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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지 않는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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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19일 (화) 00:32:38 [조회수 : 2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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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4월, 마틴 루서 킹 Jr. 목사는 흑인민권운동을 조직하고 후원하다가 체포되어 버밍햄 시립교도소에 갇히게 되었다. 어느 날 교도소 안으로 들어온 신문을 뒤적이다가 그는 주요 교파에 속하는 성직자 여덟 명이 낸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민권 운동을 위한 시위를 비판하면서 시위 가담자들을 극단주의자, 범법자,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했다. 그 글 어디에서도 시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조건에 대한 언급 혹은 성찰은 없었다. 마틴 루서 킹 Jr.은 그들에게 매우 정중하고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언자적인 열정으로 가득 찬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자유란 압제자가 자발적으로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피압제자들이 투쟁을 통해서만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웠다며 이렇게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기다려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 말은 흑인이라면 누구나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대부분 ‘안 돼!’라는 의미입니다.”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는 이들은 현상 질서를 교란하는 이들을 불온한 인물로 낙인 찍는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질 일을 너무 서두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틴 루서 킹 Jr.는 정의 실현을 지나치게 지연하는 것은 정의 실현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흑인의 지위향상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은 ‘백인시민평의회’나 ‘KKK단’이 아니라, 정의보다는 ‘질서’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온건한 백인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어느 시대에나 사회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악한 사람들의 몰이해가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의 천박한 인식이다. 마틴 루서 킹 Jr.은 “인류의 진보는 기꺼이 신의 협조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아침마다 시위를 벌이자 공당의 대표가 그것을 서울 시민들을 볼모로 잡은 반문명적 시위라고 규정했다. 서울 지하철 역사 모두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는 전장연의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 장애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비존재 취급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이들이 불편한 내색을 하면서 ‘기다려라!’라고 말한다. 세상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시위란 안온한 일상을 뒤흔들어 틈을 만들고, 투명 인간 취급받던 사람들을 불투명하게 만들어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는 행위이다. 모든 사람들이 존엄한 권리를 누리며 사는 세상을 열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현하지는 못할망정 비난을 쏟아 부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 8주기가 다가온다. 이미 긴 세월이 흘렀다. 팽목항에서 자식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흐느끼던 어머니들의 울음소리는 아직 그칠 줄 모른다. 그날 사람들은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니 지켜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소스라쳐 놀랐다. 그때 국가는 부재했던 것이다. 촛불 집회를 통해 집권한 이들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야만의 시대가 열린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사람들의 굳은 약속은 시간의 풍화 작용으로 누렇게 바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건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이들이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의해 조국이 유린되고 수많은 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어머니라 일컬어지는 라헬이 그 후손들의 참담한 현실을 바라보며 무덤 속에서 우는 소리였다. 라헬의 울음소리는 도처에서 들려온다. 

세상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과 그 가족들을 침묵시키려 한다. ‘조용히 해!’ ‘기다려!’ ‘그만 하면 됐지 뭘 더 바라!’ 몇 푼의 보상으로 그 사건이 완료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은 이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생명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조롱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 망각에 저항하며 기억 투쟁을 벌이는 이들은 결코 지지 않는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이들이 있는 한 정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버밍햄 교도소에서 마틴 루서 킹 Jr.이 성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날짜는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었다.

(2022/04/09 일자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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