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시간>, 권경애 지음, 천년의 상상, 2021

‘조국흑서’로 알려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천년의 상상, 2021)의 공저자이기도 한 저자는 󰡔조국의 시간󰡕에 맞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사법 개혁이 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인지를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출간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인 저자는 2019년 “조국 사태로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의구심과 배신감을 지나 공포와 분노 그리고 환멸에 이르게” 되어 진보 진영의 내부고발자로 나섰다. 그는 “승자의 거짓 기록이 역사가 되게 할 수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사학도인 평자가 이 책을 주목한 것은 󰡔조국의 시간󰡕에 대한 반박 때문이라기보다는 “합법을 가장해 독재정권의 길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심리적 결속과 권력적 열정을 파시즘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하는 일이 가장 비슷한 직업은 율사(律士)와 기자(記者)다. 증거에 근거해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규명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율사와 기자는 역사가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건에 대한 평가에만 그치지 않고 의혹을 제기하고 관련자를 고발하거나 범법자를 처벌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역사가보다 그 책임이 더 막중해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본인의 SNS 문자를 비롯해 관련자들의 진술, 언론의 보도, 법원의 판결을 토대로,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와 재판, 김학의 관련 사건 등 지난 2년 동안 검찰 개혁 추진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한다. 사건의 흐름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려져 있고, 저자가 새로이 보태거나 바로 잡은 것이 거의 없어서 내용상 주목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평자가 역사가로서 기록을 대할 때, 제일 먼저 파악하는 사항은 바로 저자에 관한 것이다.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그 진술의 진의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9년 9월 7일 페이스북에 조국이 물러나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대열에서 이탈해서 내부고발자가 되었다. 민변 소속으로 정권 핵심 인사들과 접촉할 기회가 있었던 저자는 자신이 몸담았던 진영의 사정을 소상히 알 수도 있었겠지만, 본인 스스로 언급한 ‘분노’와 ‘환멸’, 그리고 자신이 당했다고 느끼든, 자신이 했다고 느끼든 그 어떤 배신감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혼란 때문에 사안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평자가 그런 의심을 가질 만한 이유를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발견하게 되어 안타깝다. 

저자는 “󰡔문재인의 운명󰡕은 ‘마녀사냥과 오만한 수사로 인한 고통’은 풍부하게 서술했지만,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 박연차 회장의 범죄 사실은 기술하지 않는다. 그들과 … 노건평, 권양숙 여사의 관계도 혐의사실도 기술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면서 편파적인 서술로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저자 자신도 그러한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저자는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을 언급하면서, 검찰이 “헌법의 대원칙”을 준수하느라, 공소시효 때문에 피의자를 처벌할 수 없었다고 두둔하면서, 검찰이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을 김학의로 특정할 수 없어서 불기소처분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법령을 잘못 적용하여 김학의를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는 바람에 증거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이 법령을 잘못 적용하였다면, 검찰은 불기소처분을 내릴 것이 아니라, 수사 지휘를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는가! 

저자는 여러 대목에서 자신의 SNS 댓글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 반면, 다른 대목에서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사실상” 등의 수식어를 넣어 제시된 논거를 다르게 해석하거나(22쪽), 맥락이 닿지 않게 진술을 재해석하거나(31쪽), 기억에 의존해서 추측하거나(42쪽), 주관적 판단과 평가(150쪽), 상식적인 추론을 빙자해서 막연하게 짐작하는 방식(84, 165쪽)으로 서술한다. 편파적인 서술은 문재인 정부와 파시즘의 유비(類比)에서 절정에 이른다. 저자에 따르면, 노무현 트라우마가 ‘빠시즘’화(化)의 토양이 되었고, 유시민은 괴벨스와 같은 선전선동가이고, 나치 돌격대의 물리적 폭력은 ‘대깨문’의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졌다. 검찰 개혁안은 히틀러의 수권법에 비견되는데, 검찰 개혁의 계기가 된 김학의 사건은 독일의사당 방화사건처럼 정치적 명분을 제공했고, 공수처는 게슈타포와 같은 동형 조직의 예이다. 한마디로 2019~2020년 서울은 “1933년 독일 베를린의 살아 움직이는 미니어처”와 같다. 어이가 없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의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 수사 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세미나 동영상 속 여성이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인지를 놓고 유력한 증인이 진술을 번복했다. 증인은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 처음에 동영상을 보자마자 ‘저건 조씨다’라고 말했지만, 검사의 유도신문에 가까운 추가 질문에 조민을 ‘그 자리에서 봤다는 기억이 없다.’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증언의 전 과정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고, 검사의 추가 질문 끝에 나온 희석된 진술들만 증거로 제출했고, 증인의 애초 진술을 변호인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툭하면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객관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의심이 간다. 변호사인 저자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왜 제기되었는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할 정도로, 재심 전문 변호사가 생길 정도로, 그동안 검찰의 수사권 및 기소권 행사에 문제가 많았고, 그 때문에 많은 시민이 고초를 겪고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묻자.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