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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2020)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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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9월 27일 (월) 23:55:57
최종편집 : 2021년 09월 28일 (화) 10:18:08 [조회수 : 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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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제목만 들었을 때 나는 이 영화가 문어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과의 추억을 다룬 학원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바다 속에 살고 있는 실제 문어에 관한 이야기였다. 문어가 선생님이라니, 뭔가 이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번 아웃된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번 아웃, 말 그대로 다 타버린 삶 속에 단 한 조각의 활력도 희망도 남아 있지 않은 한 사람은 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생채기만 남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린 시절 바닷가의 삶을 떠올린 그는 무작정 바다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사람은 운명의 문어를 만난다.

문어의 남은 1년간의 삶에 동행하면서 사람은 문어의 놀라운 면을 발견하고 심지어 문어와 교감하기 시작한다. 문어는 고양이나 개 정도의 높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라고 한다. 나아가 문어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 문어를 다이버이기도 한 영화감독 사람은 산소통이나 잠수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숨을 참으며 관찰하고 만난다. 장비에 기대지 않고 사람은 생물 대 생물로 온전히 문어와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마침내 문어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문어에게서 배웠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약함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배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람 역시 문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방문자가 아니라,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세계를 대상으로 보는 일에 익숙해있다.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연과 생물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좋다는 폭력으로 이해한 사람은 늘 자연을 대상으로 놓는 일에 익숙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이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가 아니던가. 다큐멘터리 형식의 길지 않은 영화 속에서 생물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 ‘creature’가 들릴 때마다 그것이 새로운 의미로 들리기 시작했다. creature, 창조된 것, 사람을 포한한 모든 생물은 모두 다 한 분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이다.

문어를 만나는 사람은 당연히 점점 더 문어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마침내 문어가 생을 마감했을 때의 일을 말하며 울먹이던 그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럼에도 그는 문어의 삶에 개입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이 점은 실로 놀라웠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그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는가. 그러나 문어를 만난 사람은 문어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언제나 거리를 유지한다. 심지어 문어가 천적인 상어에게 공격을 당할 때조차 그는 개입하지 않는다. 충분히 도와줄 수 있지만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무관심의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은 존중의 거리두기다. 이 존중의 거리두기는 그 긴 세월 동안 사람이 문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사람은 문어를 ‘그녀’(she)라고만 부른다. 이름을 붙여주는 것 역시 권력이다. 이름은 언제나 힘의 우위에 있는 쪽이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문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녀를 존중한다.

상어에게 물어뜯긴 문어의 한 다리가 다시 온전한 다리로 자라나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기적의 힐링. 그 놀라운 장면에서 어쩌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이 치유의 능력을 이미 심어 놓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은 저 문어처럼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새끼를 낳고 생을 마쳐가면서 이제껏 자신이 잡아먹던 작은 생물들에게 먹힘을 당하는 문어의 모습은 D. H. 로렌스의 짧은 시 <자기 연민>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자신을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보지 못했다. 얼어 죽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야생동물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는 심오한 자연의 섭리를 문어는 묵묵히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는 지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 부분의 상을 받았다. 상이 늘 영화의 질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만큼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림절까지 이르는 긴 성령강림절의 기간을 창조절로 나누어 지키는 교단과 교회들이 늘어간다. 하나님의 창조와 사람이 망가뜨린 세상을 성찰하는 창조절기에 이 문어 선생님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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