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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 입추를 맞으며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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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11일 (수) 23:22:00 [조회수 : 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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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점차 식어가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태양은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밤까지 그 열기를 내뿜느라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듯 했다. 잠못 이루는 밤, 자다가도 열 두 번 일어나 부채질을 했던 여름날의 몸짓은 이제 조금씩 익숙해질 듯 하다가 사그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에어컨 없이는 못살 듯 굴다가도, 선풍기 바람에 의지하여 온종일 하루를 벼텼던 시간들도 더위가 정점에 이르고나서 차차 수그러질 기세다. 어인 일일까?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뜨거운 열기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던 한여름의 심술은 그 사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 지난주 토요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를 맞았다. 한여름 속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 가을의 시작이라는 절기는 하루 아침에 숨막히는 폭염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었다. 물론 해가 뜨고 오전 9시부터 저녁 해가 기울기까지는 뜨거운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바로 며칠 전까지 “아이고, 더워라. 언제 이 더위가 사라지려나?”를 외쳤던 푸념은 덜하게 되었다. 오히려 “어? 언제 더위가 가셨나?” 하며 의아해하고 있다. 그리고 엊그제는 말복이었다. 게다가 그 사이 세찬 빗줄기가 하루 종일 지면을 적셨다. 입추부터 말복, 거센 비는 일타쌍피가 아니라 일타삼피로 더위를 한번에 주눅들게 해주는 요인이 되었다. 그 덕에 지금은 선풍기는 고사하고 얇은 이불까지 꺼내 덮은 웃지못할 일이 생겼다. 절기가 이렇게 영향력이 있을줄이야. 

으레 있는 일이지만, 혼자 있으면서 먹는 것이 부실하다. 딴에는 잘 챙겨먹으려고 하지만 종종 귀찮아서 대충 먹는 일이 잦다. 그러던 것이 말복을 앞두고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왔다. 몸이 허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딱 알게 되었다.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긴 했지만 금방 생기가 돌아왔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정신까지 헤롱헤롱해지는 것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무엇인가 먹어야 할텐데 내 스스로 무언가 차려서 먹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허기진 몸을 일으킬만한 음식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내 몸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처음에는 고기를 먹으려고 했으나 몇 점 먹고 배부르다 할 것이니 포기하고 그에 준한 음식을 찾아 시장을 나갔다. 

코로나로 인해 읍내는 사람 왕래가 별로 없었다. 번화가인 시장 쪽으로 차를 돌렸으나 그곳도 썰렁했다. 내가 가고자 한 순댓국 식당은 코로나 이후 장사를 접은 것 같다. 갈때마다 문을 닫아놓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간 눈으로만 보았던 곳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어서옵쇼 하고 맞았다. 정면으로 맞으니 시원하다 못해 추웠다. 주인 아주머니가 바람이 덜 닿는 곳으로 안내하여 그곳에 앉았지만 그래도 추웠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만약 며칠 전이었더라면 이 바람이 호강스러웠을텐데 그 사이 내 마음이 바뀐 것이다. 뜨끈한 순댓국을 시켰다. 순댓국이 나오기 전에 양념장을 만들어 놓고 허한 몸을 보신할 순댓국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주인이 가지고 나온 순댓국이 나오자마자 마치 몇날 굶은 사람처럼 뜨거운 국물부터 후루룩, 그런 다음 갖가지 내용물들을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잘게 다진 청양고추도 한사발 넣었으니 매운 기운이 국물과 함께 온 몸을 정화시켜주는 듯 뜨거운 열이 마구 발산되었다. 매운 혀를 달래려 하얀 밥을 한웅큼 떠서 넣어 진정시켰다. 그렇게 허겁지겁 야무지게 먹고 나니 점차 기운이 샘솟듯 하였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웬지 쓸쓸했다. 그동안 풀 잡는다고 힘썼던 일, 콩밭 매느라 고생했던 일, 들깨 참깨 솎느라 땀흘렸던 농사일로 축났던 몸이 주인이 챙겨주지 않으니 말복을 맞아 스스로 저항을 하며 부르짖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몸을 아껴라. 몸을 챙겨라. 여름날 삼복 더위 중 한 날은 보신해야 하지 않느냐 하면서. 그 몸부림 덕분에 뜨거운 여름날 고생했던 스스로를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가을의 시작은 밭의 작물들을 들여다 볼 때가 더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여물어갈 준비를 하는 콩과 들깨와 벼, 한창 수확 중에 있는 고추와 참깨, 그리고 김장을 위한 작물들인 배추와 무, 쪽파 등을 심어야 할 때이다.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고 아침저녁 찬바람으로 들과 산의 열매들은 조금씩 더 굵고 단단하게 영글어가고 있다. 그 선물이 이제 한 달 후면 다가올 추석에 우리의 밥상에 올라갈 것이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름, 가을의 시작하는 지금, 나도 밭에서 수확을 기다리는 참깨와 고추를 살피러 바삐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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