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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파수꾼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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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26일 (토) 22:04:21
최종편집 : 2022년 02월 27일 (일) 00:17:45 [조회수 : 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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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일이 되었다. 김포군 문수산성 골짜기로 첫 목회를 나갔을 때 성동리에 살던 동네 청년 하나가 내게 말하였다. “젊은 사람이 왜 이러고 다니냐?”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그의 눈에 낯선 전도사가 옹색한 시골집을 세내어 홀로 지내면서 교회 같지 않은 교회를 시작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도시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어디 취직해서 돈 벌 생각은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내내 빈둥거리는 모습은 볼썽사나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가타부타 구구절절 설명이 통할 상대는 아니었다. 돈을 버는 일에 성실하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가족을 부양하고, 사람 구실을 하려면 그래야 할 것은 마땅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그들 유관순과 안중근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요즘 ‘소방대원, 구급대원, 의료진, 사회복지사, 교육봉사직’과는 공적 성격이 달랐다. 물론 우리 사회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허긴 너나없이 제 식구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일자리만 지키려 들었다면, 우리 민족의 독립이나 민주화는 더 지체되었을 것이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나 복음 전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의 눈에는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돈벌이와 상관없이 평생 작가나 예술가로 활동하는 사람을 수입과 연봉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적 취미나 개인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만족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익적이다. 그런 작가의 자부심일까? 조각가 김종영은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란 말을 하였다. 

  모든 일을 수입이나 연봉에 따라 판단하고, 좌우하는 세상은 얼마나 삭막한가? 공들인 만큼 돈도 벌면 좋겠지만, 때로는 남의 눈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런 사람도 필요하다. 악착같이 따지고 비교하여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세태는 불편하다. 지난해 여름, 아들 결혼식에서 주례자 말씀이 “두 사람은 살면서 너무 타협하지 말라”고 하더라. 시류에, 현실에, 사람 때문에 너무 닳고 닳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비현실적이어서 더 깊이 공감하였다. 
  
  작년 이맘때 ‘기독교사상’ 편집주간에게 원고를 쓸만한 원로 목사 한 분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남을 추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조기 은퇴한 한 ‘아직 젊은’ 선배를 소개하였다. 물론 그는 원고 청탁에 손사래를 쳤다. “나는 이름도 없고, 무능하고, 정년도 못 채우고 떠난 사람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심의 문제 아닌가? 그가 쓴 글의 제목은 ‘딸각발이 목회’였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 중에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1989년 지금의 안산대학에서 교목을 하던 때이다. 당시 기독교대학에서는 축제가 문제였다. 어느 대학이든 축제를 하면 고사로부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고사를 지내야 학교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 같고, 학교는 고사만큼은 막아야 기독교학교로서 위상을 지켜내는 양 여기던 때였다. 교목으로 처음 맞은 축제에서는 얼떨결에 고사를 막아내지 못하였다. 

  그다음 해 축제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사를 막아낼 뾰족한 수가 없었다. 천상 몸으로 부딪혀 보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고사가 시작되려 할 때, 홀로 운동장에 나갔다. 학생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돼지머리가 차려진 고사상을 발로 걷어찼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몇 마디 하였다. 정말 맞부딪히고 싶으면 만만한 학교 건학정신을 건드리지 말고 거대한 군사독재정권과 맞씨름을 하라고.” 

  그가 썼던 <바보 예수를 꿈꾸다>(권오무)를 다시 읽어 보았다. 요즘 신학교의 미달사태를 보면서 근심이 많다. 다들 돈 되는 학과를 찾아가니 이젠 어수룩하게 ‘예수 그물’에 걸려드는 바보를 찾기가 어려워진 모양이다. 비단 엘리트가 아니어도, 남보다 잘나지 못해도, 그저 ‘쓸데없는’ 공익을 맡겠다는 소소하나 거룩한 책임감이면 충분할 것이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 시류를 쫓아다닌다면, 누군들 시대와 세상을 지킬 파수꾼 노릇 하겠다고 자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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