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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목사
신현희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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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15일 (금) 22:35:31 [조회수 : 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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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만세: 길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

365일 새벽기도 매일 전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2011년부터 안산에서 개척 목회를 하고 있는 동네 목사입니다. 거리를 걸어가면서, 전도하면서 만난 사람들이야기입니다. -신현희

 

요즘 내가 성경을 배우고 있는 목사님 말씀하셨다. 교회에 거지 성도, 부자 성도가 있다고. 돈이 없어 거지 성도가 아니고 돈이 많아 부자 성도가 아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늘 주고 베풀고 헌신하고 나눠도 남는 것이 있는 성도는 그가 비록 가난하다해도 부자 성도다. 반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줄줄 모르고 받기만 하는 성도는 많이 가졌어도 거지라는 말이다.

맞다 싶어 무릎을 탁 치다가도 뭔가 참으로 찝찝하고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거지 목사 때문이었다. 교회의 풍토와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도사 시절부터 주의 종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성도들의 온갖 배려와 관심을 받는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을 찾다가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었던 목사가 생각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음식 대접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가져다 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못입고 못먹어도 주의 종 챙기던 원망스러운 부모님이 시간 지나고 보니 복이었다는 옛날 부흥사들의 레파토리가 기억난다.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고 매사에 친절하게 권면하고 들어주는 목사가 고맙게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내게 영감을 주는 설교자들 목회의 멘토들을 찾을 때 작은 것일지언정 결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는 덕스러운 권면을 좋게 여기고 나누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비틀어 매도하고 싶지 않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도 한해 한 두번 목사님들께 작은 선물 하나 둘 씩 할 때는 몰랐는데 교구 심방에 같이 동참하면서 교역자 사무실에 자주 오가다 보니 뭐라고 해야할지..."

마뜩한 말을 찾지 못해 망설이던 그 분이 어렵게 적절한 표현을 찾은 것이 이렇다.

"목사님들은 사례를 받지 않아도 충분히 사실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이유는 그랬다. 심방을 다녀오다보면, 심방을 받는 집에서 대접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런 저런 선물을 준비할 때도 있고, 식당에 다녀오면 가족들 먹을 것 까지 싸주는데,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이것 저것 들어오는 선물에 사무실까지 가지고 오기도 눈치가 보여 교회 주차장에서 승용차 트렁크에 옮겨 실어 두고 사무실로 올라온단다. 영적인 아버지시니 어버이날, 가르치는 스승이시니 스승의 날, 추수감사절, 연말연시면 수고하신다고 이런 저런 것들을 가져다준다. 교구 담당 목사의 생일이라도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케잌과 선물이 답지한다.

그 성도님은 듣고있던 내 표정이 좋지 않아보였던지 하시던 이야기 끝을 살짝 흐리셨다.

그런 이야기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여서가 아니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목사들을 슬며시 비방하는 말을 들어 기분이 언짢아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목사들, 부교역자로 사역하며 만난 나의 현실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이렇게 같은가 싶어 할 말을 잃었을 뿐이었다.

뭘 그리 팍팍하게 굴것 있나? 작은 인사나 답례, 축하가 그리 문제될게 있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짜 큰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나 싶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분발하여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지만 이런 호의에 익숙해지면 금새 권리로 자리 잡는다. 때가 되면 이제 뭔가 올 때가 되었다는 직감도 속에서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특권의식이 지나치면 어디를 가건 지갑을 놓고 다니는 습관도 생긴다. 더 큰 문제는 교우들을 바라볼 때, 내게 뭔가 줬던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한 번도 그런 것을 준 적 없는 성도들은 시나브로 관심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연초 담당교구가 배정되면 비교적 윤택한 지역 교구를 배정받은 목사들이 내심 우쭐한다는 말에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다.

딸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을 때 기쁨으로 축하했던 목사가 사례가 적었다는 이유로 간접적으로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섭섭함을 표명해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는 그 성도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목사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마치고 돈을 받는다면 우리는 정녕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파는 것인가? 나 역시 전도사 시절, 교회의 유력한 장로님 부친상 후에 교역자들에게 돌린 봉투를 받고 한참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개척목회를 하다 보니 그런 것을 주는 사람이 이제 없어 부러운 마음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보았다. 물론, 개척 후 처음 3년간 교우들에게서 넥타이 하나 와이셔츠 하나 받은 것이 없었다. 그럴만한 성도들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전도사 시절부터 그동안 얼마나 받고만 살아왔는지를 절감했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헌신과 섬김과 사랑을 강조하면서 나는 늘 받기만 했다. 주님께서 오죽 그런 나를 보기 안타까우셨으면 "나눔교회"로 보내셨겠나? '나눔이 행복', '나누는 게 남는 것'임을 말이 아닌 진리로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었나? 목회자가 돈을 주고, 생필품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땅히 내게 있는 것, 나사렛 예수 이름의 치유와 소망, 말씀을 통한 위로, 희생과 헌신의 삶 그 자체를 줘야겠지만 그것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작은 것 하나를 나누는 행동 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개척 후 처음 3년 동안을 생각해보면 그 어느 때 보다 수중에 들어온 것이 없었지만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웃들과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주기로 작정하고 주기만 했는데 도리어 풍족하게 누리고 넘치고 남았다. 6년차에 접어든 지금 나 역시 거지 목사의 반열에 다시 진입하고 있음을 느낀다. 성도들은 겨울이 되었다고 따뜻한 털 슬리퍼를 어느새 사두셨다. 슬리퍼를 벗고 올라가는 강단에 직접 누빈 목화솜 방석을 마련해 두었다. 명절이면 과일과 크고 작은 선물을 메시지와 함께 애찬실에 놓고 가신다. 고급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다가 목사 생각이 났다며 식사권을 일부러 보내오신 집사님도 계셨다. 가까이 사시는 장로님 권사님 가정은 김장철에 김치, 평소에는 이런 저런 반찬과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을 자주 가져다주신다. 매번 빈 통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성도들의 정성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다 표현하자면 이 또한 암시가 될까 말하기조차 어려운 귀한 것들을 어느새 받고 누리고 있다. 마음속으로 비판하고 있던 거지 목사가 다름 아닌 나였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받아오기만 했던 거지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성도들에게 정중히 권하고 싶다. 선한 의도로 목사에게 내미는 금전과 선물이 결코 선하지 않을 수 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어느 목사님이 몇 년 전, 주일 설교 강단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거 가져 오지 마세요! 그거 더 이상 고맙지도 않고, 그건 목사 죽이는 길입니다!" 물이 흘러들어갈 뿐 흘려보낼 줄 모르는 바다를 우리는 사해, 죽은 바다라 부른다. 목사든 성도든 자신이 복의 종착역이 되어서는 썩고 말 것이다. 목사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교회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다면 이제 목사를 향한 사사로운 선물 공여를 멈추라. 밀려오는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다면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향해 이름도 빛도 없는 봉사를 권한다.

신 목사여! 자립하라! 더 이상 부둣가에서 던져주는 썩은 고기에 미련을 두지 말고 창공에 있는 하나님 은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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