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이야기로 본 예수와 그의 시대>, 게르트 타이쎈 저, 이진경 역, 비아, 2019

“왜 예수는 죽었나?”는 질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는 종교적 답을 얻을 수 있고, 로마 제국을 전복하고자 하는 죄명의 정치적 답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의 죽음이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사순절을 맞아 예수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묵상한다.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의 저자 게르크 타이쎈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주인공 안드레아스라는 가상 인물의 탐정 활동을 통해 예수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열심당, 바리새파, 에세네파, 로마인 등 다양한 그룹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 즉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를 제시하고, 요세푸스, 쿰람 공동체 문서, 고대 유대인 철학자들, 그리고 복음서에 기초하여 갈릴래아 사람 예수의 그림자를 재 구성한다. 젤롯 당원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안에 서 있었다”라고 중얼거리는 안드레아스의 자기 고뇌를 통해 저자 타이쎈은 과연 어떤 내용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갈리래아 사람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 역사적 예수 연구의 목적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하여 예수 죽음의 의미를 극대화 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과 달리 타이쎈은 철저히 역사적인 증거에 기초하여 예수의 삶과 죽음을 증언하고 있다.  

각각의 장 마지막에 배치된 타이쎈과 가공 인물 크라칭어와의 서신은 불확실성과 저자의 독단을 배재하는 탐정소설의 기법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타이쎈은 이 서신을 통해 크라칭어에게 자신이 묘사한 예수의 삶과 죽음의 역사적 확실성을 담보하고자 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안드레아스는 갈릴리 세포리스 출신의 교육받은 유태인 가정의 상류층 인물로서 소설에서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예수를 알고 예수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 이는 마치 복음서 저자들의 증언을 떠 올리게 하는 소설적 장치다. 
 
이 책은 1988년 독문학을 전공한 차봉희 교수에 의해 번역서가 처음 나왔고, 2019년 신약성서학자 이진경 교수에 의해 새로운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성서의 역사적 배경과 고대 문헌에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번역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마치 성지순례를 떠난 느낌이 들었다. 정탐을 떠나는 주인공 안드레아스를 따라 유대 광야에서 에세나파를 만나고, 갈릴리 지역의 젤롯 당원들을 만나고, 가버나움과 벳세다 지역에서 펼친 예수의 사역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드레아스와 독자들은 예수가 단순히 이 세상의 체제 전복을 꿈꾸었던 반역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 예언자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수의 죽음 앞에 삶의 기반이 흔들리고,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 앞에 “내 삶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고 고백하는 안드레아스처럼 사순절은 내 삶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쫓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진양 목사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사, 세계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