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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가 전하는 구원과 회복의 언약” 스가랴 8장 1절~23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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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09일 (월) 15:34:12
최종편집 : 2021년 08월 09일 (월) 15:35:26 [조회수 :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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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가 전하는 구원과 회복의 언약” 스가랴 8장 1절~23절

 

1. 만군의 여호와(The LORD Almighty)

 

① (1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 ‘만군의 여호와’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만군의 여호와’는 하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호칭이다. 만군(萬軍)은 문자적으로 수많은 군대(천군과 천사)라는 의미를 넘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통치하시는 주권자인 만왕의 왕(king of King), 온 세상 모든 만물을 결정하시는 주재자인 만유의 주(all the host)라는 뜻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물의 주관자’,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다스리시는 ‘역사의 주관자’,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삶의 주관자’시다. 돈이 다스리는 물질만능의 세상과 대조된다. 공포와 불안의 왕관을 쓰고 전 세계를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코로나 대유행은 결코 삶의 주관자가 아니라는 선언이다. 예언의 서두에 만군의 여호와를 언급한 이유는 이 말씀이 스가랴의 개인적인 견해나 주장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친히 보증하시는 언약의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마치 진실이나 예언처럼 떠벌이는 거짓 선지자와 구별되는 권위다.

 

② (2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여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포로가 되었던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의 ‘질투와 분노’ 때문이다. ‘질투’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한결같은 열망이고 ‘분노’는 자기 백성을 향한 불타는 열정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질투와 분노하신 까닭은 ‘시온을 위하여, 그를 위하여’서다. 세상을 미워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사랑하셔서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나타내는 반어적 표현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매다. 막대기로 때리시고 지팡이로 어루만져서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③ (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 스가랴 8장의 예언은 회복의 언약이다.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잃어버린 지위를 복권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회복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 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 하나님이 멸망시킨 게 아니고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자멸한 것이다.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본문에서 회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인 성전 재건을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회복은 우리의 회개로 당연하게 받는 인간적인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정한 회개는 죄 값을 기꺼이 치르는 것뿐이지 죄 값을 치렀으니 적반하장으로 회복시켜 달라는 건 회개가 아닌 거래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지 결코 가해자가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까닭이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눅 15:21~22)” 우리는 다만 회개할 뿐, 회복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다.

 

 

2. 회복, 스가랴가 전하는 구원

 

① (4절~6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구원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어떤 신학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성경이 전하는 구원은 분명하다. 구원은 회복이다. 스가랴는 구원의 구체적인 모습을 세 가지로 전한다. (메시지성경) ‘만군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노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거리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지팡이를 짚고 안전하게 나들이 할 것이다. 노인들이 살기 좋은 도성이 될 것이다. 도성의 광장은 웃고 떠들며 뛰노는 아이들로 가득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기 좋은 도성이 될 것이다’ 노후에 대한 불안, 자녀 양육의 어려움으로 출산율이 급감하는 소위 헬조선의 현실과 대비된다. 진정한 선진국은 재벌이나 부자들이 살기 좋은 경제대국이 아니라 노인이나 어린이와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이 살기 좋은 복지국가다.

 

② (7절~8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메시지성경) ‘만군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내가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에서 내 백성을 거둬들일 것이다.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 곁을 지키고, 옳은 길로 인도할 것이다’ 출애굽기가 전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베푸시는 것이다. 구원은 욕심에 이끌려 살던 탐욕의 노예에서, 말씀에 이끌려 사는 거룩한 백성으로의 ‘삶의 방식’의 변화다.

 

③ (9절~13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그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다. 언약을 준수하면 저주 받은 땅이 축복의 땅으로 변화된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삶의 축복이 나온다. 창세기는 아담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았고 요셉의 순종으로 비록 애굽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다는 사실을 증거 한다. ‘이 때에 듣는 너희는...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언약을 성취하는 이들에게 성전을 완공할 때까지 흔들림 없이 맡겨진 사명을 완수할 것을 요청하신다.

 

 

3. 구원과 회복을 위한 조건

 

① (14절~17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메시지성경) ‘너희 조상들이 나를 노하게 했을 때 나는 너희를 벌주기로 작정했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나는 예루살렘과 유다 나라에 복을 주기로 작정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결심과 의지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하나님께 구원 받은 자로서 은혜에 합당한 삶을 요구하신다. (메시지성경) ‘두려워하지 마라. 진실만을 말하여라. 개인적인 일에서나 법정에서나 옳은 일을 행하여라. 술수를 부려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마라. 거짓된 일이나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나는 그런 것들을 미워한다. 너희는 순전하고 정직하게 살아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원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구원 받은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맺는 삶의 열매다.

 

② (18절~19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 하나님의 구원은 삶의 변화다. 애통의 날을 축제의 날로 바꾸신다. 재대신 화관을, 슬픔대신 기쁨을, 근심대신 찬송으로 바꾸신다. 염려에서 기도로, 불평에서 감사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하게 하신다. 구원받은 백성에게 합당한 삶은 거짓과 다툼을 버리고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화평은 이웃과의 관계다.

 

③ (20절~23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 (메시지성경) ‘만군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리라 그들이 서로 의논하며 말할 것이다. 이 일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일에 우리도 동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군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망설일 이유가 무엇인가? 가자! 많은 민족과 힘 있는 나라들이 만군의 하나님이 주는 복을 얻고자 예루살렘에 몰려들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 때에 서로 언어가 다른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소매를 붙들고 말할 것이다. 우리도 당신과 같이 가게 해주시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말을 우리가 들었다오’ 하나님께서 치유와 회복을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원의 최종적인 목적은 치유와 회복으로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변화된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축복의 본보기가 되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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