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 이명학 지음, 김영사

한 달 전에 군산을 다녀왔다. 적산 가옥에 대한 이야기하다가 적산 가옥이 왜 적산 가옥인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적산(敵産)은 ‘적의 재산’, 혹은 ‘적들이 만든’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적들이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적산가옥 일본인이 놓고 간 집 정도로 이해 온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저학년 동안 한자를 배우다가 그 후 한글 전용시대를 맞이하였다. 또한 대학입시에는 한자를 시험에 포함시켜, 호(好)라는 한자를 쓰게 하는 문제를 풀었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음 중 한자(漢字)말이 몇 개나 되는지 살펴보자. <아침에 체조(體操)를 하고 세수(洗手)를 한 후(後) 기온(氣溫)을 보니 섭씨(攝氏) 12도(度)였다. 보온성(保溫性)이 좋은 양말(洋襪)과 양복(洋服)을 입고 배낭(背囊)을 매고 출근(出勤)길에 올랐다>. 세어 보면 무려 11개이다. 체조 세수 후 기온 섭씨 도 보온 양말 양복 배낭 출근이 그것이다.  

洋襪(양말) = 洋(바다 양) + 襪(버선 말) ⇒ 서양 버선
背囊(배낭) = 背(등 배) + 囊(주머니 낭) ⇒ 등에 메는 주머니

양말과 배낭을 왜일까? 양말은 바다 양(洋)과 버선을 뜻 하는 한자 말(襪)의 결합 어(語)이다. 즉 서양 버선이란 뜻이다.  배낭 역시 한자어이다. 등을 뜻하는 배(背)와 주머니 낭(囊)이 합쳐진 말이다. 등에 매는 주머니란 말이다. 우리말에 70%는 한자어고, 한자어는 모습이나 관념을 표현한 상형 문자이다. 의도적으로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자를 뜯어보면 그 말에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자를 알아야 좀 더 정교하고 정밀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그런 것에 도움이 되는 책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나는 한자’를 소개한다. 

용수철하면 뭐가 연상될까? 나이든 이들은 용수철이 한자란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용수철(龍鬚鐵)은 용(龍)의 수염(鬚髥)처럼 생긴 철(鐵)이라는 의미다. 둥글게 말려 있는 스프링을 보고 용의 수염을 떠 올려 만든 글자였다. 사실 용은 상상 속 동물이다. 실제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림 속 용의 수염은 동서양 모두 그 부분이 돌돌 말려 있다. 이 점에 착안해 스프링을 용의 수염처럼 생긴 쇠붙이 즉 용수철(龍鬚鐵)이라고 명명하였다. 잘 만든 이름이란 생각한다. 

살다 보면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합니다’란 말을 종종 하거나 듣는다. 여기서 무엇인가 잘못됐는지 눈치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불구가 아니라 불고이다. 불고(不顧)는 아닐 불(不) 돌아볼 고(顧) 그러니까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염치불고(廉恥不顧) ‘부끄러움을 보지 않고 감히 부탁 한다’는 의미이다.

고객이라고 할 때 고는 돌아볼 고(顧)이다. 고객(顧客)이란 돌아보는 사람이란 의미이다. 뭘 돌아본다는 걸까? 마음에 드는 물건을 돌아보고 혹시 손해 본 것이 아닌지 돌아보는 게 고객(顧客)인 것이다. 이처럼 한자를 알면 뜻이 명료 해진다. 그럼 불한당(不汗黨)은 어떨까? 뭔가 폭력적인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정확한 의미는 아니 불(不), 땀 한(汗), 무리 당(黨) 즉 땀을 흘리지 않는 무리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땀 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공짜로 얻고자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불한당(不汗黨)이다. 한자가 매우 생산적인 글자라고 생각한다. 적은 글자로 많은 걸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딩 앞에 출차주의(出車主意)가 그렇다. 나오는 차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만약에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어떨까? ‘차가 나오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네 글자에서 열 네 글자로 길어진다. 비용이 더 들고 가독성도 떨어진다. 자칫하면 나오는 차 부딪칠 수도 있다. 한자어는 말을 만드는 힘 즉 조어력(造語力)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건 네 글자로 다 해결되는 것 같다. 경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로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자를 모르면 실수할 일이 많다. 축하할 일에 명복을 빌 수도 있다.

어느 교양 프로그램에서 적당한 축의금이 얼마인지에 대한 방송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마친 후, 봉투를 들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결혼을 축하하는 봉투에 [부의(賻儀, 부의 부(賻) 거동 의(儀)]라고 쓰여 있는 것이었다. 초상집에서 쓰는 봉투를 결혼식에서 쓴 것이다. 한자를 모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오죽하면 결혼식에는 글자가 3개 있는 것, 상가집에는 글자 2개 있는 것을 쓰라고 했을까?  

축하(祝賀)란 말이 나온 김에 이 글자를 뜯어보자. 축(祝)은 보일 시(示)와 형 형(兄)이다. 보일 시(市)는 제단(祭壇)을 뜻하는데, 제단(祭壇)에 무릎을 꿇고 잘 되길 기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賀)는 더할 가(加)에 돈을 뜻하는 조개 패(貝)이다. 즉 돈을 더하는 것이 하(賀)란 말이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온 손님을 축객이 아닌 하객이라고 하는 것이다. 축하를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는 뜻 아닐까? 말로만 하는 축하는 축하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한자말은 모두 중국에서 만든 게 아니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 무척 많다. 국민(國民) 사회(社會)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현대(現代) 자유(自由) 지구(地球) 과학(科學) 철학(哲學) 심리(心理) 물리(物理) 같은 이른바 근대 한자 대부분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배려(配慮)란 말도 일본에서 만들었다.

배(配)는 배필(配匹) 배우자(配偶者)처럼 짝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배분(配分)처럼 나누다란 의미도 있다. 려(慮)는 고려(考慮) 사려(思慮)처럼 생각하라 라는 의미다. 그럼 배려(配慮)는 짝을 생각한다는 의미일까? 아니다. 려(慮)를 배(配) 한다. 즉 생각을 나눈다는 뜻이다.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배는 일본 말로 구바루(くばる) 즉 나눠준다는 말이다. 디지털 세상이 될 수록 더 정확한 소통이 중요해지고 정확한 소통을 위해서는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언어를 뜯어보는 것이다. 인수분해를 해서 그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는데, 지나칠 과(過) 같을 유(猶) 아니 불(不) 미칠 급(及)이다. 설렁탕에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짜고, 적게 넣으면 싱겁게 마련이다. 짜거나 싱겁거나 맛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적정한 양을 잘 살펴야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이를 뜻하는 성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논어》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공자께 자장과 자하에 대해 여쭌 대목이다.

자장은 너무 적극적이고(지나친 데도 멈추지 않음), 자하는 좀 소극적(미치지 못하는데 멈춤)이라,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여 중도中道(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한 바른 길)를 잃은 것을 말씀한 것이었다. 중용中庸의 중요함을 일깨운 내용이다. '과(過)’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지나다. 과거(過去), 과객(過客),
2. 지나치다. 과음(過欲), 과열(過熱),
3. 잘못하다: 과오(過誤), 과실(過失).

이는 모두 선(線)을 넘어서 생긴 뜻이다. 정해진 선을 넘어가니 ‘지나다’, 정해진 한계선을 넘어가니 ‘지나치다’, 정해진 기준선을 넘으니 ‘잘못하다’가 되는 것이다. 유(猶)는 ‘원숭이’ ‘오히려’의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같다’는 뜻이다. 불급(不及)은 ‘미치지 못 함이니’,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함’이다. 그러니 과유불급은 수학 기호로 생각해보면 ‘過=不及’인 셈이다. 그러나 언제부터 과유불급은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지나치면 미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고 ‘과’의 지나침을 ‘불급’의 못 미침과 비교하여 쓰기 시작했다. ‘유’를 ‘같다’의 뜻으로 풀이하지 않고 ‘오히려’로 잘못 풀이하여 ‘지나친 것보다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이 낫다’의 의미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미치지 못함’보다 ‘지나침’에 대해 나무랄 때 쓸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과(過)가 불급(不及)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본뜻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자는 뜯어보면서 배울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를 알면 소통에 훨씬 유리하다. 요즘 이상한 조어들이 생겨나, 세대 간의 불통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자가 우리말의 정확한 소통을 위해 한자를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육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책이 한자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종일(독성학 박사, 비앤에이치웍스(화장품 개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