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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찬양문화현상에 대하여찬양사역자에게 고함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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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29일 (일) 10:56:49
최종편집 : 2021년 09월 03일 (금) 19:06:49 [조회수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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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사역자에게 고함

기독교의 사역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설교와 찬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과 예배의 중추적인 부분을 담당하기에 그렇습니다. 설교 역시 시대와 환경에 의해서 설교의 컨셉이 변화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찬양 역시 그렇습니다. 시대의 트랜드가 변하고, 아무리 신앙인이라도 대중문화의 트랜드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 찬양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부르기 쉽고 반복적인 멜로디로 기억하기 쉬우면서도 빠른 템포의 복음성가가 많았다면 지금은 서정적인 찬양이 많은 것 같습니다. 멜로디 또한 기억하기가 어렵고 리듬 또한 재즈적인 리듬이 많아서 중장년층, 노년층들의 성도들은 따라 부르기가 어려운 찬양이 많습니다. 가사가 없다면 발라드나 대중가요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찬양을 따라 부르기가 어렵다고 하면 그냥 가사만 보고 있으라고도 합니다.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에서는 전 세대가 공유된 사고와 문화가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핵가족화 된 시대에서는 세대 간 분리 현상이 뚜렷한 사회입니다. 부모 세대와 지식 세대는 한 가족이기는 하지만 사고와 문화적인 분화성과 이질성이 뚜렷합니다. 저마다 세대 간 분리된 집단사고와 문화가 뚜렷한 것 같습니다. 세대 간 사용하는 용어와 대화 언어도 뚜렷한 차이가 납니다. 특히나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마트 폰의 사용을 보면 더 뚜렷한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세대 간 이질감은 모양만 달리하지만 교회안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안의 복장만 봐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 신세대 여성도들의 옷차림을 보면 시선을 어디 둘지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보이는 옷은 물론이고, 아무리 덥다고 하지만 속살이 보이는 가벼운 옷, 팬티색깔이 비쳐지는 바지, 등짝이 환히 보이도록 디자인 한 옷 등 지나친 노출된 옷을 입어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고, 제지할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나 교회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되어 흘러가고 있는 추세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고착화 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예배 역시 순기능적 변화로는 대형스크린의 영상예배와 음향시스템의 기능을 잘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딱딱한 설교의 일방적인 메시지보다는 보조수단으로 시청각적 보조자료 영상을 보여 주면 설교 메시지가 더 은혜롭게 전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순기능적인 뒷면에는 역기능적으로 자칫하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수동적인 예배자로 전락되지는 않을 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찬양 밴드 역시 전문밴드 연주단처럼 전자악기로 드려지는 예배는 시대의 흐름이기에 수용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찬양연주의 콘티가 편향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어느 특정세대가 선호하는 찬양만 집중하게 되면 그에 해당되지 않는 세대의 성도들은 소외감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러한 찬양은 소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은혜 받으러 왔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갑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불려지는 예배 찬양을 보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나친 신곡(新曲) 편향적입니다. 가사에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의 교인들은 그러한 찬양을 따라 하기에 벅찹니다. 70대 이상의 노인 성도들은 그냥 멍하니 찬양사역자들의 기타 솜씨만 쳐다보고 물먹은 붕어처럼 입만 벙긋 벙긋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박수만 치고 있습니다.

찬양사역자들이 신곡위주를 선곡하는 것은 수요자들이 신세대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푸젼 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신 메뉴를 개발하듯이 새로운 찬양을 해야 세련된 찬양사역자로 인식하는 가 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나친 소비위주의 패션문화가 지배적입니다. 차량 모델도 매년 다르게 출시됩니다. 옷도, 신발도 패션화 되어 한 해, 한해 다르게 신상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에 기업들도 마케팅 전략으로 신 모델을 출시하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멀쩡한 차도, 옷도, 신발도 버리고 새로운 모델을 구매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우월감, 패션의 감각을 뽐내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드려지는 찬양 역시 그렇습니다. 무분별한 외국곡의 번역, 편곡된 찬양. 재즈적인, 발라드적인 찬양은 신세대에게는 환영받고, 열광할지 모르지만 기성세대 성도들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괭과리 소리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사는 분명히 복음적 가사인데 멜로디는 팝송인지? 대중가요인지? 구분이 안 간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생겨 난 건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만 반주 밴드 음악 역시 그렇습니다. 나이트클럽 밴드음악인지? 대중가요 밴드 음악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도 지나친 신디 음악과, 재즈적인 일렉기타의 소리와 현란한 드럼의 음향으로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칫 소음으로 가득 찬 찬양을 드리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들 때가 있습니다.

통성기도에 옆 사람의 기도소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끄러운 밴드 음악의 소리 때문에 기도가 집중 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 반주라는 컨셉이 아마도 80년대에는 피아노의 조용한 멜로디로 배경음악으로 깔아 준 것이 지금은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억지 밴드 음향으로 무당 푸닥거리하는 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는 신학적으로 검토 해 봐야겠습니다.

한국사회도 그렇지만 한국교회도 세대 간 이질감, 갈등적 요소는 내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세대 간 받아들이는 음악적 수용성, 문화적 컨셉이 달라서 순기능적, 역기능적 요소가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현대화, 재즈화되어 리듬도 복잡하고 멜로디도 따라하기 어려우며 가사도 지나치게 개인적 고백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찬양 콘티는 찬양사역자들의 음악적 개인 취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곡 위주의 찬양, 신세대들의 귀에 익숙한 찬양을 편향적으로 하는 사역자들이 있는가 하면 올드 성도들을 배려한 70-80 년대의 복음성가를 병행하여 부르는 찬양사역자들도 있습니다.

70년대 피아노 반주를 하고 교회음악에 대한 반주와 그러한 영향으로 몇 가지 악기연주를 즐겨하는 개인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찬양사역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금요성령 집회 같은 찬양시간에서는 어떤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은혜 받으러 왔다가 스트레스만 받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세대만 소화하고 따라 부르는 찬양을 하기에 그렇습니다. 나머지 기성세대 성도들은 그저 자리 수만 채우는 수동적인 관객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60-70-80 년대 복음성가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특정세대인 대학생. 청년부 예배에서 찬양하기 적합한 곡들을 온 세대가 다 참여하는 집회에 마구잡이로 찬양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세대가 공감하는 찬양을 골고루 선곡하여 찬양을 인도 한다면 모두가 은혜가 되는 찬양시간이 될 것입니다. 신세대 위주의 찬양으로 인해 은혜 받은 찬양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찬송가 공회에서 발행한 찬송가는 사라인지 오래입니다.

더욱이 공(公) 예배에서 조차도 찬송가는 아예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찬송가와 성경책은 그냥 형식적으로 들고 다니는 정도의 소품에 불과합니다. 성경 본문은 영상으로 보고, 찬양은 영상자막으로 보면 됩니다. 신세대 찬양이라 하더라도 반복적인 찬양은 귀어 익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회생활도 점점 신세대 위주의 편의공간이 늘어남에 따라 중장년층들의 공간은 불어 들어 불편 해 지고 있는 상황에 교회 역시 모른 양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찬양사역이 신세대 위주로 편성되어 있어 교회생활이 즐겁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공예배시에 찬송가를 불러 본지 오래 되었고 찬송가를 듣기 어려워지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주일 공예배서조차 화려한 전자악기를 동반한 찬양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 성도들의 예배환경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서 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세대로 천대를 받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귀에 익은 찬양을 부르고 싶어 합니다. 물론 신세대 마찬가지입니다. 허지만 세대 간 음악적 수용능력을 감안하여 골고루 선곡을 하는 지혜도 필요 할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의 예배회복을 하려면 찬양 회복도 중요한 몫입니다. 찬양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본질적인 고백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인간의 음악적 언어입니다. 그러한 음악적 언어가 세대 간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화적 현상입니다.

찬양사역자들은 전통적인 찬양을 무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찬송가, 복음성가를 통해 교회 음악이 회복되고 예배가 갱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통적인 찬송가나 복음성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찬양 음악으로 인식 되고 있는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안에서는 전통 찬송가와 복음성가가 부르기도 어려워지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원천 차단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찬송은 수백 년 동안 신앙의 맥을 이어온 찬송가입니다. 찬송가는 요즘 예배에서는 구시대적인 즉 올드한 교회 음악으로 치부되는 분위기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한 세대이전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며 드리는 찬양을 지금도 부르고 싶고 듣고 싶어 합니다.

우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찬양사역자들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앞선 두 분의 찬양 사역자들은 개인 음악적 취향에 따라 선곡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전 세대가 공감하는 찬양을 하였습니다. 잠시 동안 어떤 목사님의 찬양인도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기성세대 성도들의 귀에 익은 찬양선곡을 많이 하여 금요성령집회 자체가 은혜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교대로 찬양을 인도하는데 그분이 찬양을 인도 하게 되면 주위를 살펴보면 기성세대의 성도들의 얼굴에 빛이 나고 박수소리가 달라집니다.

교회안에서 부흥회나 교회 예배시간에 불려진 그 때의 은혜 향수가 현재화 되기 때문에 기쁨으로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올드한 찬양은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한 찬양이어서 은혜가 되어 좋고 신세대에게는 이러한 찬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사회에서 다시금 트로트가 각광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복고풍 트로트가 시대의 컨셉인 것처럼 한국교회도 복고풍 찬양이 다시금 많이 불러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그동안 무리없이 찬양을 잘 인도 하였습니다. 새로운 노래는 출처를 밝혀 찬양집을 구입하여 익혀 익숙하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얼마 전에 새로 담당한 찬양사역자입니다. 출처 불명의 새로운 찬양을 너무 많이 선곡해서 따라 하기가 벅찹니다.매 주 다른 선곡을 하는 것으로 보면 너무 의욕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선곡을 신곡 위주로 하고, 신세대 위주로 하는 같습니다. 영어 원어로 찬양하는 비중이 많습니다. 자막은 온통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찬양 사역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잘 압니다. 허지만 의욕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신앙적 정서와 찬양의 수용성의 정서를 무시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여러 세대의 눈높이 설정을 하여 균형적으로 선곡하는 것이 중요 한 것 같습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과 노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노인 요양병원에 가서도 위문공연이랍시고 신세대 자기들의 취향대로 노래하고 연주를 하게 되면 어르신들은 하품을 하고. 잠을 자고, 짜증을 내고 화기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노래를 하려면 집어치워하고 역정을 부리십니다. 당신들만 즐기지 말로 우리들 귀에 익숙한 노래를 불러 우리도 기쁘게 해야지 무슨 연주를 그렇게 하느냐? 하십니다. 다음에 봉사하러 오지 마라고 하십니다.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따라 선곡을 해서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합니다.

역시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모든 세대들이 아우를 수 있는 찬양이 어떤 곡이 적당한지 고민해서 선곡을 해야 합니다. 어떤 곡이 적합한가를 먼저 생각해서 전세대가 아우를 수 있는 찬양을 선곡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전성도가 참여 하는 집회에서는 찬양의 대상을 소수의 세대에게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음향과 밴드음악이 너무 시끄럽습니다. 특히 지나친 드럼소리에 귀가 멍멍해 질 때고 있습니다. 찬양의 선곡도 일정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신학적으로 건전한가? 설교메시지에 부합하는가? 경건한가? 온 세대가 부르기에 적합한가? 미리 세심한 검토를 하여야 합니다. 대학청년부들에게 적합한 찬양은 기성세대 성도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는 찬양이 될 수 있습니다.

찬양 사역자들이 자기 혼자 도취되어 찬양하는 것은 그리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찬양 사역자들은 악기를 잘 다루고 노래를 잘하기에 찬양사역자로 섬깁니다. 자신의 연주 실력과 노래로 뽐내는 듯한 자세는 지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콘서트 현장이지 예배로써의 찬양은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한국교회대로 예배의 전통과 복음성가의 정서적 패턴이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음악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무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찬양 사역자들이 교회음악의 신곡위주, 청년세대 위주, 그리고 외국 곡 번역한 곡을 찬양 한다면 기성세대 성도들에게는 영적 스트레스로 작용을 합니다. 한국인들의 정서적 토착화된 찬양 선곡도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악찬양도 많은데 아직 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신세대가 아무리 햄버거, 피자가 좋아도 기성세대에게는 입맛이 맞지 않습니다. 60-80 년을 먹어온 한식, 비빔밥, 된장찌개, 콩나물국이 입맛에 맞습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찬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금방 시집온 새색시가 자신의 식성을 기준으로 아침마다 샌드위치와 우유를 시부모님에 매일 드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점심은 피자로, 저녁에는 스파게티나 스테이크를 저녁식사로 드린다면 일주일도 안 되어 못 먹겠다고 콩나물 국, 김치찌개, 된장찌개 밥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70년대 청소년 시절. 80년대 청년시절 부흥회에 드려졌던 찬양곡집들은 아득한 고전(古典)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을 편식이라 합니다. 편식은 영양의 불균형으로 신체의 질병을 초래 하듯이 찬양의 편식은 영적 질병을 초래할 지도 모릅니다. 찬양의 흥미를 잃어버리면 예배참석이 싫어집니다. 차라리 유튜브 방송설교를 듣는게 낫습니다. 기성세대에 속한 성도들은 교회서 조차도 소외된 느낌입니다. 신 구세대 모두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찬양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신세대 위주의 사역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성도들은 코로나 19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교회서 조차도 천대를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제반 문제점을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관심과 각성을 바랍니다. 대형교회의 찬양사역의 방향과 목회시스템은 한국교회 전체 찬양사역의 방향과 시스템을 바꿀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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