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위로만 넘치는 사회 

<그냥, 사람>, 홍은전, 봄날의책, 2020

“그들이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83)

차별과 혐오가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차별’은 꽤 익숙하다. 친구를 차별하지 말라는 훈계를 익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인간이면 으레 지켜야 할 교훈인데, 유아기적 반항심리가 많이 작동했던 것 같다. 여러 이유를 들어, 때로는 이유를 만들어내며 친구를 못살게 굴기도, 또 당하기도 했다. 한편, ‘혐오’라는 낱말은 생경했다. 밉다, 싫다, 더럽다 등의 표현은 썼지만 ‘혐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본 경험은 최근이었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한 공론화가 반갑다.

홍은전 작가는 노들장애인야학에 몸을 담고 있는 장애해방운동가이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로 출간된, 선감학원피해생존자들의 증언기록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혐오와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글쟁이기도 하다. 그가 한겨레신문에 발표한 글들이 묶여 단행본이 되었는데, <그냥, 사람>이 그것이다. <그냥, 사람>은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저자의 탄원서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주관적인 견해인데, <그냥, 사람>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내 얄팍한 경험에 따르면, 책장을 넘기는 데 속도가 붙지 않는 책은 두 종류다. 하나는 철학적 사변과 추상적 개념으로 뒤범벅된 글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당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긴 증언집이다. <그냥, 사람>은 후자에 해당한다. 저자는 독자들의 양 어깨를 붙들며 세상의 아픈 부분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이끌었다. 이성복은 멱살을 잡아서라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걸 억지로 보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시인이라고 했는데, <그냥, 사람>의 저자 홍은전이 그러한 것 같다.

독재자가 치리하는 나라에 구조물품을 보내는 것은, 그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지탱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외부의 조력이 무용, 아니 상황을 더 악화시킬 때가 있다는 것. 한편,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기 가족을 부양하며 책임지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런 사적 복지가 공적인 복지체제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도 기억해봄직하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의 경우도 그렇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헌신 덕분에 당장 필요한 정서적인 돌봄은 받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고통은 100년이 지속된 것은 아닐까. 

“돌아갈 길이 부서져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151)가 있다.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102)

도시미화라는 명분으로 추방당하고 격리당한 이들,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숙명론자가 되기 십상인가 보다. 불우의 사고로 신혼의 큰언니 부부를 먼저 떠나보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분투하던 청춘들이 단숨에 죽어 사라졌는데 원망할 사람 하나 없었으므로 나는 그것이 두 사람의 운명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무고한 죽음을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43) 비슷한 맥락인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패배감과 무기력함이 담긴 한 문장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대목이었다. 

비극적인 인생들을 너무도 많이 목격해온 탓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213) 비굴한 발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료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깊이 공감할 것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