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오리진(ORIGINS)>, 루이스 다트넬 저, 이충호 역, 흐름출판, 2020

빅히스토리란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과거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다루는 종합학문이자 융합학문이다. 천문학은 물론,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학문을 넘나들며 역사 전체를 하나의 지식으로 연결하여 조망하는 일종의 거대사(巨大史)라 할 수 있다.(https://www.sciencetimes.co.kr) 

빅히스토리는 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여 큰 틀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존재하지만 각각의 사건을 너무 좁은 관점에서 본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가져 볼만하여, 빅히스토리적으로 지구의 역사를 담은 책 오리진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구는 46억 년 전에 처음 생겼다. 그 당시 젊은 지구는 산소가 없으며 뜨겁고 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륙은 다 붙어있고 동물이라 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날의 지구와는 아주 달랐던 것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런 변화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생명의 역사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으며, 오리진은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는 24억 2000만 년 전 일어난 대산화(大酸化, Great Oxidation Event) 사건이다. 산소가 없었던 지구에 갑자기 많은 산소가 생긴 것이다. 생물이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 낸 것이다. 광합성 능력을 가진 세포를 남세균(藍細菌, cyanobacteria)이라 부르는데, 지구에 산소를 공급한 건 바로 남세균이다. 남세균이 원시 바다에서 헤엄치면서 광합성을 통해 배기가스처럼 산소를 내뿜었던 것이다. 

그런데 산소 농도가 증가하자 산소에 적응하지 못한 미생물은 없어지고 대신 산소에 적응할 수 있는 복잡한 생물이 출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더불어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철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철은 호상철광층(縞狀鐵鑛層, Banded Iron Formation)에 있다.  대산화 사건 이전에 철은 물에 잘 녹는 환원철로 물에만 존재하고 있었다. 산소의 등장 이후 바닷물이 위쪽의 얕은 대륙붕(大陸棚, continental shelf)으로 올라올 때마다 산소와 섞이면서 철이 산화되었다. 더 이상 물에 녹아 있을 수 없게 된 철은 해저에 쌓여 해저 호상철광층을 만들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철강석(鐵鑛石) 대부분은 호상철광층에서 나오는 것이다. 24억년  전에 일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명의 역사와 기운을 살펴볼 때, 우리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즉 인류의 탄생 일 것이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최초의 인류는 동 아프리카에 살았다. 동 아프리카에 살던 사피엔스는 이동을 시작했다. 6,600만 년 전 공룡을 사라지게 한 백악기 (白堊紀, Cretaceous period) 말 지구는 뜨겁고 습했었다. 숲이 무성했고 해수면은 현재보다 300 미터 이상 높아 지금의 대륙은 대부분 물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5,550만 년 전 최고온기(最高溫氣 Palaeocene-Eocene Thermal Maximum) 이후 지구는 냉각화 국면으로 전환한다. 냉각화로 동 아프리카의 숲이 줄면서 현생 인류의 조상 호미닌(hominins)은 이동을 시작했다.

약 6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각지로 흩어진 대이동은 인류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류는 국지적 기후변화에 따라 추위와 가뭄을 피해 따뜻하고 강수량이 더 많고 식량을 구하기가 더 좋은 곳을 찾아 오랜 세월을 걸쳐 서서히 이동해 갔다. 그리고 곳곳에서 문명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대 문명들은 판(板, plate)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게 된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육지 면적을 고려할 때 흥미롭고, 놀라운 상관관계가 있다. 지각(地殼, Mantle)의 균형이 초래하는 지진과 쓰나미, 화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다. 판들의 충돌이 높은 산맥을 만들었지만 한편 저지대도 만들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내려오는 인더스강과 겐지스강은 주변을 퇴적물로 기름진 토양을 만들었다. 하라파문명(Harappa civilization)은 인도판(Indian Plate)과 유라시아판(Eurasian Plate)의 충돌이 낳은 산물이다. 화산도 마찬가지다. 화산재로 인해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졌다. 판의 변형력은 암(岩)속에 균열을 만들거나 단층을 만드는데 이곳에 지하수가 솟는 샘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위험하지만 그만큼 판 경계에 사는 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유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판의 충돌이나 이동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기후와 그 기후가 만들어낸 지형은 오늘날까지 대륙과 국가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이다. 50만년 전 영국은 섬이 아니었다. 도보(Dover)와 칼레(Calais) 사이의 지역을 통해 물리적으로 프랑스와 연결된 채 여전히 유럽 대륙의 일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42만 5000년 전 빙기(氷期, Glacial Period)에 대홍수가 일어나 그 뒤 한 20만 년 전에 두 번째 홍수가 일어나는데 이때의 침식작용으로도 도보해협(Strait of Dover)이 만들어졌다. 

그 후 빙기가 끝나고 간빙기(間氷期, interglacial period)가 될 때마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은 상승해 이 통로는 영국해협이 되었고 이로써 영국은 유럽 대륙과 영원히 분리된 것이었다. 유럽 역사에서 영국 해협은 영국을 보호하는 천연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 덕분에 유럽 대륙에 계속된 전쟁 속에서도 거리를 둔 채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고 일찌감치 단일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해상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군을 구축하고 유지하면서 해외 식민지를 방어하고 상업적 이익까지 챙기게 됐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면, 미국에는 블랙벨트()라는 지역이 있다.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North Carolina), 조지아(Georgia), (Alabama) 등인데,  남북전쟁 이후 민주당의 텃밭 역할을 한다. 왜 그럴까? 이 역시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백악기 동안 미국 땅 중 상당 부분은 물 밑에 잠겨 있었는데 (Appalachian Mountains)이 융기하고 거기서 실려온 침식물이 해저에 점토층으로 퇴적되었다. 이 점토층이 바로 셰일(shale)층으로 변하고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육지가 되었다. 셰일 기반 토양은 어둡고 영양 물질이 풍부해 농사짓기 유리했다. 특히 목화재배에 유리했다. 노동 집약적인 목화재배에 노예들이 동원되었고, 1830년경부터 이곳에 노예제도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원래는 흙이 검어 블랙밸트로 불렸는데, 나중에는 흑인 노예가 많은 곳이란 뜻으로 변질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은 자유민들이 되었지만 계속 소작농으로 일했고 온갖 차별과 경제적 빈곤을 겪게 되었다. 이런 요인이 블랙밸트를 민주당에 몰표를 주는 파란색 띠가 선명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먼 옛날 바다에 쌓인 진흙층 띠가 지금도 미국의 정치 지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현재는 늘 과거에 연장선상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지리(地理)가 대표적이라는 생각이다. 미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래 또한 현재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늘 지구의 역사 지리의 영향 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편 루이스다트넬의 ‘오리진’는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유발하라리의 ‘호모사피엔스’와 함께, 우주, 지구, 인간을 빅히스토리적으로 역사를 풀어 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설계자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김종일(독성학 박사, 비앤에이치웍스(화장품 개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