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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성묘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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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29일 (토) 22:35:07
최종편집 : 2022년 01월 30일 (일) 21:57:02 [조회수 : 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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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은 역시 부모님이 살아계셔야 제맛이 난다. 추석과 설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는 이유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번거로운 귀향길이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은 새로운 힘을 얻고 돌아온다. 반가워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발길보다 마음이 먼저 다다른다. 오랜만에 환해지신 아버지의 얼굴만 보아도 죄송스럽다. 이런저런 화제로 말을 붙이는 부모님께 짐짓 능청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여기는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그런 귀성객의 모습이 가능했다. 그런데 가까운 3년 안에 친가와 처가 네 분 부모님이 모두 소천하신 후에는 명절에 갈 곳 없는 고아가 되었다. 네 분의 신실함은 우리 가족의 삶에 아름다운 돋을새김으로 영혼의 무늬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명절이면 ‘마음의 성묘’로만 가능해졌다. 

  네 분은 신실한 신앙인으로 사셨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기둥 같은 역할을 하셨고, 본보기로서 거울처럼 사신 분들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목사로서 양가의 가족 대소사에서 예식을 인도했는데, 그런 나를 대견스럽고,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추도식의 주인공으로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네 분은 내 인생의 동업자였다. 늘 손해 보는 장사지만, 동업하는 일만으로도 기꺼워하셨다.  

  장모님은 1992년부터 색동스톨의 제작자셨다. 하나의 스톨에 앞면은 색동을 뒷면은 청홍으로 배접하여 양면을 두루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런 까다로운 스톨 50개를 의뢰하면서 개당 5천 원씩 드렸다. 훗날 생각하니 날도둑놈 사위였다. 장인어른은 1993년 고난모임에서 기획한 ‘내 마음의 고향교회’ 달력 제작에 동업하셨다. 여름방학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달력에 담을 사진을 찍으셨다. 물론 기름값 한 푼까지 사양한 자원봉사이고, 다른 말로 하면 밑 빠진 재능기부였다.

  부모님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재배한 채소로 번번이 김치를 담궈 4남매에게 택배로 보내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후 살펴보니 불룩한 양복 주머니마다 절약의 흔적을 남겨두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말을 걸고 계신다. 짧지 않은 회고담을 기록해 주셨는데, 12회에 걸쳐 계간 <성실문화>에 소개하고 있다. 주석을 달고 사진을 찾으면서 여전히 어머니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기억은 영혼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는 중이다. 
 
  두고 두고 내 자랑이 되었다. 2005년 6월에 네 분을 모시고 5명이 금강산 구경 간 일이다. 비싼 경비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리하여 부모님을 모셨다. 모처럼 효도하는 모습으로 비추어 과분한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양쪽 부모님을 모시는 관광여행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금강산 온천에서 목욕하고, 다음날은 장인을 모시고 온천욕을 하였다. 둘째 날은 어머니 손 잡고 구룡연에 오르고, 다음날은 장모님 손을 잡고 만물상에 올랐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어머니는 며칠 전 반갑게 꿈으로 찾아오셔서 내 부축을 받으셨다. 문득 떠나신 네 분 모두 지금은 ‘마음의 고향’이 되셨다.  

  결혼 후 30년 이상 친가와 처가를 고루 찾아다녔다. 가능한 한 오래 머무르는 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손님처럼 들렀다가 한두 나절 머물다가 부랴사랴 떠난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불편해서다. 소통할 대화소재가 적고, 여러 식구 부대끼기가 불편하며, 행여 짐 질 곤란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 라고 한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실 수는 없었다. 기쁨이든 부담이든 사람들이 찾는 고향은 영원하지 않다. 이제 부모님께로 향하는 길은 더 이상 세상의 지도로는 찾아갈 수 없다. 앞으로 고향은 마음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믿음의 본향도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심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고향을 찾게 하심이라”(힐데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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