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가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태초 어둠속에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가 곧 신이었다.

신이 시간이 있으라 명하자

시간이 있었다.

신은 그 시간에게 생노병사를

관장하는 권한을 주었다.

또 신이 빛이 있으라 명하자

빛이 있었다.

신은 그 빛에게

희노애락을 관장하는

권하는 권한을 주었다.

신은 시간과 빛을 창조하신 후

세상을 바라보셨다.

 공평하고 조화로운 자신의 창조에 감동

신의 입안에서

'참으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스르르 터져나왔다.

오랫도안 우리집 정원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Japanese Plum Tree 가

한 그루 있다.

어제 아침  그 나무 아래 푸른 잔디 위에

샛노란 낙엽들이 딩굴고 있었다.

Japanese Plum Tree 에서 떨어져 내린

가을의 도래를 알리는 낙엽들이었다.

이른 봄, 얼어붙은 대지가 채 녹기 전에

새하얀 꽃으로 봄의 도래를 알리는

첫 계절의 전령사도 Japanese Plum Tree 다.

그런 탓으로 내가 유달리 아끼는 나무다.

일찍 온 자가 꼭 일찍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오는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

일찍 온 자가 늦게 갈 수도 있고,

늦게 온 자가 일찍 갈 수가 있다.

시간의 관용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오는 자는 반드시 가야한다.

시간의 공평성이다. 그것 또한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텃밭 호박나무 줄기에 수줍은 듯

잎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매달려 있는

꼬마 호박, 그 옆 오이나무 줄기에

짙푸른 위용을 뽑내며 달려있는 오이,

주위 큰 나뭇잎에 가리어 일조량 부족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술들만 무성한

옥수수 나무, 댁 위 화분에 뒤늦게 피어난

늦동이 보라색 도라지꽃,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고 있는 꽈배기 고추들...

그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떠남은 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

1945년 이집트 한 목동이

어두운 동굴속에서 발견, 세상 빛을 보게된 '누가복음' 에 예수와

제자들간에 나누었던 이런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 어느날에 죽은 자들의 휴식이

일어나고, 어느날에 새로운 세상이 옵니까?"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기다리는 것은 이미 왔다.

다만 너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깨어난 자의 눈에 보이는 세상,

깨어난 자의 귀에 들려오는 세상,

깨어난 자의 가슴으로 느끼는 세상은

항상 새롭고, 경이와 신비로 가득차 있다.

사소한 일, 큰 일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은 감사해야 할 일들 뿐이다.

08/24/2021 아침 메모

김사인을 시 '조용한 일' 을 읽고

버지니아 숲 속에서

박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