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인문학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고병헌 외 공역, 이매진, 2010)                          
 
최근 ‘반지성주의’가 만연하다. 기본적인 한자 단어나 관용구조차 알지 못하는 MZ세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극실용주의와 4차 산업시대의 낯선 언어의 부각도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보다 ‘지성’ 혹은 ‘지성인’에 대한 실망과 허무함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지식-정보-지성’의 차이에 대한 개념이 혼재된 상태에서 팬데믹 기간동안 방치해 버린 교육에도 잘못이 있을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품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80년대 초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의 기록에서 청년회 캠프 일정표를 보게 되었다. 성경과 더불어 지성, 인문학에 대한 갈망에 목말랐던 당시 캠프에는 서양철학, 구약사, 동양철학 강의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며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초기 한국 기독교의 공로가 바로 ‘교육’이 아니었던가. 학교를 설립하고 선교사들은 도시든 시골이든 교육을 위해 부르튼 발과 입으로 전국을 다니지 않았던가. 문명과 지식, 인문학의 태동이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희망의 인문학> 책을 꺼내든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소외된 계층을 위해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를 창립한 얼 쇼리스가 쓴 것으로 2006년도 경기 문화재단과 성공회 대학교가 광명시 평생 학습원에서 클레멘트 코스를 도입하며 번역하였다. 클레멘트 코스에서 실제 적용된 사례를 들어 인문학 교육이 사회의 가난한 약자들을 위한 진정한 복지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022년 한국 사회에 가난이 웬 말이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이 넉넉지 않은 가난한 이들과 마음이 빈곤한 이들은 여전히 넘쳐난다.

“고등 교육기관이 ’교육하는 곳‘에서 ’준비시키는 곳‘으로 전락해서 인문학 교육을 완전히 포기하기 이전에도 교육이라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잘 사는 사람들의 일일 뿐이었다.”(<희망의 인문학>, 33p).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될 때마다 쓰는 방법은 항상 똑같았다.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같은 페이지) 

이런 말은 직설적으로 현재 교육환경 문제를 꼬집는다. 훈련과 교육은 분명 다르다. ‘직업훈련’은 기술과 지폐 단위에 가깝지만 ‘교육’은 사람과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 미디어 콘텐츠가 넘쳐나는 중에도 창조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고갈된 삶과 사람에 대한 교육의 부재가 야기한 부작용을 이미 너무 많은 심리적, 정신적 아픔으로 체감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전과자, 노숙자, 정키, 빈민층을 대상으로 플라톤, 칸트 같은 철학과 인문학 교육을 통해 당장 오늘의 배고픔과 식수 해갈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성찰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힘(power)을 갖고 자유인으로서, 민주주의 정치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도록 한 클레멘트 코스의 내용을 읽어보면 참 놀랍다. 굶주림과 불법(비윤리와 비도덕) 중에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기를 성찰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기준을 정하기 시작하면서 ‘인문학은 우리 학생들이 자기 안에 내재된 인간의 존엄성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고,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그들 또한 사랑을 통해서 변화되어 갔다.’(같은책, 239p)

변화가 일어나는 공적 장소(Public)에 대한 언급은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철학의 기조로 접근하는 클레멘트의 민주주의는 ‘공공’과 ‘국가’를 의미하는 코이노스Koinos와 상담, 토론, 철학적 대화를 의미하는 코이놀로지아Koinologia에 기초해 지적 활동과 대인관계의 결합으로 정치와 자유, 사회를 이해하게 한다. 개인의 자아는 한 사회, 공적 장소에서 의미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가난하지 않게 된다는 저자의 생각에 기독교의 공동체, 코이노니아Koinonia가 떠오른 것도 당연하다. 

저자 얼 쇼리스는 그 중 하나의 예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꼽는다. “빈곤과의 전쟁을 통제했던 백인들과 달리 킹 목사는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성찰적 사고와 행동하는 삶이 허용되는 환경 아래서 드러나는 흑인들의 행동에 대해 뭔가를 감지하고 있었다. (중략)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이 무력의 포위망이 주는 공황상태를 벗어나게 될 경우, 그들이 인종적 차별에도 불구하고 성찰적으로 사고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며 경제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잘 깨닫고 있었다. 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이 자치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교회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같은 책 153p)

얼 쇼리스는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미국의 제도 및 정책적인 문제에 대한 ‘정치적’ 사고를 이끌어 내었고 결국 가난을 벗어나고 성찰하는 시민들로 자립하는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한국의 크리스천이라면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할 수 있는 교육복지적 역할을 당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대면 때문에 더욱 더 사회보다 개인적 기준이 중요해지면서 공적 세계를 잃은 세대, 디지털 리터러시가 세워지지 않은 채 이미 적응해 버린 시대에 어쩌면 다시 한번 교회가 <희망의 인문학>와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그 전신을 읽어보고 제대로 된 ‘지성’과 공동체 교육의 기준을 세워야 할 때인 것 같다. 

박창수 목사 (선한목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