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버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 2015

당신의 이웃집에는 누가 사는가? 얼마 전 집에서 혼자 쓰러진 할머니, 수화기 너머에 어눌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119에 신고했지만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라 강제진입이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은 답답한 아들, 주변에는 가끔 으르렁대며 영역표시를 했을 뿐 십 수 년을 외면하고 지낸 지역주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고독사의 문제가 본격적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실감했다.

영화 <국제시장>에 크게 공감했을 베이비부머, 고도성장사회를 이끌었던 세대 또는 그 직후 세대들이 은퇴하고 있는 지금,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선진 복지 사회로 오랫동안 우리의 모델이 되었던 스웨덴과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자살률과 노인복지와 같은 문제를 우리나라보다 3-40년 일찍 고민했던 나라들이다. 살고 있는 현실과 정서는 다르겠지만 북유럽 국가들의 현 주소를 연구해보면 지금 우리 시대의 사회문제와 현안들에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도 한편에 솟는다. 정책입안자들의 고민 같은 건 집어치우고서라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소설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줌과 동시에 흥미진진하다. 어느새 이 나라에도 스웨덴 감성을 느낄만한 대형가구점이 속속 들어섰지만 여과 없는 진짜 스웨덴을 느껴보고 싶다면 <오베라는 남자>를 읽는 것이 좋겠다. 

소설 내내 오베의 일생동안 세상은 가혹했다. 일곱 살 때 산업재해로 엄마는 몸져누웠고 이내 허망하게 세상을 떴다. 유일한 가족인 그의 아버지는 철도회사에서 일했다. 그에게 남자다움과 정직, 자동차 엔진에 대해 가르쳐주셨던 아버지마저 불의의 사고로 오베가 열  여섯 살이던 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웃음을 잃고 혼자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오베에게 다시 희망이 되어주었던 소냐와의 운명적인 만남, 사고와 슬픔, 고난을 이겨내는 검질긴 의지와 ‘다시 희망’을 그린다. 죽은 아내를 따라가려고 극단적 선택(어리석은 선택)을 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지만 번번이 성가시게 구는 이웃들의 오지랖에 ‘결행’이 무산되고 등 떠밀려 생존하게 된 오베의 모습에 역설적이게도 웃음이 난다.

현재와 회고, 과거 사실의 현재적 기술을 수시로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을 바탕으로 작가는 남성적 시각과 필체로 거침없이 한 사람의 일생과 주위 사람들, 동물들, 자동차까지 기술했다. 직접 인용한 인물들의 대화는 직선적이고 거칠지만 상황묘사는 섬세하고 부드러워 특이한 매력이 있다. 원목을 대범하게 켜서 뚝딱 완성한 후 무광 바니시를 얇게 먹인 가구처럼 소박, 간결하다. 재미와 극적 연출에는 담백한 번역도 분명 일조했으리라.

잠긴 자동차와 차고 문도 세 번씩 당겨 점검하는 깐깐한 남자, 흐트러짐이라고는 도무지 허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영감에게 세상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어 불평을 유발하게 만든다. 세상은 오베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 때마다 오베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갈등하지만 문제는 더 크게 관계 속으로 번져간다. 

상대방에 대한 상식적 예의 갖추기를 포기한 사람과는 대화자체를 피하는 나에게 <오베라는 남자>는 심경적 변화를 일으켰다.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의 사람들을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껏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 있었을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볼 수 있다면, 딱딱하고 매몰찬 성격 한 꺼풀 속에 부드럽고 따뜻한 본심을 발견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다시 품게 해 준다. 이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별 생각 없이 시트콤 같은 책이겠거니 하고 히죽거리며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방심한 탓이려니 했지만 뒤통수가 뻐근한 감동이 있었다. 웃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은 웃지 않는 사람이 더 웃긴 법이듯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덤덤한 화자의 태도 자체가 감동이다.

태산 같이 무뚝뚝한 남자를 진지한 사랑과 유쾌함으로 변화시키는 소냐는 오늘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열쇠 같은 인물이다. 성실하고 우직한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들을 때 아버지의 아들인 누구든 눈물을 보일 것이다. 친절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오베 곁에 사람들의 속 깊은 배려가 아주 살짝 엿보일 때마다 스며드는 감동이 있다. 다가올 겨울이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추워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