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력 : 2005년 07월 24일 (일) 00:00:00 [조회수 : 3397] |
|
망년회는 그 해의 온갖 수고로웠던 일들을 잊어버리자는 잔치지만 영이는 고향을 탈출하여 새 세계에 기쁨으로 적응하고 있는 중인 1974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일년동안의 생활들이 활동사진처럼 선명하게 머리 속을 지나가면서, 멈추게 하여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일들도 너무나 많았으나 냉정한 시계바늘은 원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일월성신은 신이 창조를 했지만 정확한 시간은 인간이 정한 규칙이기에 같은 순간에 지구촌이 환호를 함으로 종교나 문화나 정치 등의 다른 이념으로 고통을 받는 현대에는 런던의 시계탑이 새로운 신으로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라디오에서 이별의 노래 속에 아나운서가 서울 사대문의 중심인 보신각의 종을 치기 위한 카운트를 시작한다. ‘잘 가라! 1974년 서울 입성의 첫 해여.’새해부터는 새 마음으로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해서 영이는 앞만 바라보며 달릴 것이라는 다짐을 한다.
새해 들어 군대를 가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는 남자들이 많아진 것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를 벗어나 남자의 의무인 군복무를 마친 후에 학업에 충실하겠다는 분위기가 대학가에 퍼졌기에 사학과 신입생 중에 10명이나 군대를 지원하여 연일 송별회였다.
“나, 어제 줘 버렸어.”
샐쭉한 얼굴로 커피를 훌쩍대며 마시던 희조가 불쑥 꺼내는 아리송한 말이 무슨 뜻인지 영이는 알 수가 없었다.
“주고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네.”
“무엇을 주었는데?”
영이의 물음에 커피잔을 응시하던 희조의 시선이 영이의 눈으로 옮기며 생긋이 웃는다.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순결.”
이제야 영이는 희조의 말뜻을 겨우 알 수가 있었는데 20년 동안 봉하여 간직한 보물단지의 뚜껑을 연 것 같았다. 걱정에 앞서 자신에게 이런 비밀을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맥주 한잔 할래, 나 어제 아르바이트 돈 받았어.”
“댕큐! 어린 양들 착한 길로 인도하고 받은 나의 친구의 품삯으로 시원섭섭한 나의 마음에 종지부를 찍자.”
둘은 사랑을 확인한 남녀처럼 손을 잡고 다방을 나와 알코올을 즐기는 마음 넓은 자들의 장소인 근처의 생맥주 집으로 들어갔다. 실내에는 알코올 때문인지 다방보다 활기찬 마음의 표현들을 하고 있었기에 다방이 강의 풍경이라면 술집은 바다의 풍경이기에 용감하게 담배를 피는 여대생도 눈에 뜨였다.
“아프지는 않았어?”
희조는 영이를 빠끔히 쳐다보면서 또 한번 싱긋이 웃는 것은 영이의 질문으로 보아 자신이 이 방면에는 선배가 되었다는 확신 때문이다.
“후배, 이 언니의 경험담에 귀를 바싹 기울이도록.”
희조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선 혼자서 깔깔 웃는다.
“영남이 삼일 후에 군대 가니 달라고 하도 조르기에 따먹고 헤어질래, 안 따먹고 계속 사귈래, 선택을 하라고 했더니 따먹고 계속 사귀겠다는 거야. 욕심 많은 남자 놈들.”
희조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서운한 표정을 짓기에 둘은 젊음, 열정,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500cc잔을 힘차게 부디 친다.
“같은 동네에 살아 국민학교 때부터 반장과 부반장 같은 단짝이야. 이성으로서의 감정보다 우정으로 만나는 사이지. 간혹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만나면 전류가 통하지 않아. 사랑은 전류가 통해야 해.”
맞는 말인 것 같다. 사랑은 정신적인 문제이므로 정신이 앞서며 정은 육체적인 문제이므로 육체가 앞 설수가 있으나, 골인점은 다르지만 중간의 일치점에서 만난다는 어느 소피스트의 말도 일리는 있는 것이다.
“그 애도 알고 있을 거야. 육체관계를 가지면 우정이 깨어진다는 사실을, 일부러 나를 위해서 깨뜨리려고 했을지도 몰라. 우리 사회는 남녀칠세부동석이란 개념이 티눈처럼 마음에 박혀 있기에 남녀의 우정을 인정하지 않아.”
“아프지는….않았어?”
진지하게 남녀의 우정과 여성의 사회문제를 논하려는 희조에게 영이는 또 다시 육체의 아픔을 묻는 것은 영이가 본 남자들은 이 짓을 위해 힘들게 번 돈을 들고 먼 골목길로 찾아오기에 여자는 육체라도 아파야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영이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경상도 말로 억수로 아프더라. 어느 단편소설에 새 댁이 이 짓이 너무 아파 하기 싫어 집에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를 이해를 하겠더라. 그러나 호기심은 더 생기더라.”
아직도 시원함과 섭섭함 사이에서 방황하는 희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맥주만 마신다. 시원함과 섭섭함은 공존해야 올바른 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인가?
“독재자의 눈에 보이는 탐욕을 알면서도 91.9%의 투표율과 91.5%의 찬성을 한 우리 민족이 과연 백의민족이며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을 자격이 있을까? 바로 주먹이 올 것을 알면서도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을 국민에게 알리며 항의를 할 사람은 아직 때묻지 않은 젊은이 뿐이야.”
술은 사람의 마음을 넓게 하는지 희조는 첫 경험의 추억은 접어두고 날로 미쳐가는 유신정권에 대해 활시위를 조준하는 것은 군인이 전선을 지키는 총의 방향을 바꾸었기에 학생도 연필의 방향을 바꾸는 혼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말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내일을 꿈꾸며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곧 바른 방향으로 진행이 되겠지.”
영이도 자신의 대답에 부정을 하지만 흥분이 되어 있는 친구를 안정을 시키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았다.
“물리적 힘으로 권력을 잡은 그들이 이성으로 해결을 하려고 할까? 아마 더 힘을 키우기 위해 발광을 할 것이 뻔해. 바른 방법은 우리가 저항이라는 방법을 택하는 길 뿐이야.”
희조의 유신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발언은 순결을 주어버린 여자의 넋두리가 아니라 강한 집념을 보이기에 약간 걱정은 되었으나 여자이기에 별다른 행동은 없을 것이라는 영이의 생각이었다.
“영이 학생, 부탁이 있는데…”
가정부 아주머니가 과일을 들고 2층의 공부방에 올라와서 강원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영이에게 말을 건넨다.
“금방 집에서 전화가 왔는데 춘천의 남동생이 급한 일로 서울에 올라와서 형제들이 모여 나를 찾는 모양인데, 영이 학생이 의원님 오실 때까지 애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겠어?”
거의 일년이 되었지만 가정부 아주머니가 영이에게 부탁을 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저는 오늘 저녁에는 아무 약속이 없거든요.”
“고마워, 춘원이는 낮에 병원에 갔다 왔는데 편도선염이라 오늘만 잘 쉬면 된데. 지금 약을 먹고 자고 있으니 푹 재우는 것이 좋겠어. 의원님, 저녁식사는 부엌에 다 준비를 해 두었어.”
“걱정 마시고 빨리 집에 가 보세요.”
“참! 의원님이 늦으면 10시에 전화를 할거야. 춘원이 아프다고 하면 금방 달려오시니까, 염려 하지마, 고마워.”
아내의 죽음과 바꾼 8대 국회의원직은 1년 만에 해산이 되고 10월 유신의 등장으로 새로 편성된 9대 국회도 무난히 당선이 되었으나 전 의원이 심한 갈등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이 타고 가는 배는 여객선이 아니라 무장한 군함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에 며칠 전 한국대학 출신의 소장의원 친목회에 모신 교수님의 질타가 메아리 친다.
“당신들이 지역 국민들이 뽑은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똑 같은 지역 주민들이 뽑은 동메달의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이라 생각을 하네. 이유를 알고 싶다는 바보들이 있기에 설명을 하겠네.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주의 소련의 허수아비라는 사실은 의무교육을 받은 국민은 다 알듯이,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대통령의 허수아비 맹렬단체라는 사실도 다 알아야 한다.
맹렬단체는 북한의 공개투표처럼 표시 된 투표함에 넣는 토의 없는 대통령 선거를 하며 국회의원의 삼분지 일을 뽑는 특수 선거권이 있으며, 국회가 발의·의결한 헌법개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확정하는 권한이 주어진다. 게다가 대통령은 국회해산권을 가지고 있기에 국회의원은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 세운 혁명세력이 반대 개념인 민주주의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북한은 김총통, 남한은 박총통이라는 1인 독재를 통한 한반도를 갈라먹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금배지를 단 자네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백성이 술에서 깨어 날 수가 있네.”
배 안에도 탈선하는 항로를 염려하는 의원도 다수 있었으나 물위에 떠 있는 배라는 특수성 때문에 선장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기에 자연적으로 전 의원이 술자리가 많아진 것은 복잡한 미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술처럼 좋은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일등병인 자신이 분노한다고 하여 배가 항로를 바꿀 것도 아닌데 자신은 지역구 관리나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항로가 아니다 싶을 때는 술로 친구로 삼아 위로를 받는 것이다.
전 의원은 10시 전에 집으로 못 들어갈 때에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하여 밤 인사를 받고 아주머니에게 주무시고 가시라는 부탁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밤10시30분이 되도록 집에 전화도 못한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는 내일을 위해 먼저 보내고 동료 의원들과 한시간 더 술에 취하기로 했다.
소장파 의원들도 오늘 밀어부친 당의 결정에 심한 분노를 느꼈는지 제법들 많이 취해있었고 밤새도록 술독에 빠져있을 분위기였기에 전 의원도 옆에서 권하는 대로 받아 마시고 권한 자에게 한 잔을 권하는 것이다. 남자는 술이 취하면 술과 새로운 분위기를 찾기에 여자가 부어주는 술을 마셔야 오늘의 분노가 풀리겠다는 제안에 모두들 동의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고 싶었으나 어미 없는 자식들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 근처에 사는 안수 집사인 최 의원을 보니 술이 취하지 않았기에 뒤에 따라 붙었더니 대열에서 빠진 최 의원 차에는 자신 외에도 공처가 오 의원도 타고 있었다. 마누라 없는 자유로운 자신이나 마누라 등쌀에 눌려 사는 공처가 오 의원이나 율법주의자 최 의원이나 술로 회피해 보려는 2차로 향하는 의원들이나 똑 같은 병신들인 것이다.
최 의원의 운전기사가 모는 뒷좌석에서 세 의원은 ‘잘 살아 보세! 병신되어 보세!’라며 신나게 주정을 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더라도 더 병신 취급을 당하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이기에 도망쳐 나온 병신들끼리 밀폐된 차 속에서 함성이나 지르는 것이다.
최 의원, 오 의원과 잘 자라는 인사를 주고 받은 후, 대문의 벨에 손이 습관적으로 향하다 멈추고 빗장사이로 보니 키퍼가 머리를 기우뚱거리며 앉아 있는 모습은 벨을 눌려도 아무도 열어줄 사람이 없다는 듯이 열쇠고리를 입에 물고 꼬리를 흔든다. 사람이 드나드는 쪽문도 큰 대문같이 마당이 안 보이게 막혀 있었으나 강원의 제안으로 안팎에서 서로를 볼 수 있게 세로 빗살철문으로 바꾼 것이다.
“키퍼, 열려라.”
키퍼는 입에 문 열쇠고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쪽문 밑의 틈으로 열쇠고리를 전 의원에게 발로 밀어 주었는데, 이 훈련을 완벽하게 하는데 아이들과 1개월을 키퍼와 씨름을 하였으나 요새같이 전 의원은 키퍼에게 이 훈련을 시킨 사실에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비상 열쇠를 어디에 숨기는지는 키퍼만 알고 있는 비밀 사항이다.
전 의원은 아내도 없는 방에 서둘러갈 것도 없어 정원의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빠르게 열쇠를 숨기고 온 키퍼가 전 의원의 허벅지에 턱을 대고 앉아있는 것은 유일하게 전의원을 기다리고 문까지 열어 주었으니 칭찬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는 요구는 당연한 일이다.
개에게는 칭찬과 꾸중의 의사표시를 아이들에게처럼 확실히 하여야 하기에 전 의원은 키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봄이 오면 자신도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아내는 짐승은 좋아했으나 개나 고양이처럼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은 반대를 하여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집에 개가 없었으나 밍키나 키퍼는 아내가 죽은 후에 처제가 애들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처제는 아내보다 네 살이나 어렸고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자, 수련의 과정은 미국에서 마치고 신경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에도 미국에 계속 남아서 학업을 계속했는데, 치매질환 박사과정이 내년 여름에 마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일년에 두 번은 한국에 와서 부모와 친척들을 만나는 효녀이나 의학공부에 몰두하는 탓인지 32살이 되도록 결혼도 못한 고참 올드미스였다. 아내가 죽은 해, 추석에 언니의 산소를 방문한 처제는 아버지에게 형부가 재혼을 할 여자가 없으면 자기를 추천 해달라고 떼를 쓴 당찬 데는 있으나, 언니처럼 마음이 상당히 착했다.
조카들에게는 일주일에 한번씩 국제전화를 하나 형부에게는 한 달에 한번 정도인데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안부를 묻는 정도였으며 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부부는 같이 살다 보면 자연히 사랑이 생긴다는 고전한국판 여인이었다. 아니 이미 이들은 같이 살아본 경험이 있기에 믿고 있는 줄도 모를 일이다.
아들이 없는 장인은 당연히 찬성이나 남자라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장모님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런 재혼이 차라리 낫다는 충고를 해 주셨다. 전 의원은 현재로서는 재혼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고 아내가 잠시 출장을 간 느낌만 들 뿐이었다.
1950년 2월말, 한국대학 사학과에 합격한 전새원은 아버님 친구 분의 소개로 서울의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소장(小將)과 어머니와 두 딸이 조촐하게 살고 있는 가정에 입주하는 가정교사로 들어 갔었는데, 큰 딸 영선은 배꽃여고 일학년이었으며 예능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고 국민학교 6학년인 영미는 상당히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새원이 본 이 집안의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착하며 헌신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엄격한 군인집안의 여인들은 남자를 받들고 헌신적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가장인 유 소장은 불안한 정세로 전방시찰이 많아 거의 집을 비우는 형편이었는데 새운이 대학과 서울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6.25전쟁이 터졌는데 사태를 낙관하는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전세는 정반대였다.
어느날, 유 소장은 아내에게 작은 군용트럭과 편지를 보내 왔는데 춘천의 선산에 가신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피난 가는 것을 거부하였기에 도토리 섬의 박씨와 함께 남고, 대전의 외가에 서울식구들을 맡기는 임무를 새원에게 부탁을 하였고 원주의 집에도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해 새원 남동생인 새봉에게 연락을 하여 피난 가는 차편까지 준비를 시켰으니 걱정말고 자기 가족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자신의 집안은 남동생에게 맡기고 유 소장의 가족을 태우고 피난 길을 떠나는 것이 새원의 새로운 임무이자 운명이었다. 대전에서 유 소장의 가족들과 전쟁의 상황을 살피던 새원은 유소장의 명령에 따라 아예 부산의 유소장 친구집에 외가 식구들까지 다 맡기고 군대에 입대하였는데 영어실력과 유 소장의 추천으로 육군본부의 말단식구가 되었다.
수복 후 서울로 가족들이 돌아온 뒤부터는 부대와 유 소장의 식구들 사이를 왕복하는 통신병 생활이었고 53년 휴전이 되자, 영선은 고3이 되었고 영미는 중3이 되어 이들을 가르치다 제대를 하였다. 새원이 열심히 가르치고 아이들이 잘 따라준 덕분인지 영선은 배꽃여대 무용과에 합격하고 영미는 한국여고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여 부모님의 기쁨은 대단하였다.
54년은 새원에게는 새로운 봄이었다. 유 소장의 집에서 계속 영미의 가정교사가 되어 전쟁으로 중단된 공부를 일학년 이학기부터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영선은 같은 대학생이 되자 선생님에서 오빠로 존칭을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더니 임으로 변해 실제적인 연애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많은 고향 친구들과 대학동기들이 목숨을 잃어버렸지만 새원에게는 상류층으로 진입하는 전화위복이 되었고 뒤늦게 시작한 4년의 대학시절은 영선과의 연애와 더불어 잊을 수 없는 인생의 봄이었다.
55년 초, 유 소장은 군복을 벗고 야당으로 정치권에 입문하여 고향인 춘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으며 57년에는 영미가 한국대학 의대에 합격하여 새원은 길고 긴 가정교사 생활에서 벗어나 사위자격으로 영선과 같이 졸업반 생활을 하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기에, 둘은 한 눈을 팔지 않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였는데 질투의 여신이 샘이 났는지 아내를 먼저 불려 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한 쪽은 땅에 살고 한 쪽은 하늘에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 했다.
인간의 영혼은 하늘로 돌아가나 육체는 티끌이 되어 이 땅에 남아 있게 되는 것임을 어린 자식들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고, 사랑의 열매들에게 사랑을 전수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죽음 속에 자고있는 아내의 관 앞에서 자식들이 짝을 찾을 때까지 재혼은 하지 않겠노라고 아내와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으로 태어 났으니 당연한 일이고 정욕은 길거리에서 해결이 되며 마음은 절대로 줄 수 없다는 전 의원의 보수적인 집념도 내년에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가 추운 날씨에 밖에서 너무 오래 바람을 맞지 말고 방으로 들어오라고 부르는 것 같기에 주방에서 술을 더 마신 전 의원은 만취가 되어 춘원의 방에서 같이 자기위해 이층으로 올라 가면서 사상최대의 지혜자이나 술독에 깊이 빠져본 솔로몬 왕의 성구를 중얼거린다.
<재앙이, 근심이, 분쟁이, 원망이,
까닭 없는 창상이,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designtimesp=21623> (잠언23장29-35절) |
| <저작권자 © 당당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88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