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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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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0월 09일 (토) 00:07:30
최종편집 : 2021년 10월 09일 (토) 00:17:58 [조회수 : 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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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나운영 작곡의 가곡 ‘달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한국 서양음악의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운영의 성가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제가 몇 년 전 양평 성실교회의 이정훈 목사님께서 발행하시는 ‘성실문화’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다듬은 것입니다.

   
 

먼저 악보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이 박자가 계속 바뀌는 모습입니다. 악보만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막상 노래로 읊어 보면 우리말의 운율이 음악적 운율로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에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 노래를 흥얼거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사만 시처럼 읊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운율은 꼭 같습니다. 독일어나 영어와 달리 우리의 말과 우리의 시는 정해진 박자 안에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현대시를 가르치시던 국어선생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자유시, 서정시, 내재율’...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우리 시에 대한 국어 문제를 다 맞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언어의 시는 정형시가 아닌 자유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정형시인 시조조차 ‘3-5-4-3’ 등의 변화를 보이며 동일한 박자의 마디 단위에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음악 안에서 자기 민족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은 바흐가 그랬듯이 민족의 얼과 언어에 대한 사랑과 진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을 펼쳐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악보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바뀌는 박자나 마디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이 악보가 작곡되어진 곡이라기보다 나운영이라는 작곡가의 머릿속에서 완벽한 형태로 들어 있던 음악의 채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운영 선생님은 1953년 해군 군종감 정달빈 목사님의 위촉으로 이 곡을 작곡하였는데, 단칸방에 피난 보따리를 풀어 놓고 네 식구가 고생하며 살 때에 홀연히 영감이 떠올라 단 3분 동안에 멜로디와 반주까지 모두 작곡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입버릇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삼으셔서 탄생한 ‘영감’에 의한 작품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마디마다 박자가 바뀐다고 어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보에서 마디는 교각과도 같은 것입니다. 교각은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도로면까지 교각이 삐져나온다면 그 역할을 한참이나 잘못 넘어선 것이지요. 어떤 곡을 접하든지 악보 너머에 있는 음악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음악 너머에 있는 언어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선율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입니까? 전주에서 ‘라~ 솔파레레 도라라~’라고 울리는 단선율 소리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새 푸른 초장에서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전주의 선율은 목가적인 오보에 소리 같기도 하고 언뜻 우리의 피리소리 같기도 합니다. 선한목자가 불러 주는 피리소리는 양떼를 부르는 인자한 목자의 음성같이 들립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두 마디의 코드는 마치 다윗이 즐겨 타던 하프소리 같습니다. 목자의 음성에 대한 양떼들의 응답인 듯 충만한 만족과 평화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피아노 반주를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거하리로다’라고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주의 두 부분이 하나로 어우러져 다시 등장합니다.

   
 

목자의 음성과 양떼들의 응답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영원 속에서 여호와의 전에 거하는 순간이 됨을 작곡가는 피아노 반주를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운영의 음악은 리듬뿐만 아니라 화성적으로도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멘’의 화성을 보십시오. 보통의 찬송은 ‘아멘종지’라고 해서 4도 화음에서 1도 화음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하지만 이곡에서는 6도-1도의 불완전 끝마침을 보입니다. 6도 화성이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먼저 바뀌면서 영원한 여호와의 집에서 빛의 광휘가 찬란하게 펼쳐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불완전 종지는 또한 여호와의 집에 거할 날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왼손이 1도화음의 근음인 낮은 F음을 악센트와 더불어 치면서 완결시킵니다. 충만한 감사와 만족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화성입니다.

   
 

이제 다시금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곡 전체를 들으시면서 함께 흥얼거려 보시기 바랍니다. 국악 선율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만의 정서가 천재적인 영감으로 서양적 작곡 기법 속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마치 나의 목자께서 우리 옷에 짚신을 신으시고 작은 실개천 옆 풀밭에서 버들피리를 불며 소를 치는 모습이 수묵화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대중음악은 아니지만 이 노래에는 원조 가수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리 후대 사람이 노래를 잘 하고 편곡이 세련되어도 원조 가수의 감동을 넘을 순 없는 법이지요. 70년대 말과 80년대에 목원대학교를 다니셨던 분들은 당시 음대에 함께 봉직했던 작곡전공 나운영 교수님과 성악전공 이동범 교수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부디 그 분들과 함께 거닐었던 목동 교정을 자랑스러워하시기 바랍니다. 봉준호에게 송강호가 있듯이 작곡가 나운영의 페르소나는 테너 이동범이었습니다.

이곡은 제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노래는 성가곡을 넘어 한국 음악의 가장 위대한 명곡중 하나입니다. 77년에 녹음된 이 역사적인 음반은 나운영 선생님이 직접 지휘를 하시고 이동범 선생님이 솔로를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32년간 지휘자로 섬겼던 서울 성남교회 성가대와 작곡자의 따님이신 피아니스트 나효선 선생님이 반주를 맡았습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음반이지만 작곡가의 얼이 본인의 지휘를 통해서 그대로 살아 있고 테너 이동범 선생님의 영성 깊고 힘찬 노래는 이 녹음을 한국 음악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유산 중의 하나로 꼽는데 충분하고 남을 만한 이유가 되어줍니다.

https://youtu.be/IXmmv_D3d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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