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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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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3월 19일 (토) 23:17:01 [조회수 : 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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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은 ‘홀로’ 서는 시간이다. 사순절의 경건 훈련 덕목인 ‘금식, 절제, 침묵’은 모두 혼자 하는 일이다. ‘홀로’(monachos)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평생 경건 생활을 서약한 수도자(Monk)는 ‘홀로’ 존재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수도원(Monastery)을 가리키는 단어 역시 ‘홀로’ 존재하는 훈련을 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홀로 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일 역시 의미가 있다. 오래도록 코로나19 감염병으로 ‘홀로 서기’ 위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지구의 정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탄소 금식, 에너지 금식, 지방 금식이 좋은 사례이다. 사람들은 공통된 경험을 하면서 이렇게 실토한다. “중요한 것은 넘쳐나서 배우기보다 부족해서 배우는 법이다. 풍요로운 상황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결핍함이, 나의 부족함이 내게 가르쳐 준다.”  

  이는 성경의 금욕전통과 분리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구제, 기도, 금식’은 율법의 의무인데, 예수님은 이를 산상설교(마 6:1-18)에서 재해석하신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형식적 태도’를 주의하도록 경계하셨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6:1). 만약 금식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권면하셨다.

  사순절은 이러한 금욕전통을 통해서 배우는 전통적인 경건 절기이다. 예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 순례를 통해 절제와 경건 생활로 육신과 영혼을 맑고 참되게 하려고 하였다. 참회와 금욕, 기도와 구제 등 신앙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부활을 준비하려는 모습이다. 

  현대인도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경건 생활을 사순절이란 계기를 통해 의무감을 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여전히 즐겨 선택하는 경건 방식으로 ‘침묵, 절제, 금식’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은 은인자중하지 않으며, 조용히 행동으로 옮긴다. ‘경건한 자’(시 4:3)는 매사에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하며, 올바른 일을 위해 기꺼이 크고 작은 희생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예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바로 침묵이었다. 침묵은 입은 다물되, 마음으로 귀 기울이게 하는 방식이다. 마치 봉쇄 수도원에서 침묵하는 수도자들처럼, 그들은 입을 꼭 다묾으로써 자기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려고 하였다. 침묵은 자신의 몸을 오로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는 그릇이 되려는 것이었다.

  그런 수도자의 침묵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더욱 널리 크게 증거 한 것은 역설적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서방이나 동방을 불문하고 수도사들이 그리스도교의 전교와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재확인하였다. 개신교 학자들도 ‘만일 수도사가 없었다면 유럽이나 아메리카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의 침묵이 더 위대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현대인의 의지 역시 침묵을 지향하지만, 사실 가장 못하는 것이 침묵이다. 가장 쉬울 듯하지만 쏟아지는 정보의 유혹 앞에서 소통의 SNS를 차단하고 입을 다무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훼방꾼은 스마트 폰이다. 저마다 손안에 컴퓨터를 움켜쥐면서부터, 고요한 평화를 놓쳐버렸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침묵이 실종된 배경이다. 라틴 격언에서 “소리는 많으나 음성이 없다”라는 경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오늘 교회를 연상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은 소란함과 분주함일 것이다. 이른바 열심인 교회일수록 더 바삐 돌아가고, 소란함을 이벤트로 삼는다. 시끄럽고 번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마저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나눌 수 없다면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은 교회가 좀 더 조용해졌으면, 침묵을 사랑했으면, 그럼으로써 평안과 안식을 제공해 주었으면,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을까? 토마스 머튼은 말한다. “비록 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수도자는 한 은자(隱者)로서 자기 실존의 내적 황무지를 개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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