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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다시, 어서 돌아오오!” 스가랴1장 1절~6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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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4월 27일 (화) 19:30:55 [조회수 :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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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다시, 어서 돌아오오!” 스가랴1장 1절~6절

 

1. 스가랴는 어떤 책인가?

 

① (1절)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스가랴는 구약성경 39권 가운데 38번째 책이고 12소선지서 가운데 11번째 책이다. 주목할 점은 스가랴는 ‘바벨론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것이다. ‘바벨론포로기 이후’에 해당되는 성경은 역사서 중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이고 대예언서 중에 ‘에스겔, 다니엘’이다. 12소선지서 가운데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해당된다. 구약성경은 총 세 번에 걸쳐 반복해서 증거 한다. 더 중요한 점은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말씀 곧 하나님의 통치와 메시아왕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②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한 때를 정확하게 적시한다. 학개의 예언이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칠월, 구월’이고 스가랴의 예언은 같은 해 ‘팔월과 십일월’이다. 스가랴는 학개와 동일한 시기에 임한 예언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예언한 까닭은 예언의 중요성과 긴박성이다. 무엇보다 성전의 재건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을 넘어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③ 학개와 스가랴의 공통점은 공히 성전재건을 통한 언약의 성취(구원과 회복)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학개는 역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간결하게 전하는 반면, 스가랴는 성전재건 속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심오하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랴는 꿈과 환상을 통한 묵시문학적인 특징으로 인해 그 해석이 다소 난해하다.

 

④ 학개서의 분량이 단지 2장으로 짧게 기록된 반면 스가랴서는 무려 14장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스가랴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8개의 비전(묵시)을 통해 성전재건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사건임을 밝힌다. 제2부는 네 편의 설교(권면)를 통해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마지막 제3부는 메시아왕국의 도래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재림을 예언하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어 마침내 완성될 것을 선포한다.

 

 

2. 어서 돌아오오!

 

① (2절)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 ‘무리의 열조’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백성들을 가리킨다.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한 멸망은 하나님의 진노였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는 정확한 진단에 따른 확실한 처방을 내리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니라 죄로 인한 징계였다. 의를 위한 핍박은 믿음으로 인내해야 하지만, 이와 달리 죄로 인한 징계는 속히 뉘우치고 빨리 회개해야한다. 의를 위한 핍박인데 회개하거나 죄로 인한 징계인데 의를 위한 핍박인 줄 알고 인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죄로 인한 징계는 속히 회개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자 최고의 지혜인 까닭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총체적 위기는 의를 위한 핍박이 아니라 죄로 인한 징계다. 획기적인 대안을 마련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면 안 된다. 오직 돌이켜 회개하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② (3절)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메시지성경) ‘내게 돌아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신다. 회개는 단순히 몇 가지 잘못된 행위를 뉘우치는 반성의 차원이 아니다. 삶의 방식을 뒤바꾸는 근본적인 ‘회심’이다. ‘욕심에서 죄로, 죄에서 사망(멸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말씀에서 의로, 의에서 생명(구원)으로’ 선순환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욕심에 이끌려 내 뜻대로 살던 삶에서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멸망에서 구원으로의 변화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으로 돌이키는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여호와의 전을 ‘말씀대로’ 다시 건축하는 일이다.

 

③ (4절)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메시지성경) ‘너희 부모들을 닮지 마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그들에게 외쳤다. 만군의 하나님의 메시지다. 너희 악한 삶에서 떠나라. 너희 악한 행실을 그만두어라.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모두 무시했고 한사코 듣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선조들은 예언자의 말을 청종하지 않았다. 청종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지 않았는가!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믿는 것을 의뢰하고 자신이 신뢰하는 대상을 의지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다른 우상들을 더 신뢰하고 청종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이 소유하면 행복하다!’는 사고방식이 가장 대표적인 우상숭배의 실 예다. (눅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 하니라’

 

 

3. 사라질 영광인가, 영원한 말씀인가!

 

① (5절)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 (메시지성경) ‘너희 조상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 죽어서 땅에 묻혔다. 그들에게 설교했던 예언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도 죽어 묻혔다. 그러나 내 종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메시지는 죽지 않았다 메시지는 너희 조상들에게 들어가 제 역할을 해냈다 그렇지 않느냐? 메시지는 그들을 일깨웠고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돌아왔다.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아주 분명하게 행하셨습니다. 우리는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밭들과 집들에 대한 우상숭배를 일삼던 선조들은 자신들이 좇던 우상과 함께 사멸했지만 선지자들의 예언은 이천 오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영원하다. (시103:15~18)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성경은 풀이나 꽃처럼 썩어질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하신 말씀에 잇대어 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시종일관하게 증언한다. 스가랴 역시 선조들이 좇았던 물질이나 명예, 건강 같은 화려하지만 유한한 가치가 아니라, 날마다 사랑과 평화, 정의와 진실, 섬김과 나눔 같은 소박하지만 불멸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을 ‘다시 또 다시’ 촉구하고 있다.

 

② (6절 상)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 수많은 선지자들이 거듭해서 경고한대로 선조들의 삶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스가랴는 또 다시 이스라엘 나라와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 왜 멸망하고 무너졌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예언자들의 외침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사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말씀대로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는 축복이 임하지만, 말씀을 거역하면 칼에 삼키는 저주가 임한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변함없는 진실이다.

 

③ (6절 하)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

▶ ‘돌쳐 이르기를’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돌이키는 회개(Return, U-turn)다. 바벨론포로기를 경험한 남은 자들은 선지자들이 경고한대로 선조들의 멸망을 목도하고 체험한 후에 비로소 깨달았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솔로몬 성전의 파괴는 ‘현장체험학습’이다.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행 한대로 보응하신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시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 진실을 늦더라도 깨달으면 다행이다. ‘믿거나 말거나’ 부인할 수 없는 이 진실을 확실하게 깨닫는 날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인생을 마치는 ‘죽음’의 순간이다. 그날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절망의 순간이다. 물질과 건강, 생명을 다 잃어버린 후에 하나님이 물질과 건강,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단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다. 스가랴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지금 이 순간, ‘어서 돌아오라’고 ‘다시 또 다시’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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