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내린 몇 번의 비 사이로 세상은 온통 짙은 녹음이 파도를 치고 있다. 산이야 푸르고 푸르면 그보다 더 좋을리 만무하지만 이랑 사이로 빼곡이 자란 푸르름은 어찌해야 할지 눈을 들어 바라볼 때마다 두 주먹이 불끈한다. 또 며칠 동안 습도가 높은 뙤약볕은 마당에 나서기만 해도 비오듯 내리는 땀이 얼굴부터 발끝까지 도배를 한다. 땀 냄새와 끈적거림이 범벅이 된 몸으로 밭에 나서면 그때부터는 모기와의 사투다. 

싸울 것도 참 많다. 땀과 싸우고, 풀과 싸우고, 모기들과 싸우는 연속이다. 세 가지 모두 끈질김과 집요함이 대단하다. 흐르는 땀은 닦아도 닦아도 흐른다. 우리 몸의 수분 함량이 70퍼센트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서너 고랑 올라갔다 내려오면 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그래도 아직 휘청거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가보다. 땀을 많이 흘린 덕분에 피부 하나는 맑고 깨끗하다. 주근깨는 더없이 늘어가고 있지만.

풀은 하루 서너 이랑 베고 난 뒤 삼일 후면 새 풀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정말 삼일 만의 부활이다. 어찌나 잘 자라던지 어떤 골은 콩이나 들깨보다 한 뼘 더 자라 있다. 6월 초에 콩을 심고 난 뒤 거의 세 번 정도 낫질을 했는데 한바퀴 돌고 오면 다시 새롭게 낫질을 시작해야 한다. 무한 반복 극한 작업이다. 그나마 제법 자란 참깨는 참깨 이랑 사이로 풀들이 자라고 있지만 이제는 참깨가 풀을 이기고 있어 조금은 위안이다. 한번만 더 베어주면 그곳은 풀로부터 한시름 벗어날 수 있을거 같다. 콩은 10월 경에 수확하기 때문에 그 전에 부직포를 빨리 깔아야 한다. 김을 매고 순지르기를 해야 콩알이 더 굵고 더 많이 맺힌다고 한다. 지난 번 말한 아랫마을의 콩밭은 제초제를 잘(?) 뿌려 놓아 풀 한포기 나지 않는다. 농사를 잘 짓는 것은 인정하나 생명 한포기 나지 않는 땅을 생각하면 결코 따라가고 싶은 농법은 아니다. 그래서 매년 풀과는 질기고도 질긴 인연으로 살아간다. 

모기는 오후 해가 떨어지면 나타난다. 풀숲 사이에 숨어있다가 내가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까꿍하고 놀래킨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아래 밭보다 윗밭에 더 많이 서식한다. 고무신이나 양말을 신지 않고 밭에 들어가는 날이면 모기들에게 둘러싸이는 형세가 영락없이 사면초가다. 얼굴 앞에서 윙윙, 목 뒤를 공격당하고, 팔과 엉덩이와 다리는 언제 물렸는지 모를 정도다. 샤워를 마치고 선풍기 앞에 앉으면 그때부터 긁적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가 날마다 나타난다. 어떤 날은 김을 매는데 손이 닿지 않는 등이 따끔거렸다. 발가락과 손가락 사이는 모기가 물리면 연고를 발라도 시원찮고 벅벅 긁어도 계속 가렵다. 그런 것처럼 손이 닿지 않는 등을 쏘일때는 정말 난감하다. 등이 쏘인 날은 모기보다 큰 벌이 와서 공격을 한 것이었다. 풀숲에 서식하는 벌을 잘못 건드렸는데 계속 내 주위를 맴돌다가 내가 등을 보이는 허점을 노려 쏜 것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병원에 갈만도 한데 나는 일년에 한 번씩 벌에 쏘이다보니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공짜로 벌침을 맞는다고 생각하며 넘기는 것이다. 풀이나 벌레 알레르기가 없어서 망정이지 이런 것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은 온 몸이 퉁퉁 부어 엠블런스에 실려가기도 한다. 이웃에 사는 애기 엄마가 그랬다. 이태 전, 집 앞 소나무에 사는 벌에 쏘였다가 구급차에 실려가고 며칠 입원하고 몇 주 약을 먹고 지냈다. 온 몸이 부어오르는 것이 풍선과 같이 보였다. 그만큼 위험한 사람도 있으니 조심할 자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땀과 풀과 모기와의 사투! 8월 중순인 처서까지 한 달만 버티면 된다. 그때까지 조심스러운 밭 행보를 이어가면 어느덧 한 해 여름도 한 풀 꺽일 것이고, 끈질김과 집요한 땀과 풀과 모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다. 당분간은 이어질 폭염일테니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모두 조심하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