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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쓰리게 하는 장마!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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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9월 02일 (목) 00:36:21 [조회수 : 3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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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이 갔다. 8월 중순부터 시작한 늦은 장마로 인해 여름은 소리소문 없이, 특별한 작별인사 없이 가버렸다. 보통 8월 23일의 처서를 맞으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며 ‘이제 여름이 가는구나! 곧 가을이 되겠군.’ 하는 느낌을 서서히 가졌다. 그리고 무더위로 비록 고생을 하였으나 그 열기로 인해 여름철 밥상을 풍요롭게 했던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고추, 깻잎, 콩, 양배추 등 작물들이 쑥쑥 크고 수확하는 재미를 갖게 한 것을 고마워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한번 내린 비는 아침 점심 저녁 시도때도 없이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우울한 하늘빛을 내었다. 

보통 비가 오는 날이면 농부의 분주했던 손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창 수확을 해야 하는 때에 비가 오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것이 아니다. 또한 추석을 앞두고 곡식이 익어가야 하는 때에 어쩌다 한번씩 내리는 것이라면 조금이나마 쉴 수 있겠으나 이렇게 줄기장창 내리는 비라면 오는 비에 원망이 실리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뜨거운 볕 아래서 익어가던 탐스러운 붉은 토마토와 고추는 몇 번 따고 말리다가 손을 멈췄다. 성장이 멈춘 고추와 토마토는 8월을 보낸 9월 첫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작물이 녹아내린다는 것은 하도 내린 비에 가지와 잎이 축 쳐져 썩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토마토는 익기를 거부하고 파란 열매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터진 상태로 계속 비를 맞으니 속이 썩고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고추도 마찬가지다. 반쯤 정도 익다가 거뭇거뭇 점들이 생겨나더니 그곳이 썩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그 무서운 탄저병이 찾아와 더 이상 고추 수확은 어렵다고 한다. 그대로 시름시름 앓다 고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다가 잠시 그칠 때 관행농업을 하는 농부들은 농약을 엄청나게 살포하여 고추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멀리 서서 쓰러져가는 고추와 토마토를 안타까워하며 그저 바라볼 뿐이다. 

뜨거웠던 여름 수확한 고추 몇 근은 사나흘 정도 태양 아래 바짝 말렸다. 진정한 태양초다. 고추의 달달한 향이 코끝에 닿을 때 기분이 좋았다. 올해 김장김치는 더 맛있게지 하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한두 번의 태양초 외에 이후 거둬들인 고추는 아직도 농막 속에서 땄던 그대로 생생하다. 말리다 비를 맞은 고추는 곰팡이가 슬기 시작하여 눈물을 머금고 풀밭에 버려졌다. 초창기에는 엄청 잘 자란 고추를 보며 신이 났다. 이 정도면 거의 30근의 고춧가루를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물론이거니와 이웃에 사시는 목사님과 소속교회에 n분의 1로 나눠줄 수 있다는 부푼 꿈이 있었다. 나눔의 기쁨을 누리려는 찰라, 장마는 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30근은 고사하고 지금 현재대로라면 10근도 채 얻지 못할 징조다. 

누군가 그랬다. 옛 사람들은 처서에 비가 오면 그해 창고 안 쌀가마가 천 석 줄어든다 했다고.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리고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거의 보름 가까이, 처서부터 시작한 장마가 가을의 첫 날 9월까지 내리는 지금, 나는 옛 어른들의 말을 깨닫는다. 경험과 연륜으로부터 나온 명언이었다.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깨달음 속에 오늘도 고추와 토마토를 바라보며 쓰린 가슴을 쓰다듬는다. 그렇다고 농부가 하늘을 원망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농부는 그저 하늘이 내려주는대로 묵묵히 받아들인다. 하늘의 이치는 알 듯 하다가도 모르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도 그렇다. 비록 고추와 토마토가 속절없이 쓰러져가고 있지만 과히 애쓰지 않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음은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래도 마음은 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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