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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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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0월 09일 (토) 00:23:07
최종편집 : 2021년 10월 09일 (토) 00:25:39 [조회수 :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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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론

<통치론>, 존 로크 저, 강정인 문지영 역, 까치, 1996

<통치론> 또는 <시민정부론>으로 알려진 이 책은 1689년 출간된 로크의 ‘통치에 관한 두 논문’ 중 두 번째 논문인 ‘시민 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시론’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서문에서 “위대한 복원자인 현 국왕 윌리엄의 왕좌를 확립하고, 인민의 동의 아래 그 왕위를 유지하며, … 영국 인민이 정당한 자연권에 대한 사랑과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결의에 차서 굴종과 파멸의 위험에 처한 국가를 구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밝히기” 위함이라고 밝혔듯이, 이 책은 1688년 일어난 명예혁명을 옹호하기 위해 출간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 초고는 적어도 1683년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인 요크 공 제임스를 가톨릭이라는 이유로 왕위계승에서 배제하기 위해서 발의된 ‘배척법안’을 둘러싼 정치적 위기의 와중에 완성되었다. 비록 전면적인 수정을 거쳐 뒤늦게 출판되었지만, 성공한 혁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것을 외치면서 혁명을 선동하고 그 필요성을 역설한 글이라니, 그 울림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살인도 불사하는 이기적 존재라고 주장한 홉스와 달리, 로크는 인간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공통의 규칙이자 척도”인 이성의 지배 아래 자연법에 따라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생명’을 지녔다는 점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 다 소유자인데, 각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에게 주어진 ‘자유’를 활용한다. 신이 인류 전체에게 생계 자원으로 부여한 이 땅에서 인간은 안전한 잠자리를 확보하고,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든 과일을 따든 먹을거리를 마련한다. 손발이 묶인 인간은 그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굶어 죽을 것이다. 따라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던 미국의 혁명가 패트릭 헨리의 외침은 멋진 정치적 수사,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매일 같이 동굴의 잠자리를 빠져나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배불리 먹던 어떤 이는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한꺼번에 담아 옮길 수 있을 만큼 사과를 따서 바구니를 채웠다. 바로 ‘재산’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홉스의 이기적 인간이라면 사과 바구니를 빼앗으려고 주먹질을 할지도 모른다. 이에 맞서 어떻게 사과 바구니를 지킬 것인가? 로크의 생각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신이 주신 그대로의 자연 상태에 있으므로 인류 공동의 재산이지만, 바구니에 담긴 사과는 팔을 뻗어 그 사과를 딴 사람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속한 그 무엇이, 즉 노동이 작용해서 사과가 바구니에 담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은 이미 사회 성립 이전에 존재했고, 자연법에 의해 보호받았다. 물론 인류 공동의 생계 자원인 자연과 그 산물을 다른 사람들이 활용할 수 없게 하는 것, 즉 사과를 너무 많이 따서 보관하다가 썩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이것이 재산을 정당화하는 논리로서 노동가치설의 등장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들이 많아져서 경쟁이 심화하면, 홉스가 상상했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가 도래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즉 자연 상태에서 누리던 권리인 ‘생명’, ‘자유’, ‘재산’을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서 계약을 맺고 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이 로크식 사회계약이다.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에 사회계약이 체결되고, ‘묵시적 동의’에 의해서 계약이 유지된다. 통치자는 권력을 위임받지만,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해진 한계 안에서 그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만약 통치자가 피치자의 이익을 위해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권한을 남용한다면, 인민은 통치자에게 저항하면서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크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메리카,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 기준이 분명 있음을 보여 주었고, 현대 민주주의는 저항권 행사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이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제도화하였다. 바로 선거다. 다가올 선거에서 우리가 저항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되새겨 볼 때이다.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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