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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시샘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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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23일 (수) 23:59:16 [조회수 : 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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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이 차다. 햇살은 따뜻하나 그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맵다. 햇살이 따뜻하다고 넋놓고 쬐고 있다가는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서서히 치고 올라오는 시리고 아린 아픔을 당하기 쉽다. 입춘과 우수가 지나 봄이 멀지 않았다고 순간 방심하는 사이 겨울의 시샘은 나의 온몸을 통째로 휘감으며 싸늘한 동태로 만들기 일보 직전이다. 이럴 때 괜한 멋을 부렸다가는 고뿔에 걸리기 딱 알맞은 날이다. 옛 어른들이 입찬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여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이런 환경 속에서 올 겨울은 감기와 별다른 병치레 없이 무난히 지나가고 있다. 작년 겨울 서너 달 심하게 감기를 앓아 일 년이 힘들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종합감기약으로 전전하다 병을 키운 셈이었다.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코로나는 아니었다 해도 몸의 면역력이 거의 반이나 떨어지도록 방치한 것이다. 후각과 미각을 잃어 몇 달 음식을 먹지 못했고, 몸은 지칠대로 지쳐 백신 1차와 2차에서 하늘 문이 열리는 경험을 맛보았다. 너무나 아찔한 순간이어서 다음날 몸을 일으켜 생애 처음으로 수액을 맞았다. 그렇게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 이 겨울을 그나마 그리고 감사하게도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농민기본소득 법제화를 위한 일천인 서명 기자회견을 하러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십년 전, 서울에 잠시 머물렀을 때 서울의 겨울바람은 차기도 차거니와 매섭고 따가워서 그 기억을 따라 간만에 오른 서울길의 나의 모습은 완전무장이었다. 기자회견장인 국회 앞 광장은 휑했다. 빌딩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기자회견을 하는 20분 내내 우리의 머리 위에서 맴돌며 괴롭혔다. 역시 서울의 겨울바람은 차디 찼다. 음성 추위, 내가 사는 마을도 아래 동네보다 2도 떨어지는 유별나게 추운 곳이지만, 서울 광화문이나 국회 광장의 추위는 더한 것 같다. 느낌을 표현하자면 농촌 겨울바람은 맞으면 산뜻하다고 할까? 반면 서울 겨울바람은 그냥 냅다 내리꽂듯 후려치는 얼얼함이 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근처에 있는 별다방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추위는 얼얼해도 커피 맛은 부드럽고 커피 향은 그윽했다. 공짜 쿠폰으로 마셔서 그랬을 것이고, 추위에 떨다 들어와 마셔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겨울 시샘은 이번 일주일 내내 꽃피웠다. 이틀 전에는 하늘이 갑자기 어둑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바람 사이로 하얀 눈이 날렸다. 봄 농사를 위해서라면 눈이 제법 와야 하지만 밤사이 눈이 쌓여 졸린 눈을 비비고 눈을 쓸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가능한 밤이 아니라 햇살이 내려오는 낮에 오면 좋겠다. 밤에 쌓이면 경사진 마을을 내려가는 마을 사람들의 어깨가 저절로 뭉쳐진다. 운전대에 온 몸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설날 내린 눈에 미끄러져 차와 혼연일체로 도랑에 빠졌던 중년 부부는 눈길 트라우마 때문에 속히 마을을 떠나고 싶다고 했단다. 마을 경치가 좋아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는데 처음 맞은 겨울, 옛 어른들은 기뻐했던 서설에 그들의 기대는 악몽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중년 부부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나도 덩달아 눈길 운전이 이전보다 더 소심하게 변했다. 

겨울 시샘이 그렇게 기승을 부려도 봄은 가까이 왔다. 우리집 한라와 고양이들을 보면 안다. 한낮 햇살이 따사롭게 마당과 장독대와 거름더미 위에 내리쬘 때 녀석들은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온몸을 햇살에 온전히 맡기고 있다. 한라는 내가 다가가도 모를 정도로 꿀잠에 취해 있다. 고양이들은 마당 저 끝에서 이 끝까지 햇볕 아래에 줄지어 앉아 구루밍을 하고 있다. 상팔자 그 자체요,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그리고 어느덧 2월 말이다. 춘삼월이 코 앞이다. 개구리 입이 벌어질 경칩도 일주일 후다. 겨우내 숨어 있던 참새들이 이제는 나뭇가지마다 줄지어 앉아 짹짹거린다. 닭장 앞에 먹을 것이 많아도 겨울 시샘보다 더 매서운 냥이들의 눈빛에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서 입맛만 다신다. 겨울 시샘이 아무리 매워도 이제 일주일 후면 맥을 못 출 거다. 창밖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새순이 돋을 날을 기다린다. 봄이 언제 왔냐 싶듯이 새순도 언제 틔워졌냐 할 정도로 성큼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이월 끝자락에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괜한 심술을 부리는 겨울에게 맞서지 말고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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