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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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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2월 23일 (목) 23:25:21 [조회수 : 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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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무렵, 어둠이 가장 깊은 때 빛의 세상이 시작된다. 새벽 별이라 일컬어지는 분이 오신다. 그분의 오심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두루 관통한다. 기다리던 존재 혹은 시간의 도래는 기다리던 이들의 가슴에 기쁨의 물결을 일으킨다. ‘기뻐하라’.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이다. 그가 마리아에게 전한 메시지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뻐할 수 있는 소식이 아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았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아무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내산 언약을 맺을 때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소상하게 알리신 후 그들이 동의하는지를 물으셨다. 바로와 애굽의 관료들은 강제 노역에 동원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동 기계였기 때문이다. 기계는 일의 전모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기계가 고장이 나거나 마모되면 교체해버리면 그만이다.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다.

마리아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뜻에 ‘아멘’으로 응답한다. 호젓한 외로움 속에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살려던 가멸찬 꿈은 스러지고 세상의 따가운 시선과 타격을 안추르며 살아야 할 고단한 미래가 남았다. 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마리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예감했던 것이다. 식민지 백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과 착취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세상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이들을 통해 온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땅과 하늘을 화해시키려는 하나님의 꿈은 “계속되는 창조의 드라마에서 한 배역을 담당한 인간과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그 꿈에 주체적으로 동참했다.

어둠은 빛의 부재라지만, 빛의 배경은 어둠일 수밖에 없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다. 어둠에 지친 이들이라야 빛을 고대한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시인 오규원은 “어둠을 자세히 보는 방법은 뭐니뭐니 해도/어둠이 어두운 게 아니라/어두운 게 어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옳다. 어두운 날 바라보면 모든 게 어둡게 보인다. 꽃도 사랑도 청춘도 어둡고 심지어는 태양도 어둡다. 어둠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빛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한다. 세상은 여전히 어둠을 만드는 이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모욕감을 안겨주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보면 암담하다. 세상 어디에도 설 땅이 없는 난민들은 오도 가도 못한 채 국경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어떤 이들은 바다를 건너려다 검은 물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참 빛을 기다리는 이들은 맥을 놓고 기다리면 안 된다. 작은 등불 하나라도 밝혀야 한다. 인간의 등불 말이다.

히틀러 치하에서 순교당한 디트리히 본회퍼는 1943년 대림절에 부모님께 보내는 옥중 편지에서 아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두 분의 시간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질까 염려한다. 그는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성탄절을 맞이하는 마음은 하나라면서, 두 분이 수십 년 동안 자녀들을 위해 준비해준 성탄절의 기억이 자기를 지탱해준다고 고백한다. 그 기억은 “시간의 변화나 우연성과는 무관한 내적 유산과 과거를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정신적 전통이 떠받쳐주는 이들은 어떤 곤경에 직면해도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품을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기억은 우리 속에 슬그머니 깃든 채 주인 노릇하려드는 어둠을 내모는 빛이다. 우리 내면에 조금씩 조금씩 쌓인 빛이 다른 빛과 만날 때 세상은 밝아진다.

동지 무렵의 어둠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줄어들겠지만, 세상에 드리운 어둠은 저절로 줄어들지 않는다. 빛으로 오시는 분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진술인 동시에 초대이다. 공허하고 쇠잔한 무력감에서 벗어나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할 때이다.

* 2021/12/22일 국민일보 '김기석의 빛속으로' 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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