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아이작 B. 싱어 지음, 황명걸 옮김, 두레, 1999

  1978년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인 아이작 B. 싱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세상에 주는 선물이다. 그의 작품이력은 독특하다. 폴란드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유대인 작가인 그는 A.D. 10세기경 이후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사용되다가 이제는 이미 사어(死語)가 된 이디시어로 작품을 써내려갔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유대인 전통에 머물러 있고(그래서 유대의 각종 절기들이 거의 매 작품에 등장한다), 바보들, 악마들, 도깨비들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여 동화적 요소를 갖고 있어 재미와 함께 인간의 본질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전해준다. 

  글을 옮긴 황명걸은 이 책이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아이가 되고 싶어 하는 어른들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 확신은 아이작 B. 싱어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을 쓰면서 늘 염두에 두었던 것은, 어른을 위한 이야기와 아이를 위한 이야기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과 도깨비, 악마들, 바보들이 어우러져 모두를 품에 안고 그들 하나 하나를 매개로 인간의 본질을 별다른 기교 없이, 단순하면서도 거침없이 풀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늘 진리의 언저리에 우리를 안내한다. 

  <행복한 바보들이 사는 마을, 켈름> 이 책 안에는 총 22가지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 같이 위트가 넘치고, 풍자와 해학이 깃들어 있다. 

  김민웅 교수의 <동화독법>을 통해 만난 적이 있는 ‘바보들의 나라 켈름’ 이야기는 이 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 그래서 싱어의 사상이 잘 담겨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위 스스로 똑똑하다하는 이들이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지, 스스로 바보라 생각한 이가 사실은 세상을 바꾸는 똑똑이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켈름의 일곱 현자들이 보이는 행태는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그 모습은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소위 사람들을 이끈다 하는 이들의 허상을 꼬집고,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 진정한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가 하고 우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어 나오는 짤막한 단편동화들 속에서도 이야기 보물이 가득 담겨 있다. 그중에 마지막으로 소개된 ‘이야기꾼 납달리와 그의 말 수스’의 이야기는 싱어의 꿈이 오롯이 담겨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바보의 나라, 켈름’과 함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이야기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던 납달리는 커서 책장수가 되리라 마음을 먹는다. 그는 청년의 때가 되어 그의 꿈을 이루기 시작하는데, 마침 좋은 안내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책장수 제블룬 선생과의 만남인데, 그는 납달리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어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도록 견인해준다. 그는 청년 납달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루가 지나가면 그날은 더 이상 없는거야. 그날 뒤에 무엇이 남느냐. 이야기밖에 없지. 만일 이야기들이 없고 책들이 씌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그저 그날 그날을 짐승처럼 살게 될게야. ...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지만 내일이 되면 오늘은 이야기로 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인간 생활은 하나의 긴 이야기란다.”

  납달리는 이후 단순히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닌 동네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 살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책을 거저 주기도 하면서, 그의 꿈을 아이들과 나누게 된다. 그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세상은 놀라운 일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멀리멀리 퍼뜨리고 다닌다. 그는 점차 이야기꾼이 되어 간다.

  세월이 지나 노인이 되어서도 그의 일은 멈추지 않는데, 늘그막에 그는 좋은 도반을 만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마음 좋은 농장주 팔리크가 그의 노년의 삶에 함께 해주었다. 그 둘은 멋진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팔리크는 늙어 더 이상 책을 팔러, 이야기를 하러 다니기 힘들어진 납달리를 위해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오래된 떡갈나무 곁에 납달리의 집과 도서관, 인쇄소를 만들어준다. 아하! 이런 친구라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런 호의를 기쁨으로 받으며 응답하는 납달리의 대답은 “이제까지 내가 듣고 말한 모든 이야기들 가운데 나에게는 이 이야기가 제일 멋진 이야기가 될 거야”...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겨나고, 그 가운데 납달리와 팔라크의 이야기도 깊어진다. 

  작품의 말미에는 납달리가 평생 책을 팔고 이야기를 하러 다닐 때 그의 다리가 되어 주었던 말 수스와의 이별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는데, 세월에 장사가 없듯 기력이 쇠한 수스는 결국 죽고 만다. 납달리는 그 죽었던 자리에 무덤을 만들어 수스와 함께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손잡이가 떡갈나무로 되어 있는 채찍을 무덤 위에 꽂아 놓는데, 몇 주 뒤 거기서 싹이 나와 결국 수스의 몸 위에서 떡갈나무 한그루가 자라게 된다. 이제 그 나무에 새가 깃들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싱어는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렇다. 피조물은 모두 죽지만 세계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온 세상, 모든 붙박이별, 모든 떠돌이별은 모든 꼬리별은 자신들 속에서 한 가지 신의 역사, 한 가지 생명의 근원, 오직 하느님만이 온전히 아시는 한 가지 무한한 경이로운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후에 납달리도 수스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수스를 자양분 삼아 자란 떡갈나무 바로 옆에 뭍이게 된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남겨진다.

  “살아서 아름답고 즐거웠던 그들은 죽어서도 헤어지지 않았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 삭막하기 그지없는 시대에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얼마나 귀한가! 이야기가 있는 삶이 그립다. 자신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 책에 답이 있다.

이 혁 목사(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