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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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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13일 (화) 00:15:53
최종편집 : 2021년 07월 13일 (화) 00:22:17 [조회수 : 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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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Judas and the Black Messiah, 2021)

 

공간과 언어가 다른 타국의 예술을 경험할 때 얻는 유익은 단순히 미학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다른 나라로부터 발원된 예술을 향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도 새롭게 얻을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것을 기준 삼아 내가 속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또한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게도 된다. 그렇게 새롭게 배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는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면서 내가 속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풍요롭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미국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고 지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갈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유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새롭게 배우게 될 역사적 인물은 1969년 12월 4일 새벽 시카고의 한 아파트에서 공권력에 의해 살해된 흑표당(黑豹黨, Black Panther Party)의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Fred Hampton)이다. 흔히 흑인 인권 투쟁을 위한 무장단체로만 알려져 있는 흑표당은 단순한 폭력적 무장단체가 아니라 흑인대중들의 삶을 계몽하고 무료 아동 급식 프로그램 등을 통해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던 단체이기도 했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사회주의적 사상과 조치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이들을 닉슨 대통령의 미국정부는 국가안보의 최대 위협요소로 간주했고, FBI는 에드가 후버 국장의 지휘 아래 흑표당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였던 프레드 햄프턴을 공작을 통해 살해했다. 흑표당이 시도했던 시민들을 위한 모든 프로그램들을 희석시키고 언론을 통해 그들의 폭력성만을 강조했던 것도 모두 FBI의 공작에 기인한 것이었다.

영화의 제목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프레드 햄프턴이 구체적으로 어떤 공작을 통해 살해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FBI는 FBI를 사칭하여 차량을 절도한 흑인 윌리엄 오닐을 붙잡고 석방을 미끼로 그를 햄프턴의 곁으로 잠입시킨다. 그렇게 윌리엄 오닐은 블랙 메시아를 배신한 유다가 된다. 영화의 제목이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영화는 내내 오닐의 시선을 통해 프레드 햄프턴을 바라본다. 치명적인 배신이 단순하게 신변의 안전이나 돈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은 대개 인간의 복잡성을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파악하려는 지성의 게으름에 기인한다. 예수를 배신했던 가룟 유다에게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을 것처럼 오닐에게도 스스로를 위한 이유와 명분은 있었을 것이다. 암살이 벌어지고 난 후 FBI의 도움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살아가던 오닐은 극적이게도 한 TV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진실을 전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인터뷰가 방영되는 날 오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치 유다처럼. 명분은 허약했던 것이다.

영화를 통하여 우리는 프레드 햄프턴의 탁월한 면모를 발견한다. 인종 집단별로 나뉜 갱 조직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이질적 인종 간의 연대를 주장했다. 흑인의 해방을 위해 블랙 파워가 필요하듯 라틴계와 아시아계 주민 및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이라는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햄프턴은 복잡한 사상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말들은 소박하고 강렬하다. “우리는 불로 불에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로 불과 싸웁니다.” “인종차별주의로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대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흑인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로 자본주의와 싸울 것입니다.”

불에는 물로, 인종차별주의에는 연대로, 자본주의에는 사회주의로. 이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나머지 모두를 포괄하는 첫 번째 말이다. 불에는 불로 맞설 것이 아니라 물로 맞서야 한다는 것. 이 말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셨던 예수님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 26:52) 그러니 우리가 그토록 자주 대응의 방책으로 사용하는 ‘맞불’이란 얼마나 부적절한 것일 수 있을까? 불에는 물로. 이 교훈은 단지 운동에서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있어 의미 있는 지혜처럼 들린다.

FBI의 국장은 햄프턴을 위험인물로 지목하며 약간은 조롱의 의미를 담아 ‘블랙 메시아’라 부른다. 하지만 햄프턴은 갈라진 마음들을 모으려고 했고, 어떻게든 연대를 형성하려고 했으며, 폭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과연 그 시대의 메시아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스스로 깨달은 지혜를 실천하다 세상을 떠난 햄프턴이 살해되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스물한 살이었다.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지혜와 통찰은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당연한 부끄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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