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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無言 李龍道 牧師 是非 有感옛 졸문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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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20일 (월) 00:00:00 [조회수 : 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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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문예 창간호(1994년 2월) 135-138쪽
제목 是無言 是非 有感 필자 이용섭


얼마 전 나는 기업가인 모 장로가 통일교에 깊이 연루되었다는 어느 목사의 한 문서 속에서 이용도 목사를 비방 매도하는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 글의 내용은 이용도 목사가 통일교의 핵심 교리인 피가름의 이론적, 실천적 원조이자 오입쟁이이며 그 타락된 주장과 행위의 결과로 황천대학 지옥과에 입학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시무언 이용도
그런데 내가 그 일로 인해서 받았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 개신교 교단 총회 산하 사이비 이단문제 연구 기관이 발행한 자료집에서도 위와 유사한 내용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서 몹시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나는 오랜 세월 이용도 목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상당한 연구를 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필연적인 결과로 이용도 목사를 존경하게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평신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꼭 이용도 목사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서를 집필하리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용도 목사는 나의 정신적 지주이다. 그래서 나는 이용도 목사의 호(號)인 시무언(是無言)을 그대로 내 호로 사용해 오고 있다. 지금 나는 이용도 목사에 대한 상세한 연구 논문을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교계에 내려 오고 있는 이용도 목사에 대한 왜곡된 견해와 시각을 다소나마 교정해 보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간단하게 에세이 식으로 몇 자 기술하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 기회에 이용도 목사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전문성을 갖춘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과연 이용도 목사 그는 누구였던가 ? 이단자였었나 광신적인 비윤리적 신비주의자였었나, 혹은 성적으로 철저하게 타락한 패륜아였었나, 또는 폭력혁명을 외치는 사회주의자였었나, 아니면, 기성교회의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무교회주의자였었나, 그것도 아니면 1930년대초 한국 개신교계의 진정한 성령운동가요 개혁자이며 예언자였던가 ?

요사이 한국 개신교의 일반적인 분위기나 추세는 이용도 목사를 경건한 도덕적 성령운동가요 진정한 개혁자며 권능있는 예언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그에 관한 연구논문과 서적도 방대하다. 만약 그가 거짓 예언자라면 그에 관한 연구물들이 그와 같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올 수 있겠는가 ? 그에게 긍정적 평가를 내린 학자나 연구가들이 모두 다 눈뜬 소경에 불과하겠는가 ?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보수 일각이 그를 통일교의 뿌리로 보고 있는 처사에 대해서 필자는 너무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용도 목사, 그는 암울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인 식민통치 시절 10대 말부터 20대 중반까지 독립운동 때문에 도합 네 차례 3년 이상을 형무소에서 보냈다. 이와 같이 그의 소명은 항일 민족주의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데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가 독립운동으로 인해서 감옥살이를 해 본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던가 ?

어떤 사람들은 이용도 목사의 교회에 이단적 요소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보는 격이다. 또한 오늘날 한국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동향은 그를 이단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특히 감리교단은 그를 일제하 감리교회의 3대 성좌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는 교리나 신조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이 교리나 신조를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시종일관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나 신조를 부정해 본 적이 없다. 그는 단지 교리나 신조가 교권과 교파와 제도만을 위해 봉사해서는 안된다고 고집하였을 뿐이었다.

이용도 목사, 그는 진실로 성적으로 철저하게 타락했던 탕아였던가 ? 사랑의 사도인 그는 1928년부터 1933년까지 폐결핵 3기의 그 힘든 몸을 이끌고 약 5년간 한국교회의 진실하고 권능있는 대부흥사로서 맹활약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감리교단의 목사였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잠시 생각해 보자. 도대체 폐결핵 3기의 중환자가 어떻게 난잡하고 문란한 외도를 수도 없이 범할 수 있었겠는가 ?

이용도 목사, 그는 정말로 마르크스와 레닌을 신봉하는 사회주의자였었나 ? 이것은 그에 대한 수많은 중상모략들 중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 서적들이나 불경 또는 심지어 창녀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는 분명히 말하였다. 과연 이 주장이 사회주의자의 주장인가 ? 오히려 1930년 초에 있었던 그의 부흥회에서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김광우라는 사람이 회심하였는데, 그는 후에 대한기독교감리회의 감독까지 되었다. 또한 얼마 전에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조차도 사회주의 이론에는 어느 정도의 진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사회주의자인가 ?

이용도 목사, 그는 기존의 교권, 제도, 조직 등을 무조건적으로 완전히 부인하는 무교회 주의자였었나 ? 그는 그 당시의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선생이 발간하던 '성서조선'을 사람들에게 추천 소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자가 바로 위에서 지적했던 것과 같은 차원의 경우이다. 그는 물론 비가시적 교회를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는 가시적 교회를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결코 않았다. 그리고 요사이 김교신 선생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과 재평가가 학계와 교계에서 긍정적으로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만인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

사람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사람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기록에도 오류나 착오 등이 존재할 수도 있다. 물론 존재할 수도 있다와 존재한다는 말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 속에 오류, 날조, 왜곡 등이 실제로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지금 필자의 사견에 지나지 않지만, 이용도 목사에 대한 한국 개신교계 일부의 부정적 태도와 시각은 바로 이와 같은 대표적인 예들 중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이용도 목사에 대한 일부 교회사가의 부정적 기록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것이며, 필자는 그것을 이 짧은 글 속에서 다소나마 밝혔다고 생각한다.

필자 주, 나는 고 이용도 목사님과 함께 활동하셨던 고 이호빈 목사님의 손자 이현우 신부(현 한국 성공회 사제)를 70년대 말이 아니면 80년대 초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고 이용도 목사님에 대한 약간의 귀중한 증언은 이현우 신부(당시 성공회 전도사)로부터 직접 들었다.

              시무언 이용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카페 소개   cafe.daum.net/simeon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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