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은 게 사람이라서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쇼코의 미소’는 저자의 7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7편은 각각의 이야기지만, 동일하게 관계적 존재로서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에서 관계가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존재한다. 각각의 단편들은 다양한 관계들을 보여주면서, 사람이 경험하는 관계성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쇼코의 미소’는 한국인과 일본인, 할아버지와 손녀 사이의 관계, ‘씬자오 씬짜요’는 타지에서 만난 한국 가정과 외국인 가정 사이의 관계, 부부 관계,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혈연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삶을 나눈 언니와 동생의 관계, ‘한지와 영주’는 두 외국인 청년 간의 관계, ‘먼 곳에서 온 노래’는 동아리 선후배 간의 관계, ‘미카엘라’는 엄마와 딸, ‘비밀’은 할머니와 손녀다. 

저자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관계성의 역설을 경험한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갔기에 받게 될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평생을 함께 살아왔지만, 정작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이 있다. 누군가에겐 단점이지만 오히려 그 단점이 다른 누군가에겐 매력이 되는 신비함이 있다. 곁에 있고 싶지만, 상대를 위해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왜 그렇게 사냐고’ 화를 내면서도,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손을 내미는 애증도 있다. 상대방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내가 아는 것과 반대였음을 발견하면서 생기는 당혹감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유해야만 하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숨겨야만 하는 아픔도 있다.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오해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참 이해하기 쉽지 않은 관계의 단면들이다. 

그렇다.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은 존재다. 소설은 사람과 사람의 가까워지는 본연의 갈망과 서로를 밀어내려는 이해할 수 없는 갈망을 꾸밈없이 드러내주었다. 상대의 빛에 이끌리다가도 상대의 어둠 속에 놀라기도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어둠을 발견하기도 하는 등의 관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부분들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소설에 담겨진 역설적인 모습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 모습들은 내 안에도 있는 것들이어서 그랬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역설적인 모습들이 나의 내면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다 할 꾸밈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담백하게 그려내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가해한 모습들을 직면하게 했다. 그로 인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미소 짓게 만들고, 먹먹하게 만들고, 그리워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고, 아련하게 만들었고, 미안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고독한 존재다. 온전히 소통하고 싶지만, 참다운 소통에는 늘 한계가 따른다. 공감하고 싶지만, 내가 들어갈 수 없는 타인의 지점이 존재한다. 누구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더 가까이는 갈 수 없는 타인의 세계가 있다. 

영성의 본질을 초월성이다. 나를 벗어나 하나님과 타인의 세계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본연의 한계를 마주하다 보면, 초월은 갈망의 언어일 뿐이지 현실의 언어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왜 우리는 채울 수 없는 갈망, 해갈되지 않을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을까.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늘 서로의 곁을 맴돌며 살아간다. 서로를 향해 한숨을 쉬면서도 서로를 향해 갈증을 느낀다. 그 이유는 ‘우리를 향한 더 높은 존재의 영원한 부르심이 초월이라서’라고 믿고 싶다. 언젠가 은총 속에 이 모든 한계를 벗어던지는 날, 거짓말처럼 그 모든 갈망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그나마 이 땅에서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좁히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인 듯하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섣부른 판단이 아닌 주의 깊게 상대를 보고, 듣고, 마주하고, 있는 그래도 수용하는 것. 그것이 고독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끼리의 간격을 좀 더 좁힐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7편의 단편집이 그렇게 내게 말을 건넨 것 같다.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