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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떡이 커 보였나.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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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23일 (수) 22:04:27 [조회수 : 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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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읍내로 내려가는 길에 꽤 넓은 평수의 땅이 있다. 도로보다 1미터 정도 아래에 있지만 그곳은 매년 아래 마을에 사는 어느 농부의 손길이 닿는 곳이다. 그리고 밭 건너편에는 작은 논과 논보다 작은 밭이 있는데 그곳도 아래 마을의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혼자서 쉼없이 일구고 있다. 올해 그 두 밭에는 콩이 성인 엄지손가락 두 마디만큼 자라고 있다. 

매번, 하루에 열 번이 열 번 그 밭을 지날 때마다 생각한다. 이 밭을 경작하는 사람은 어쩌면 저렇게 농사를 잘 지을까? 부러움 가득한 나의 생각 속에는 나도 그렇게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증거다. 어떤 해는 고추를 심고, 어떤 해는 들깨를, 어떤 해는 참깨를 돌려짓기 하고, 또 어떤 해는 한 땅에 땅콩과 참깨와 고추를 삼분이 일씩 구분하여 다작을 하기도 하였는데 올해는 콩을 심은 것이다.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그 밭의 주인은 이른 새벽에 밭으로 출근하는 듯 싶다. 가끔 이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갈 때면 밭주인이 밭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곤 했다. 그다지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남자가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수고하고 애쓰니 작물이 잘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본다. 물론 흉작을 거칠 때가 있지만 그해에도 마지막까지 작물을 수확하고 비닐을 걷고 밭을 미리 갈아놓는 유비무환 자세는 두고두고 본받을 만한 모습이다. 그 사람에 비한다면 나는 순전히 날라리다. 

올 초 농사가 시작될 즈음, 그 밭은 삼월에 한 번 오월에 한 번 밭을 갈았다. 풀이 자라기 직전 밭을 갈고 오월에는 두둑과 비닐까지 깨끗이 만들어놓았다. 무엇을 심을지 궁금했었는데 유월 상순 어느 날, 어! 콩이네?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감탄사가 나온 것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규격으로 올곧게 두 개씩 올라온 콩이 초록 물결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작물은 밤사이 자란다는 말이 맞았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휑한 두둑이었는데 어느 날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머나! 굉장하다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 밭의 콩에 비한다면 내 밭의 콩은 오합지졸이라 할 수 있다. 땅이 거칠고 비탈밭이라 거의 초승달 비슷하게 만들어진 두둑에 구멍을 내어 심었는데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고 또 어떤 것은 이제 막 싹을 트기 시작했다. 그래도 거친 땅에서 생명을 움튼 것이 신기했다. 남의 밭의 콩에게도 그랬지만 내 밭의 콩이 처음 얼굴을 내밀 때 내 가슴이 마구 뛰고 설레었다. 설령 삐죽빼죽하는 오합지졸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저 심었을 뿐인데 그것을 키우는 분은 따로 있었으니 값없이 얻은 선물이 얼마나 크던가. 그리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팔이 안으로 굽는가 하던가. 잠시 남이 떡이 매우 커 보이긴 했어도 나는 내 밭에 자라는 콩에게 날마다 인사를 한다. 잘 자라주어 고맙다. 수확까지 서로의 임무를 다하자구나. 그리고 참 염치도 없이, 값없이 얻은 은혜가 무색하게 밤에는 얼마나 수확할 것인지, 콩값이 들어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몇 번의 성을 쌓다 잠이 들곤 한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벌써부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그렇다. 자만하는 순간 망하는 것이다. 농사는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법이다. 괜한 망상과 요행을 바랬다가는 본전도 뽑지 못하는 것이 농사다. -사족이긴 한데 물론 일반적으로 소농이나 가족농의 한 해 농사 수익(순수익이 아니다)은 평균 7-800만원 정도다. 진짜 본전도 못 뽑는 것이다. 그만큼 어렵고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농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우리의 밥상을 지키는 농민들이다. 하여 이 농민들의 삶, 특히 소농이나 가족농에게 꽃이 피어났으면 한다.- 그러니 헛된 꿈은 애초에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실 남이 떡이 더 커 보이는 것도 내 밭의 콩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콩들에게 조금 더 살피고 조금 더 말을 걸어주고 조금 더 발소리를 들려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떡은 커 보이나 먹지 못하는 것이니 괜한 생각을 했다. 이제 마음과 생각을 돌리자. 나의 밭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콩들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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