를 팔지 않아〉는 애국지사 양곡 이가순과 아들 이원재 의사의 민족의 독립과 농민의 생활터전을 만들어 준 영웅적인 발자취를 조명해 주고 있다. 이들은 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냈던 노백린 장군과 사돈지간으로 황해도 해주, 연해주, 원산, 하얼빈, 강릉, 고양 등에 거주하면서 병원과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며 독립자금을 전달하였다. 원산과 강릉 신간회 대표로 한일운동과 민중을 보살피는 일을 마다하지 아니하였다. 

  특히 말년(1934~1950년)에 고양군에서 작고할 때까지 민족독립의 꿈을 간직하고 농촌경제자립을 위한 수리간척사업은 해방과 건국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들의 애국활동은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평생 지속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견줄 수가 없을 정도로 자랑스럽다. 

▲ 양곡 이가순 애국지사

원산 3•1만세운동

  이가순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망국의 한을 품고 연해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 후 하디 선교사의 원산 부흥운동이 활발하던 1909년에 원산으로 이주하여 상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3•1만세 운동 민족대표 33인이었던 오화영 목사와 정춘수 목사를 모셨다. 1919년 3월 1일 정춘수 목사가 민족대표로 나서자 원산에서 교회와 학교, 사회단체를 규합하여 3•1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원산 호랑이’ 별명을 가진 이가순(52세)은 동지들에게 “우리는 조국을 위하여, 후손을 위하여 일사(一死)를 각오하고 이 운동에 참여 하여야 한다”고 격려하였다.

  그 결과 이가순은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받고 복역하였다.  재판장에 끌려갔을 때에도 “너희는 이 재판을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너희는 무력으로 남의 것을 뺏은 자들이요, 나는 무력이 없으므로 해서 나라를 빼앗긴 사람이다. 남의 것을 흠친 자가 빼앗긴 사람을 재판할 수 없다”라고 호령을 치자 일본인 재판장은 황급히 휴정을 선포하고 재판정을 떠났다. 

  1922년 이가순은 출옥하자 교육입국 정신으로 원산에 대성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었다. 1927년 7월에는 원산 신간회를 조직하고 대표가 되었다. 신간회는 민족주의, 공산주의, 기독교사회주의 세력 간의 갈등이 심했을 때 1927년 2월에 ‘뿌리와 가지는 여럿일 수 있으나 줄기는 하나’라는 취지로 ‘민족유일당 협동전선’ 기치 아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봉건주의를 좌표를 삼고 창립되었다. 1931년까지 존속하면서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제는 일본인 한반도 이민정책을 중단했다. 노동자 농민 수탈도 벽에 부딪혔다.

  이가순은 원산지역의 실제적인 민족 지도자였다. 1928년 12월, 원산 부두노동자의 82일간의 파업을 지원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였다. 1930년 7월 24일에는 수해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해 원산노동조합연합, 청년동맹, 신간회, 근우회, 소년척후대, YMCA, 천도교청년당, 중외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11개 단체가 참여한 원산사회단체연합수난구제회’를 결성하여 구제 활동을 하였다. 1931년 12월 27일, ‘동광’ 잡지사에서 신간회 김병로, 동아일보사 박찬희, 중앙일보사 유광열, 개벽사 주간 차상찬, 역사가 문일평, 창작가 이광수, 동광발행인 주요한과 이종수 기자가 참석한 동서고금인물좌담회에서 현재 조선의 인물 중 함경도 지역에 노인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이가순 선생이라고 모두가 동의했을 정도였다. 

  의사 이원재는 세브란스 의과대학 4회 졸업생으로 1913년 원산 구세병원에 부임하였다. 1924년까지 하얼빈에서 고려병원을 설립하고 동서 박종욱 의사과 같이 진료에 힘쓰며 독립자금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하얼빈 고려병원을 정리하고 강릉으로 이주하여 관동병원을 개원하고 진료활동을 하면서 8년 동안 강릉중앙교회에 장로로서 교회유치원 원장 직책을 수행하였다. 교회생활은 인생의 중심이었다. 이런 배경에는 의료 선교사들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구세병원 진료 중 세균에 감염되어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되어 고열로 사경을 헤매다가 교인들의 철야기도로 고열이 내리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병원 수입으로 틈틈이 구입한 땅은 6년 후에 고양군 능곡에서 수리간척사업에 필요한 재원이 되었다. 

▲ 이원재 의사 / 세브란스 의과대학 4회 졸업사진(1914년). 제공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

제2의 독립운동-농촌경제부흥

  1932년에 이원재는 8년의 강릉생활을 정리하고 65세의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로 이주하였다. 소홀했던 자녀교육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서울(당시 고양군) 공덕동에 초가 6채를 구입하여 금강병원 개원했다. 중일전쟁이 일어나고 만주가 점령되는 것을 보며 일본의 패망이 늦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덕감리교회에서 장로로, 아내 노숙경 여사는 여선교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열심히 봉사하였다. 

  이가순, 이원재 부자(父子)가 1933년부터 고양군 능곡 삼성당에 이주하면서 17년 동안 농촌경제 문제에 전력했다. 그 배경은 이러했다. 일제는 허약한 왕권을 속절없이 짓밟고 3•1만세운동에도 개의치 않고 한국 침탈행위를 계속하였다. 한반토의 토지를 약탈할 목적으로 1912년에 토지조사령을 공표하고 1918년까지 대규모 토지조사사업을 벌였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때 농민들은 정든 농토의 경작권을 빼앗겼고, 조선총독부는 전 국토의 40%에 해당하는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총독부는 이 토지를 동양척식주식회사, 일본의 토지회사, 그리고 한국 거류 일본인들에게 무상 또는 헐값으로 불하해 줌으로 일본인 대지주가 등장했다. 1927년도에 100정보 이상의 토지주 한국인이 335명으로 줄어든 반면에 일본인은 553명으로 증가하였다. 농민들은 점점 일본인 지주의 소작인으로 전락하여 50%에서 70% 이상으로 소작료를 착취당했다. 

  이어서 일제는 1917년 수리조합령 공포하고 산미증식을 위해 수리조합 설립을 추진하였다. 처음에는 민간자본을 유치하였다가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자 1926년부터는 저리융자를 지원하여 수리조합 설치를 독려하였다. 196개로 늘어난 수리조합은 일본인 지주가 주도하면서 농민들에게는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水稅)의 부담과 소작료, 수세, 비료비가 생산량의 86%까지 부과되었다. 농촌은 더욱 피폐해 갔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수리조합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소작료 인상과 과다한 수세에 대한 저항은 농민운동, 독립운동 성격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일제는 1933년에 수리조합 계획을 중단하였다. 

  민족주의자들과 YMCA운동가들은 농촌계몽에 열중했다. 감리교 연회도 농촌부를 설치하였으나 사업보고는 미미하였다. 협성여자신학교도 YWCA와 연결하여 농촌계몽 사업을 전개했다. 이 때 발탁된 학생이 심훈의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이다. 그러나 농촌계몽운동은 문맹퇴치와 농민의식개혁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가순 부자는 농촌경제의 실제적인 자립이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다. 40년간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직이나 이념운동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17년간 거액 48만원(현재 480억원)의 사비를 들여 농지를 개간하여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농민이 좋아하고 농사에 유익한 수리조합을 만들었다. 

  의사 이원재는 한 번도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나이 47세에 가산을 정리하여 수리관개사업에 투입했다. 10만평 토지를 매입하여 ‘백석농장’을 조성하였다. 진료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도로가 불편한 능곡, 신평리, 백석, 장항 농촌의 넓은 지역을 백말을 타고 순회진료를 하면서 수리간척 사업에 열중하였다. 25년 차 경륜있는 의사가 되었지만 미국 의료선교사들에 비하면 여전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낮 병원과 수리간척 일을 병행했다. 농민들의 생활자립을 돕는 일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두 친구의 협조를 얻어 고양군 행주외동 173번지 한강변에 양수장 부지 10,000여평의 땅을 매입하였다. 

  당시 한강 주변은 고수부지 밭 두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갈대투성이 황무지였다. 수리시설이 없어서 쌀농사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겨우 샛강 물을 물레방아와 용두레로 퍼 올리거나 물지게로 옮겨서 힘겹게 수수농사를 지었다. 

  이가순은 행주산과 강매산을 수없이 오르며 한강 변 황무지를 바라보고 양수장의 위치와 농업용수로의 방향을 구상하였다. 우선은 한강 변 행주산성 아래에 양수장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전기가 없어 25마력 발동기 4대를 설치하여 양수했다. 산을 깎아 넓은 부지를 만들고, 발파하여 돌을 깨서 굴을 뚫어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공사였다. 수로와 만나는 하천의 폭이 넓어 물을 공급하기 어려운 곳은 지상으로 다리를 놓고 검은 방수천을 깔았다. 공사는 주로 농한기에 가난한 농민의 수익을 위하여 노임을 주고 공사를 진행했다. 봄철 농자금을 사전 대여해 주고 가을에 원금을 회수하는 사업을 통하여 농사짓는 일을 도왔다. 농민들은 구한말 탐관오리의 부정과 일제의 교활하고 강압적인 농지 침탈행위를 보다가 단군 할아버지가 땅에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래서 만든 15㎞의 수로가 삼성당, 백석농장, 섬말다리를 지나 장항리까지 이어졌다. 2차로 10㎞가 더 이어져 파주경계까지 이르렀다. 현재는 파주 교하 신남동까지 35.7㎞를 이어져 양수장에서 퍼 올린 한강 물은 수로를 타고 15시간을 흘러간다. 황무지는 옥토로 변했고 쌀 생산이 시작되자 농민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수리간척 사업을 실행한지 10년 되는 해, 이가순은 1943년 4월 12일 75세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고귀한 생애를 마감했다.

▲ 이가순 묘비(국립대전현충원)

 이원재는 아버지가 별세하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어 수리조합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 결과 1945년 3월 5일 일제하에서 당당하게 수리조합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첫 조합장으로 추대되어 5년 동안 조합장직을 수행하면서 계속 경지면적이 증가하여 6차례나 구역확장을 거듭하여 3,744ha까지 늘어났다. 이런 규모는 당시 고양군 총경지면적의 50%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조합원 수도 4,000여 농가였다. 농민에게 농지가 주어졌고, 농업용수가 충분하게 흘러 가뭄이나 수해를 입지 않았다. 농촌이 풍요롭게 변했다. 농업협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어 면 단위에 농업협동조합이 세워졌다. 고양군의 농업협동조합 총 예금고가 전국제일이 되었다. 1980년대 정주영 현대 회장이 이룬 서산간척사업이 연상되는 부분이었다.

  이가순 부자(父子)가 1933부터 10년간 사재 48만원 거액(현시세 약480억원)을 투입하며 농촌경제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반면에 같은 상리교회 출신 정춘수 목사는 감리교회 감독이 되어 일본의 적자(赤子)가 된 신민(臣民)으로 친일에 앞장섰다.

   이원재는 세브란스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던 두 아들 중 장남 동훈이 23세 졸업반 때(1940년도) 갑자기 죽는 불행을 겪었다. 이원재 부부는 너무 비통하여 300평의 토지를 매입하여 초가집 교회(능곡감리교회)를 설립하였다. 교회주변 이원재의 과수원 부지 2,030평도 교회소유가 되었다. 1947년에 능곡초등학교 건물이 소실되자 백석농장을 처분한 돈으로 학교를 복구해 주었다. 

▲ 이동훈(23세 사망, 세브란스 의전재학 중, 1940년)

▲ 능곡교회 사진(능곡 삼성당 오른쪽에 행주양수장 수로가 보임)

  의사 이원재는 1950년 2월 6일, 64세의 아까운 나이에 별세하였다. 의사로 직접 항일투쟁에 나설 수 없었지만 두 여동생과 여섯 자녀와 세 명의 처남처제를 돌보고 살아온 가장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장례식은 고양군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애도하는 장례행렬 만장이 2㎞에 이어졌다. 수리조합 재산은 모두 국가(현, 한국농어촌공사)에 헌납되었다. 그래도 자녀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모두 서울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1950년 4월, 이원재가 세상을 떠난 해, 행주양수장에 장엄한 한문체로 된 ‘이가순관개송덕비’가 세워졌다. 송덕비 건립위원은 조익순(趙益洵), 윤원삼(尹原三), 맹관호(孟觀浩), 최춘근(崔春根)이었다. 조익순은 평양의전 출신 제1기 제1호 의사로 활동하다가 이가순의 농촌부흥운동에 뜻을 알고 동참한 친구다. 그의 아들 조창호 소위는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북한에 있다가 43년만에 탈북하여 육군참모총장에게 귀대 신고를 한 군인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가문이었다.

  이가순 부자(父子)의 한평생 애국애민의 삶은 참 특별하다. 우선, 미국 선교사들의 사랑에 보답하듯 교회생활에 충실하였다. 한평생 겸손하고 성실한 애국애족의 삶을 살았던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둘째, 이들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가장으로 칭송을 받을 만하다.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했고 후손들로 명문가를 이루었다. 이가순의 큰 딸 인숙은 여의사가 되어 1952년에 강원도 경찰국장이 된 이범구씨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두었다. 막내 딸 원숙은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고 동경 유학생 정준채와 결혼하여 7남매를 두었다. 아들 명훈과 딸 명화와 경화는 각각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을 전공해서 ‘정트리오’라는 세계적인 음악가 집안이 되었다. 모두 이가순의 외손이다. 망국의 한은 자녀교육의 열정으로 꽃피웠다. 

▲ 이원숙 막내 명규의 돌잔치 기족사진, 뒷줄 왼쪽부터 명화 명근 명소, 앞줄 왼쪽부터 경화 이원숙 명규 명철 정준채 명훈

원재의 두 아들은 세브란스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둘째 승훈은 의사가 되었다. 장녀 인철은 이화여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여 음악과를 졸업하여 동래 일신여고서 음악교사를 했다. 2녀 인영과 3녀 인옥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4녀 인순은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인영은 한국 최초의 지질학 박사인 김옥준(연세대학교 교수)과 결혼해서 4남매 두었는데 7명의 손자들이 서울, 일본, 미국 소재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국방성 직원, 회계사, 의사 3명, 미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굳굳하게 살아가는 것은 의로운 희생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다.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 이원재 의사 6남매 강릉 관동병원 정원에서(1930년), 오른쪽부터 이원재(막내 인순), 아내 노숙경(인옥), 인숙(이가순 큰딸), 승훈, 동훈, 인영, 인철(큰딸), 맨 왼쪽 남자는 노태준(노백린 장군의 막내아들)으로 보인다

  셋째, 사돈인 이가순과 노백린 장군의 온가족이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원재는 병원의 수익금으로 아버지와 장인의 독립운동 자금을 도왔다. 이원재의의 세브란스 의전 후배인 동서 박정욱 의사도 마찬가지로 장인의 독립운동자금을 도왔다. 노백린 장군의 4남매 중 큰딸 노숙경 여사(이원재의 아내) 이외에 3남매는 건국훈장,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넷째, 일회성 독립운동이 아니라 평생 계속하며 한평생 애족애민의 정신적 지도자의 본을 보여주었다. 이가순을 3•1 독립운동가로 국한하는 것은 부분적인 평가이다. 일제는 농지를 강탈해 갔지만 농민들에게 농토를 만들어 준 것은 물질적인 가치로 판단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경이롭고 영웅적인 위업이다.

  작가는 고양시 농민들이 매년 4월 7일 행주양수장에서 한 해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고유제를 갖고 첫 통수식을 할 때 이가순, 이원재 부자(父子)를 ‘존영(尊靈)’으로 칭하는 모습을 보고 책 제목을 『영웅은 열매를 팔지 않아』로 정했다.

  2010년 이가순기념사업회를 조직되고 일산호수공원에 커다란 송덕비가 세워지고, 수로 옆 농로가 ‘양곡길’로 개명되었다. 호수공원까지 시민걷기 행사도 했다. 이가순 부자를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어 그들의 사랑, 인간관, 가치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흩어지고 묻힌 행적의 파편을 찾아다녔다.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한 명백한 사실이 있다. 두 부자(父子)는 죽기까지 애국 애민의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을 애국지사 또는 의사(醫師)로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녀들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을 등한시할 수 없어서 각각 66세와 47세에 서울(고양군)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피폐해진 농촌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살기로 뜻과 재원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이 숨은 재원이었다.

  이가순관개송덕비는 행주대첩비처럼 영웅의 표상이 되었다. 부모는 자녀에게 생활로 가르쳤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정트리오(명화, 경화, 명훈 남매)의 어머니 이원숙은 “너희 할아버지는 일흔 살이 넘어서도 산을 뚫고 물길을 냈어.”라는 말로 경쟁에 힘들어하는 자녀들에게 국위를 선양하는 정신으로 음악하기를 권유했다. 후손들은 이런 정신으로 피나는 노력을 다해 한국의 이름을 빛냈다.
  영웅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옥토를 만들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건국의 기초를 만들었다. 이승만(조봉암)보다 15년 먼저 실제로 농지개혁을 하였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빛나는 업적이다. 영웅이라는 호칭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존영(尊靈)으로 불러 주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