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

(삼상13:1-3, 삼상14:1-52, 삼상18:1-4, 삼상19:1-7, 삼상20:17-22, 30, 41-42, 삼상23:17-18)

“이스라엘의 용사들은 들으라!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블레셋에게 비참하게 짖밟혔다. 그러나 이제 사울 왕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으니, 모두 힘을 모아 저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을 응징하러 가자. 나와 함께 할 용사들은 나를 따르라!”

요나단은 기브아에서 자신에게 배치된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블레셋과의 싸움을 독려했다. 그러자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외쳤다.

“요나단 왕자님! 만세!”

“사울 임금님! 만세!”

“이스라엘! 만만세!”

“블레셋을 무찌르러 나가자!”

이리하여 이스라엘 군사들은 요나단의 명령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블레셋의 기브아 수비대를 공격했다.

“블레셋 놈들아!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지. 이제 우리의 따끔한 맛을 보거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진멸하자!”

그러자 기브아에 있었던 블레셋 수비대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니, 저것들이 미쳤나? 싸움도 못하는 것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그러게 말야. 겁도 없이 어디서 설치는 게야. 나가서 쓸어버리자!”

그래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기브아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런데 마침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장과 맞붙게 되었다.

“네 이놈! 잘 만났다. 오늘이 네 놈의 장삿날이 될 것이다.”

“하하하! 젊은 놈이 겁도 없이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게냐. 네 놈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곳은 오히려 네 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싸움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잔말하지 말고 이 칼을 받아라!”

요나단은 거침없이 블레셋의 수비대장을 공격했다. 그러자 수비대장은 점점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마침내 요나단의 칼에 쓰러졌다. 요나단은 잽싸게 그의 머리를 베어 손으로 번쩍 들고 외쳤다.

“적장의 목이 여기 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용기를 내어 적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라!”

“와-와!”

“요나단 왕자님이 최고다!”

블레셋은 방심했다가 수비대장은 죽고 수비대는 거의 전멸되다시피 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블레셋의 왕과 백성들은 깜짝 놀랬다.

“이스라엘이 반란을 일으켜 기브아의 수비대가 전멸되었다는 게 사실이냐?”

“예-옛! 폐하! 송구스럽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허-어! 우리 군대는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저 따위 오합지졸들에게 당했단 말이냐?”

“요나단이란 왕자가 중심이 되어 기습 공격을 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블레셋의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이번에 블레셋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줘야겠구나. 전군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믹마스로 집결하라! 가서 이스라엘을 뿌리채 뽑아오거라.”

“예-옛! 폐하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겠나이다.”

“‘사울이 블레셋 수비대장을 죽였다. 그래서 블레셋이 잔뜩 화가 났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온 이스라엘에 퍼졌다. 그리고 블레셋의 군대가 믹마스에 집결했는데, 전차가 세 개 부대, 기병이 여섯 개 부대, 보병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았다. 그러자 사울 왕은 경계나팔을 불고 이스라엘 군사들을 소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숫적으로 훨씬 열세라는 것을 깨닫고 달아나 숨기 바빴다. 심지어 요단 강을 건너가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사울 왕과 요나단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직 함께하는 군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몹시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때, 사무엘 선지자는 길갈에 있었던 사울 왕에게 명령했다.

“칠 일을 기다리시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가 기한 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참다 못한 사울 왕은 명령을 내렸다.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가져오너라!”

사울 왕은 직접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나타났다. 사무엘 선지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울 왕! 당신,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입니까?”

“블레셋 사람이 나를 치러 곧 길갈로 올라올 텐데, 나는 아직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고 있어 제가 직접 나서서 번제를 드린 것 뿐입니다.”

“사울 왕!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했소. 왕이 왕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약속을 지켰다면, 지금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의 왕권을 영원토록 견고하게 다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불순종했으므로 당신에게 주어진 왕권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왕을 대신할 자를 찾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그 분께서 직접 택하실 것입니다. 원하는 사람을 찾으시면, 그분께서 친히 그를 지도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왕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결과입니다.”

“……”

사울 왕은 사무엘의 영적 권위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울 왕 옆에 있었던 요나단은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여 사무엘 선지자에게 뭐라고 말했다.

“사무엘 선지자님?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아버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섣불리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했기 때문에 아버님은 수습하려고 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접니다. 아버님은 잘못한 게 아닙니다. 사무엘 선지자님!”

“……”

요나단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러나 사무엘 선지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길갈을 떠났다. 그러자 사울 왕이 요나단을 일으키며 말했다.

“요나단? 그만 해라. 선지자님은 벌써 떠나셨다. 네 잘못이 아니다. 어쨌든 사무엘 선지자가 오기 전에 제사를 드린 것은 나다. 그러니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만 자책하거라.”

“그래도 아버님에 대한 징계는 너무 가혹합니다.”

“아니다. 마땅히 불순종한 댓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거다. 그러나 이 애비는 괜찮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을 두려워해서 거의 도망쳤고, 이제 사울 왕에게 남은 군사들은 육백 명에 불과했다. 그때 요나단은 뭔가를 골몰히 생각했다.

“으-음! 지금 형편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가 없겠어. 어떻게 하면 좋지. 도망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묘책이 필요해. 더군다나 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다시 회복시켜 드려야 해.”

요나단은 나라와 사울 왕에 대한 걱정으로 시름하며 밤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새벽녘이 가까워질 즈음, 요나단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 방법 밖에 없어.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한 알의 밀알이 되자.”

요나단은 자기의 칼을 드는 병사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말했다.

“얘야? 어서 일어 나거라. 길 건너편 블레셋의 수비 정찰대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자.”

“예-옛! 왕자님! 이 깊은 밤에 블레셋이 있는 건너편으로 건너 가자고요?”

“그래. 그렇다니까.”

“왕자님! 미쳤어요? 우리 두 명이 갔다가는 뼈도 못 추려요. 안 되니까 그만 주무세요.”

“허-어! 이 놈이 어디서 말대꾸를 하는 게냐. 썩 일어서지 못할까?”

“왕자님! 누가 안 간다고 했습니까? 누구 분부신대 제가 감히 못 한다고 하겠습니까?”

“진작 그럴 것이지. 아버지가 아시면 안 되니까 조용히 서둘러라.”

“예-옛!”

요나단은 기브아의 이스라엘 진영을 몰래 빠져나와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는 브세스와 세네에 도착했다. 그 때 요나단은 자신의 칼을 들고 있는 병사에게 말했다.

“이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건너가서 혼쭐을 내주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큰 군대를 통해서만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뜻을 정하시면, 아무도 그분을 막을 수 없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될 것이다.”

“왕자님! 잘 알겠습니다. 왕자님께서 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행하십시오. 저는 왕자님께서 무엇을 하시든 함께 하겠습니다. 그런데, 왕자님! 무슨 전략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렇게 하자. 일단 길을 건너가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을 보이자. 만일 그들이 ‘멈춰라! 너희를 검문할 때까지 꼼짝하지 마라!’고 하면, 우리는 올라가지 않고 여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어서 올라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신 것으로 알고 바로 올라갈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표징이고 전략이 될 것이다.”

“왕자님! 좋아요. 그대로 하시죠.”

이리하여 두 사람은 블레셋 수비대의 눈에 잘 띄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소리쳤다.

“저기를 봐라! 히브리 사람들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온다!”

“어이! 거기 두 사람? 어서 이리 올라오너라! 우리가 본 때를 보여주마!”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숫자만 믿고 요나단과 그의 칼을 든 자의 용기를 깔보았다.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은 절벽 위에 있는 고지에서 두 사람을 향해 깔깔대며 조롱했다.

그러자 요나단은 그의 칼을 든 자에게 외쳤다.

“올라가자! 나를 따라오너라! 하나님께서 저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다!”

요나단은 절벽 위를 악착같이 기어올라 갔고, 그의 칼을 든 병사도 용감하게 요나단의 뒤를 바짝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마침내 정상에 오르게 되었을 즈음, 블레셋 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요나단은 잽싸게 그들을 때려 눕혔고, 그의 칼을 든 병사는 돌로 그들의 머리를 세게 쳐서 마무리했다. 이 날의 전투에서 요나단과 그의 칼을 든 병사는 이십 명의 블레셋 군사들을 죽였다. 마침 아침의 햇살이 밝게 비추면서 블레셋의 수비대가 붕괴되는 모습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진영에 보였고, 블레셋 진영은 두려워 떨었다. 하지만 벌벌 떨고 있었던 이스라엘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스라엘 만세!”

한편 사울 왕은 블레셋 진영을 휩쓸고 있는 혼란과 소동에 대하여 보고 받았다.

“으-음!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우리 중 누군가 블레셋 진영으로 가서 싸우지 않고서야 저 난리가 날 리가 없잖는가? 그렇다면 누가 싸우러 갔단 말인가? 그야 인원 파악을 하면 금방 알 수 있겠지.”

사울 왕은 군사를 정렬시키고 점호를 실시하여 누가 있고 없는지 확인하게 했다. 그러자 요나단과 그의 칼을 드는 병사가 보이지 않았다.

“허-어! 그럼 그렇지. 요나단이 또 사고를 쳤군.”

사울 왕은 서둘러 아히야 제사장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서 제사장의 에봇을 가져오시오. 하나님께서 이 일에 대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봅시다.”

사울 왕은 요나단이 하나님의 명령도 없이 움직였다는 것이 꺼림직하여 아히야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상의했다. 그러나 블레셋 진영의 소동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아히야 제사장에게 “에봇을 치우시오”라고 말하고, 즉시 군대를 소집하여 싸움터로 나갔다. 그런데 막상 적진에 와보니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블레셋 군사들은 칼을 마구 휘두르며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있었다. 한편 이 장면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울 왕과 요나단 곁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사람들도 블레셋 군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나와서 합류했다.

싸움은 어느덧 벳아웬까지 번졌고, 사울 왕의 군대는 만 명의 강한 군사가 되었다. 그 때, 사울 왕은 참으로 어리석은 명령을 내렸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들으라! 저녁 전, 곧 내가 적들에게 복수하기 전에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알겠느냐?”

“예-옛!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만만하게 믹마스에서 멀리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군사들을 추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사들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기진맥진했다. 들판 곳곳에는 벌집이 있었지만, 그 꿀을 맛보려고 손가락을 대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울 왕의 맹세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막대기 끝으로 꿀을 조금 찍어 먹었다. 그러자 요나단은 기운이 나고 눈이 번쩍 밝아지면서 새 힘이 불끈 솟아났다. 그 때, 옆에 있었던 한 군사가 당황하며 말했다.

“요나단 왕자님! 왕께서 ‘저녁 전에 무엇이든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엄숙히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자님께서 꿀을 드셨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쓸데없는 맹세를 하셨구나. 나는 꿀을 조금만 먹었는데도 이렇듯 빨리 기운이 나지 않았는가! 만약에 우리 군사들이 적에게서 빼앗은 것을 뭐라도 먹었더라면 휠씬 더 크게 승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태롭게 만들었구나.”

“요나단 왕자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는 배고파서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먼저 먹어야 합니다.”

요나단 주변에 있었던 이스라엘 군사들은 전리품을 취하기 시작했고, 양과 소와 송아지 등 눈에 띄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아서 고기와 피와 내장까지 먹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사울 왕에게 가서 고자질을 했다.

“폐하! 큰일 났습니다. 군사들이 배고파 금식의 맹세를 깨고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기를 피째 먹고 있습니다. 지금 막지 않으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뭐라! 고기를 피째 먹는다고 했느냐? 허-어! 낭패로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으-음! 당장 큰 돌 하나를 준비 하여라. 그리고 너는 당장 군사들 사이로 다니면서 알려라. ‘고기를 마음껏 즐겁게 먹어도 좋다. 그러나 고기를 피째 먹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거라.”

그래서 배고픈 군사들은 겨우 진정하였고, 그날 밤에 군사들은 전리품으로 챙긴 짐승들을 사울 왕이 준비한 돌 위에서 잡고 피와 내장은 뺀 고기들을 먹고 힘을 내었다. 그리고 나서 사울 왕은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말했다.

“용감한 이스라엘 군사들은 들으시오! 오늘 밤 블레셋 사람을 쫓아가서 밤새도록 약탈하고 전리품을 취하자! 블레셋 놈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말자!”

“와-하!”

“사울 왕! 만세!”

“좋습니다.”

그런데 아히야 제사장이 나서서 사울 왕과 군사들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지금 나가면 안 됩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겠습니까?”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무 응답도 하지 않으셨다. 한참을 기다리던 사울 왕은 끝내 더 참지 못하고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말했다.

“모든 군지휘관들은 앞으로 나오시오. 오늘 누군가 죄를 범했소. 그 죄가 무엇이며, 누가 범했는지 찾아낼 것이오.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설령 내 아들 요나단일지라도 그를 죽일 것이오.”

군지휘관들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 왕은 다시 명령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저쪽으로 정렬하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서겠다.”

그리고 사울 왕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어째서 오늘 제게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진실을 보여 주십시오. 저와 요나단에게 죄가 있다면 우림 표시를 주시고, 이스라엘 군대에 죄가 있다면 둠밈 표시를 주십시오.”

그런데 우림 표시가 나와서 사울과 요나단에게 죄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자 사울 왕은 당황하며 말했다.

“나와 요나단에게 죄가 있는 것 같군.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지 당장 제비를 뽑겠소.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오.”

그러나 이스라엘 군사들은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반대했다.

“폐하! 두 분 중에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맞습니다. 이 일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고집을 부려서 우림과 둠밈으로 제비를 뽑았고, 결국 요나단이 걸렸다. 그러자 사울 왕은 화를 버럭 내며 요나단을 추궁했다.

“요나단! 네 놈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당장 말하거라!”

그러나 요나단은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오히려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왜 저한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직도 네 놈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느냐? 네 놈은 금식의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

“아버지! 저는 그런 맹세가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한참 블레셋 군대와 싸우다보니 배가 고팠고, 마침 들판에 꿀집이 있어 막대기로 꿀을 조금 찍어 먹었을 뿐입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제가 죽어야 합니까?”

“그렇다.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나님을 거스를 수는 없지 않느냐? 나도 어쩔 수 없다.”

사울 왕은 요나단을 포박하여 곧장 죽일 기세였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폐하! 지금 요나단 왕자님을 죽이시려고 합니까?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왕자님은 오늘 이스라엘을 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우시고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건대, 왕자님의 머리털 하나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왕자님은 쉬지도 않고 온종일 하나님과 함께 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왕자님을 죽이려고 하십니까?”

“……”

사울 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맹세 때문에 요나단이 죽을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사들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요나단은 죽음을 면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쓸데없이 소모전을 벌이는 사이에 블레셋 군대는 멀리 도망쳤다. 그래서 영적 권위에 손상을 입은 사울 왕은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을 그만 두었고, 블레셋 군대는 무사히 자기 땅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어느덧 빠르게 흘렀다. 블레셋은 방심하여 패배했던 아픔을 딛고 군비를 확장하면서 이스라엘과 싸울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했다. 그런데 블레셋에는 무엇보다도 키가 거의 3미터나 되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비밀병기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무서운 싸움꾼이었다. 그의 갑옷의 무게는 57킬로그램이었고, 창날의 무게만 해도 7킬로그램에 달했는데, 심지어 그는 그의 방패를 따로 드는 자가 있을 정도였다.

“블레셋 용사들은 들으라! 드디어 이스라엘을 정복할 때가 왔다. 지난번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용감하게 싸워 복수하러 가자!”

“와-하! 이스라엘을 정복하러 가자!”

블레셋의 왕이 외치자 블레셋의 군사들은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앞다투어 뛰어갔다. 그리고 블레셋 군대는 파죽지세로 유다 땅 소고까지 쳐들어가 에베스 담밈에 진을 쳤다. 그러자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상수리 나무 골짜기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이스라엘의 겁쟁이들은 들으라! 너희 군대와 굳이 다 싸울 필요가 있겠느냐? 블레셋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용사를 골라 나와 대결하게 하자. 만일 그 자가 나를 쳐죽이면, 블레셋은 다 너희 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겨서 그 자를 쳐죽이면, 너희는 다 우리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할 것이다. 내가 오늘 도전장을 던지니 어서 한 사람을 내보내라. 어디 한번 끝장을 내보자!”

이스라엘 군대는 생전 처음 보는 거인이 소리치자 겁에 질려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벌벌 떨고 있었다.

“어-허! 저런 건방진 놈이 있나? 우리 중에는 저 놈과 싸울 용사가 아무도 없단 말인가?”

“……”

사울 왕은 발을 동동 굴리며 주변 군사들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사들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윗이 등장하여 기가 막히게 골리앗을 죽였다. 그러자 블레셋 군대는 자신들의 장군이 맥없이 쓰러지자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고, 그동안 숨죽이며 숨었던 이스라엘과 유다 군사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가드와 에그론 성문까지 블레셋 군대를 추격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한편 사울 왕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골리앗의 머리를 취하여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

“아브넬 장군? 저 젊은이는 도대체 누구요? 우리 군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다니 참으로 기특하오.”

“왕이시여! 황공하오나 저도 아는 바가 없나이다.”

“그렇다면 저 젊은이가 누군지 알아보시고, 나에게 데리고 오시오.”

“예-옛!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다윗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아브넬 장군은 다윗을 사울 왕에게 데려갔다. 마침 다윗의 손에는 여전히 골리앗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사울 왕은 그 모습을 보고 흠짓하며 말했다.

“으-음! 젊은이의 기상이 대단하구나! 자네는 누구의 아들인가?”

“예! 왕이시여! 저는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입니다.”

이때 사울 왕의 옆에 있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허-어! 저 다윗이라는 젊은이가 보통내기는 아니군. 친구로 삼아도 손색이 없겠어.”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을 따로 불러서 말했다.

“다윗? 내 말을 들어보시오.”

“예-옛! 요나단 왕자님! 말씀하소서.”

“나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왕자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요나단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니, 제가 감히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니되옵니다.”

“괜찮다. 이제부터 너는 내 친구니라.”

“……”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을 사랑했고, 다윗에 대한 후원자가 되고자 하었다. 그래서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으며, 그 언약의 증표로 선물을 주었다.

“다윗! 이것은 자네와 내가 친구라는 증거로 주는 거라네.”

“그게 무엇입니까?”

“나의 겉옷과 갑옷, 칼과 활과 허리띠네.”

“요나단? 이것은 당신의 생명과 같은 건데, 어떻게 내가 받을 수 있는가?”

“아니네. 이제는 자네 것이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런데 다윗의 앞날에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울 왕이 다윗을 질투하면서 비롯되었다. 다윗은 사울 왕이 무슨 일을 맡기든지 훌륭하게 완수했고, 뛰어난 지도력 덕분에 사울 왕의 모든 신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여인들은 다윗의 용맹에 대해서 흠모하며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인다!”

그러자 사울 왕은 펄쩍 뛰며 화가 잔뜩 났다.

“뭐라고! 난 수천 명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고! 이런 괘씸한 것들을 봤나. 내 이것들을 가만 놔두지 않겠어.”

그래서 사울 왕은 요나단과 그의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여봐라! 지금 당장 다윗의 목을 베어 가져 오너라!”

“예-옛! 폐하의 명을 거행하겠나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사울 왕 몰래 다윗을 찾아갔다.

“다윗? 큰일 났네. 아버지께서 자네를 죽이라고 했네. 그러니 어서 도망치게.”

“요나단! 아닐세. 사울 왕께서 왜 갑자기 나를 죽이려고 하시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자네가 넌지시 왕께 의중을 여쭤보게. 그리고 만약에 죽일 계획이 분명하다면 그때 도망쳐도 늦지 않네.”

그래. 그게 좋겠군. 내가 가서 아버지께 자네 이야기를 할 테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고 결정하세.“

그래서 요나단은 슬그머니 왕궁으로 돌아와서 사울 왕의 눈치를 보며 이제나저제나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다윗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다윗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우리나라의 영웅이지. 왜 그러느냐?”

“그렇죠. 그러니 부디 다윗을 해치지 마십시오.”

“요나단? 누가 다윗을 죽인다고 하느냐?”

“방금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셨잖습니까?”

“아-하! 그건 잠시 내가 화가 나서 그런 거지, 내가 왜 다윗을 죽이겠느냐.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 다윗은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골리앗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아버지도 그 자리에 계셨죠. 아버지도 모든 사람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다윗의 생명을 해쳐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요나단! 네 말이 옳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다윗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살 것이다.”

“아버지! 정말이지요? 고맙습니다.”

요나단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얼른 사람을 다윗에게 보내어 다윗을 만났다.

“다윗! 걱정하지 말게. 아버지께서 자네를 죽일 마음에 없다고 하셨네.”

“요다단! 이 모든 게 다 자네 덕분이네. 정말 고맙네.”

“하하하!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가? 하나님께서 자네를 도우시니까 그런 거지.”

요나단과 다윗은 모처럼 왕궁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블레셋과 전쟁이 다시 터졌고, 다윗은 출전하여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승전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는커녕 악한 영에 사로잡혀 우울했다. 그때 왕궁에서 축하 잔치가 열렸다. 마침 사울 왕은 손에 창을 들고 앉아 있었고, 다윗은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울 왕이 다짜고짜 다윗에게 창을 던졌다. 그러자 다윗은 잽싸게 피했다. 그리고 사울 왕이 끝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왕궁을 빠져나와 사무엘 선지자가 계시는 라마의 나욧으로 도망쳤다.

한편 요나단은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분명 아버지는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요나단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이 나마의 나욧에서 몰래 빠져나와 요나단의 집에 슬그머니 들어왔다.

“요나단? 있는가?”

“아니, 이게 누군가? 어서 오게! 다윗!”

“이보게 요나단! 이제 어찌하면 좋겠나? 내가 자네 아버지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까지 나를 죽이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

“글쎄 말일세. 나도 도무지 모르겠는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 아버지가 자네를 죽이려고 하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네.”

“요나단! 나도 그러기를 바라네. 하지만 왕께서는 정말 나를 죽이려고 작정하신 듯, 창을 나한테 던지셨네. 만약에 하나님께서 비켜가게 하지 않으셨다면 난 그곳에서 죽었을 걸세.”

“자네가 죽다니, 말도 안 되네. 자네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자네가 죽는다는 건가? 말도 안 되네. 자네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아버지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나와 상의하시는 데, 나도 모르게 어떤 일을 하시지는 않을 걸세.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말게.”

“요나단! 나도 자네 아버지께서 나를 죽이려 하지 않기를 바라네. 하지만 자네 아버지는 우리가 절친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계시네. 그래서 왕께서는 ‘요나단은 이 일을 알아서 안 돼. 알았다가는 다윗 편을 들 것이다’라고 생각하실 것이 분명하네. 그래서 자네는 아무 것도 모를 수 있네. 그러나 내 예감이 맞는다면, 자네 아버지는 나를 죽이기로 하신 게 틀림없네.”

“후-유!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면 좋겠나? 자네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해 보게. 무엇이든 들어주겠네.”

“내일은 초하루네. 내가 왕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날이지. 그러나 나는 식사에 참석하지 않고 셋째 날 저녁까지 들판에 숨어 있겠네. 그러면 자네 아버지가 나를 찾으실 텐데, ‘다윗이 연례 모임이 있어 고향 베들레헴에 가서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습니다’라고 말씀해 주게. 그때에 자네 아버지가 ‘좋다!’라고 하시면, 나는 무사할 것이고, 화를 내시면, 그분은 나를 죽이기로 작정하신 게 분명하네. 그러니 자네는 나에게 거짓이 없어야 하네. 자네와 나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이가 아닌가? 혹시 내게 잘못이 있다면, 자네가 직접 나를 죽이게. 내가 자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해 주게.”

그러자 요나단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안될 말이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네. 아버지가 자네를 죽이려고 결심했다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자네에게 알려주겠네.”

“하지만 자네 아버지가 자네를 호되게 꾸짖으시고 출입을 통제하면 누가 나에게 소식을 전하겠는가?”

“으-음!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서 들판으로 가서 나와 자네만 아는 약속을 하세.”

요나단과 다윗은 들판으로 나갔다. 요나단은 들판을 바라보며 다윗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다윗!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내 증인이시네. 내일 이맘 때에 자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내겠네. 그리고 그것을 자네에게 알려 주겠네. 내가 만약 자네를 배반한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천벌을 내리실 걸세. 내 아버지가 여전히 자네를 죽일 생각이라면, 자네에게 알려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게 하겠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네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네.”

“요나단! 난 자네를 의심한 게 아니라네. 다만 사울 왕이 자네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내 신변에도 위험이 되어서 그런 거라네. 괜히 내 말에 상처가 되었다면 용서하게.”

“아닐세. 당연히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지. 난 괜찮네.”

“고맙네.”

“그런데, 다윗? 부탁이 있네.”

“뭔가?”

“만일 내가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살아 있다면, 계속해서 내 언약의 친구가 되어 주게. 또한 혹시 내가 죽는다면, 언약의 우정으로 내 가족을 영원히 지켜 주게나. 하나님께서 자네의 원수들을 이 땅에서 멸하실 때, 나에 대한 의리를 꼭 지켜 주게.”

요나단은 다윗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맹세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했다.

“다윗! 내일은 초하루니, 자네가 저녁 식사에 나타나지 않으면 다들 자네를 찾을 것이네. 사흘째가 되어 자네를 더 이상 찾지 않으면, 자네는 전에 숨었던 곳으로 가서 큰 바위 옆에서 기다리게. 내가 바위 쪽으로 화살을 세 번 쏘겠네. 그런 다음 종을 보내면서 ‘가서 화살을 찾으라’고 할 텐데, 내가 종에게 ‘화살이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고 외치면, 자네가 무사히 돌아와도 좋다는 신호로 알게. 그러나 내가 ‘화살이 더 멀리 나갔다!’라고 외치면, 서둘러 도망치게. 지금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건대, 나는 진심이라네.”

“……”

다윗은 목이 메어 말없이 요나단을 껴안았다. 요나단 역시 두 팔을 벌려 다윗을 부둥켜 안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그리고 다윗은 저물어 가는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드디어 초하루 절기가 다가왔다. 사울 왕과 모든 신하들이 식탁에 앉았다. 사울 왕은 벽 쪽에 않았고, 요나단은 식탁 맞은편에, 아브넬 장관은 사울 옆에 앉았다. 그러나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사울 왕은 다윗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으-음! 다윗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거겠지. 그래서 괜히 거룩한 식사 자리를 망칠까봐 오지 않은 걸 거야.”

그런데 초하루 다음 날인 명절 이틀째에도 다윗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러자 사울 왕이 요나단에게 물었다.

“요나단? 이새의 아들은 어디 있느냐? 어제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 먹지 않는구나.”

“아참, 아버지께 깜박했습니다. 다윗이 제게 베들레헴에 가게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고향의 가족 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의 형들이 제게 당부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가서 형들을 보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겁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식탁을 거칠게 걷어 차며 요나단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네 이놈! 이 버러지 같은 계집의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이 바보 멍청한 놈아! 이새의 아들이 이 땅을 활보하고 다니는 한, 이 나라에서 너의 장래는 보장할 수 없어. 그러니 어서 가서 그를 잡아 이리로 끌고 오너라. 이 순간부터 그놈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요나단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사울 왕에게 대들었다.

“아버지! 죽은 목숨이라니요? 도대체 다윗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러십니까?”

“뭐-뭐라고! 다윗이 뭘 잘못했냐고 이 애비에게 따지는 게냐? 이런 처 죽일 놈을 봤나.”

사울 왕은 너무나 화가 나서 옆에 있던 창을 들고 요나단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아브넬 장관이 서둘러 사울 왕을 말렸다.

“왕이시여.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요나단 왕자는 황태자입니다. 제발 고정하옵소서.”

“에잇! 알겠소. 하지만 장군도 저놈이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것을 들었잖소. 다 저를 위해서 하는 것인줄도 모르고 다윗 편을 들고 있으니, 내가 속상해서 그러는 거잖소.”

그러자 아브넬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사울 왕과 요나단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요나단 왕자님! 폐하께 잘못했다고 하시고, 폐하는 화를 푸십시오.”

하지만 요나단은 잔뜩 화가 나서 식탁을 발로 차고 뛰쳐나갔고, 사울 왕은 거품을 물고 씩씩대었다.

“어-휴! 저놈의 성질머리! 누굴 닮아서 저래?”

요나단은 하루종일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으-음! 아버지의 본심은 다윗을 죽이는 게 분명해.”

요나단은 이튿날 아침, 다윗과의 약속한 날에 어린 종을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다. 요나단이 종에게 말했다.

“너는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가져오너라.”

“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어린 종이 달려가자, 요나단은 그 종보다 한참 앞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어린 종이 화살이 날아간 곳에 이르자, 요나단이 말했다.

“화살이 더 멀리 나가지 않았느냐? 어서 서둘러 가져오너라.”

요나단의 어린 종은 화살을 주워 요나단에게 가져왔다. 하지만 어린 종은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요나단은 어리벙벙한 어린 종에게 화살집과 활을 주어 성읍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다윗이 숨었던 바위 옆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얼굴을 땅에 대고 세 번을 절했다. 이러한 처절한 모습을 지켜보던 요나단은 감정이 북받쳐 다윗에게 뛰어갔다.

“다윗! 미안하네.”

“요나단! 자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는가? 오히려 내가 미안하네, 자네 아버지와 등을 돌리게 해서 네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아니네,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해서 내가 미안하네.”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 부둥켜 안고 서럽게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요나단이 말했다.

“다윗! 이제는 평안히 가게! 하나님께서 나와 자네 사이에, 또한 내 자녀와 자네 자녀 사이에 영원한 보증이 되실 것이네. 우리 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정을 맹세한 사이임을 명심하게.”

“요나단! 물론이지. 우리의 우정을 잊지 않고 자네의 자녀들을 반드시 지켜 주겠네.”

다윗과 요나단이 눈물로 헤어진 후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사울 왕과 세 명의 아들이 길보아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다. 그러자 이 슬픈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은 애통해 하며 애가를 불렀다.

“내 사랑하는 형제 요나단이여, 그대의 죽음에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오. 기적과도 같은 그대의 우정은 내가 지금껏 알았던, 앞으로 알게 될 그 무엇보다도 더한 사랑이었소.”

다윗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대로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극진히 잘 보살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